출처- 위키피디아



과학의 발전 속도가 너무나도 빠르다. 그 혜택도 많아졌다. 그러나 그에 따르는 부작용과 우려도 커진 것이 사실이다. 사람들의 인식은 갈대와 같아서 문명화·과학화에 대한 우려는 막연한 과학기술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근거 없는 얘기에도 쉽게 속게 만든다.

지금 설명할 전자레인지 얘기도 그런 맥락에 있다. 전자레인지는 음식을 빠르고 편리하게 데워 먹을 수 있게 하지만, 그런 편리한 이면에 있는 불안감을 자극하는 괴담들이 넘쳐난다. 전자레인지로 음식을 데워 먹으면 발암물질이 생길 수 있고 음식으로서 생명력을 잃게 된다는 주장이다. 국내 유명 일간지의 한 식품 칼럼리스트도 같은 주장을 한 바 있다.

전자레인지 위해성 논란의 시작은 스위스의 한스 허텔(Hans Hertel) 박사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대 후반에 한스 허텔과 일곱 명의 채식주의자 동료들이 호텔방에 2개월 동안 합숙을 하면서 우유와 채소만 먹으면서 지내보니 전자레인지로 데운 우유를 먹은 사람들에게서 ‘암과 비슷한 상태에서 나타날 수 있는 병리학적 초기 단계 증상(the initial stage of a pathological process such as occurs at the start of a cancer-ous condition)’이 발견되었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 주장은 논문으로 실리지도 못했고 다른 학자들에 의해 재현되거나 검증되지도 않았다. 허텔이 무엇을 측정했고 어떻게 측정했다는 것은 하나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냥 잊힌 것이다.

그런 가운데 윌리엄 코프(William Kopp)라는 미국 연구자가 나타나서 한스 허텔을 부활시킨다. 이 사람은 식품화학자도 아니고 그냥 ‘연구자’라고만 알려졌는데, 이 윌리엄 코프는 ‘소련이 마이크로웨이브(micro-wave, 극초단파)의 위험성을 알고 있다’는 얘기를 퍼뜨린다. 그는 구체적인 소련의 연구 결과와 연구소 이름도 거론하면서 전자레인지의 위해성을 주장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조사해본 결과 소련의 연구 결과라는 것은 발표된 적도 없고 소련의 연구소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윌리엄 코프는 가전 제품 업계의 핍박이 있을 것이라면서 이름을 바꾸고 사라져버린다.

안타깝게도 이들의 주장은 아무런 검증 없이 급속도로 인터넷에 퍼졌다. 그리고 식품의 안전성을 걱정하는 소비자들에게 진리처럼 전해지고 있다. 처음 유해성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사라진 가운데 식품 안전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바통을 이어 받아 유해성을 증명할 근거를 찾아 나서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근거로 내세우는 논문을 보면 논문의 결론과 전자레인지 유해성은 상관관계가 전혀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일간지 칼럼이나 인터넷에 나오는 ‘전자레인지가 암을 발생시킨다’는 주장은 근거 없는 소설 같은 얘기다. 일부에서 이와 같은 내용을 ‘지식인들이 폭로하는 전자레인지의 치부’라면서 과장하기도 하고, ‘전자레인지의 유해성에 경종을 울리는 학자들’이라며 학계를 떠나 소식도 알 수 없는 ‘스위스의 한스 허텔 박사’를 예로 든다. 아쉽게도 과학자들이 과학적인 검증을 통해 확인한 논문 중에 전자레인지가 암 발생을 높인다는 논문은 단 한 편도 없다.

과학적으로 본다면 전자레인지에 쓰이는 마이크로웨이브는 채소류를 가공할 때 물에 넣고 가열하는 것보다 비타민 손실이 적은 방법이다. 물론 전자레인지가 몸에 유해할 수도 있다. 혹시라도 우리가 모르는 무엇인가가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마이크로파를 사람이 직접 쬐는 것은 피해야 하고, 전자레인지 마그네트론(magnetron, 자기장 속에서 극초단파를 발진하는 2극 진공관)을 직접 쳐다보는 것도 피하는 것이 좋다. 또 당연한 이야기지만, 전자레인지에 넣어서는 안 되는 물질이나 가열했을 때 환경호르몬이 나오는 플라스틱 유해성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막연히 식품에도 안 좋고, 사람에게도 좋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괴담을 양성할 뿐이다. 주장을 하려면 적어도 제대로 된 근거를 가지고 주장해야 진정으로 소비자를 위한 길일 것이다.

<참고문헌>

  • Quan R, Yang C, Rubinstein S, Lewiston NJ, Sunshine P, Stevenson DK, Kerner JA Jr.
    Effects of microwave radiation on anti-infective factors in human milk. Pediatrics. 1992 Apr;89(4 Pt 1):667~9.

  • Vasson MP, Farges MC, Sarret A, Cynober L. Free amino acid concentrations in milk:
    effects of microwave versus conventional heating. Amino Acids. 1998;15(4):385~8.

  • ‘Fact vs. fiction’ http://findarticles.com/p/articles/mi_m0813/is_3_32/ai_n13664949/


작성자 : 이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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