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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의학 관점에서 본 군대 총기사고

영화 진주만 포스터


영화 진주만을 보면 평화스런 진주만이 갑작스런 일본군의 폭격으로 아수라장이 되는 장면이 나온다.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여주인공은 몰려드는 환자들과 맞닥뜨리게 되고, 병원은 바로 포화상태가 된다. 이 때 병원의 의사는 간호사인 여주인공에게 병원 밖으로 나가서 들어오는 환자들을 보고 급한 순서대로 마크를 하라고 지시하고, 여주인공은 마크를 위한 립스틱을 뽑아 들고 밖으로 나가 들어오는 환자 이마에 표시를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재난 상황에서의 환자 처치의 첫 단계인 환자 분류(triage)이다. 재난 상황은 의료의 수요가 공급을 초과한 상태이다. 따라서 적절한 의료 자원의 배분이 필수적이다.

작년, 전방의 GOP에서 전역을 앞둔 한 병사의 총기 난사로 같은 GOP의 병사 5명이 사망하고 7명이 부상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의 충격도 충격이지만, 이런 사건이 발생하게 된 원인부터, 사건 이후의 대처까지 많은 부분에 있어 문제점이 지적됐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군의관이 의식이 있는 병사 위주로 처치해서 살릴 수 있는 병사를 살리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물음이다. 그럼 과연 의식이 있는 환자의 처치를 먼저 시도한 군의관의 행위는 잘못인 것일까?

앞서 언급했듯이, 재난 상황이라 함은 의료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상황이다. 전방의 GOP라는 고립된 환경에 군의관 1명이 도착했는데, 사상자가 12명이고 중상자가 다수라면 비록 수십,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재난은 아니지만 분명 의료 수요가 공급을 크게 초과한 것이고 일시적인 재난 상황에 해당한다. 따라서 해당 군의관은 자신의 처치로 인해 생존 가능성이 가장 높아지는 사람에게 우선 순위를 두고 처치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즉, 당장 어떤 처치를 하지 않아도 생존이 가능하거나, 또는 최선의 처치에도 생존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것으로 사료되는 경우에는 과감히 치료를 포기하는 것이 맞다.

현장을 직접 확인할 수는 없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과연 한 명의 군의관이 다수의 총상자가 발생한 현장에 1시간 정도 지나서 도착한 경우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환자 분류를 통해 과감히 치료가 필요 없거나 치료를 포기해야 할 사람을 먼저 골라내는 것이 될 것이다. 환자 분류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으나 극단적으로 적은 의료 자원과 후송조차 빨리 이루어지리란 보장이 없는 현장 상황은 보수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과다 출혈로 자극에도 반응이 없이 의식을 잃은 환자는 즉각적인 수혈을 포함한 소생술과 지혈 및 빠른 후송을 통한 수술이 필요할 텐데 제한된 환경의 현장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적어도 아직까지 전신적인 상태가 괜찮은 사람을 후송이 이루어질 때까지 악화되지 않도록 처치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보통 재난 상황에서의 이런 환자 분류에 있어 소생시킬 수 없는 사람을 과감히 포기하는 것은 항상 윤리적인 갈등을 초래한다. 일반적인 상황에서의 의료인의 윤리 의식은 하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는 것인데 이러한 윤리 의식과는 상충되는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료진의 윤리적인 갈등으로 인해 반대로 다른 살릴 수 있는 환자에 대한 처치가 늦어진다면 그것이 더 나쁜 결과가 된다. 이러한 어려운 판단을 위한 방법론을 제공하고 윤리적인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바로 재난 의학의 한 분야이다.

사건 이후에 나온 기사들이나 밝혀진 사실들을 보면 군 당국의 현장에서의 의학적인 대처는 분명 부족한 점이 많았고 개선해야 될 점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아마 그래서 군의 사과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병사를 구하기 위해 노력한 군의관을 비롯한 의료진들은 제한적인 현실에서 최선을 다한 것이고, 구할 수 없었던 병사들에 대한 안타까움은 금할 수 없으나 그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시스템이 아닌 의료진 개인에게 돌아가서는 안 될 것이다.

김승환  drshawn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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