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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과 성격은 아무 연관이 없다
라는 영화가 있다. ‘이기적인 B형 남자와 소심한 A형 여자의 아슬아슬한 연애 모험담’이라고 영화 소개가 되는데, 일상 속에 혈액형과 성격을 연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정말 혈액형과 성격과 연관이 있을 수 있을까?

먼저 혈액형에 대해 알아야 할 것 같다. 흔히 혈액형은 ABO 형(type)으로만 나뉜다고 알고 있지만, 의학적으로는 굉장히 다양한 분류법이 있다. 조금 복잡한 얘기지만, 혈액 내 세포들의 응집 반응, 응고 반응을 통해서 혈액형을 분류하게 되는데, 피가 부족한 환자에게 수혈할 때 부작용을 예측하고 수혈이 가능한지를 나누는 분류로 ABO 형과 Rh 형이 있다.

응고 반응이라는 것은 적혈구 세포 표면에 존재하는 여러 단백질에 대한 항원 항체 반응, 쉽게 말해 면역 반응으로 일어나게 된다. 내 몸에 원래 있지 않는 뭔가가 들어오게 되면 그것을 제거하기 위한 반응이라고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원래 내 몸에 있는 혈액이 아니라면 거부 반응을 일으키고 이 과정에서 혈액 응고가 일어나게 되는데 ABO와 Rh 형이 일치하면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이런 면역 반응은 적혈구에 붙어 있는 항원이라는 단백질의 차이인데, 이것은 부모로부터 받은 유전적 영향을 받는다. 어렸을 때 생물 시간에 배운 혈액형 유전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된다. 이런 혈액형 분포는 인종마다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인구 100명당 혈액형 분포율


원래 질문으로 돌아가서 혈액형 분류인 ABO 형과 성격이 관련이 있다는 주장은 사실일까 고민을 해보겠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혈액형과 질환 발생이 연관 있다는 보고들이 있다. 그중에서 상당수는 ‘인구수가 높은 혈액형에서 발생건수가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간과한 연구기도 하다. A형은 운동선수가 많다는 얘기들을 들으면 A형이 운동을 잘하는 뭔가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인구 구성 중 A형이 많으니 운동선수라는 샘플 내에서도 A형이 많은 것뿐이다.

이와 달리 의학적으로 혈액형과 질병이 서로 연관성이 있는지에 대한 연구결과도 있다. 특정 혈액형에서 특정 질환이 더 많다는 연구들도 진행되는데, 혈액형을 결정하는 유전자가 염색체 내에서 특정 질환과 연관된 유전자 발현과 관련이 있다는 가설들을 세우고 연구가 진행되기도 한다.

특정 질병과 혈액형과 연관성도 연구되는데 성격도 그런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인간의 정신과 성격을 혈액형과 연계시키는 것은 무리다. 우선, 인간의 성격과 정신은 선천적인 유전자 발현과 뇌의 형성에 의해서 일부 형성되지만, 출생 후 성장 과정에 의해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커가게 되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결정된 혈액형이 사람의 성격을 정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혈액형과 성격이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또 다른 증거도 있다. 혈액형이 성격을 결정한다고 한다면 사람의 혈액형이 바뀌면 성격도 바뀌어야 하는데, 혈액 암으로 골수이식을 받아 혈액형이 바뀌는 환자들의 경우에도 성격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혈액형과 성격은 과학적으로 연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믿음이 생겨났을까? 이런 얘기는 일본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태어난 달에 따라 별자리를 정하고 성격을 얘기하는 것과 비슷하게, 재미로 시작된 것이 과학적인 분류법인 혈액형과 결합되면서 새로운 생명력을 갖게 된 것이다.

널리 믿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심리적 요인도 있을 것으로 본다. 자신의 신념을 확증해주는 상황을 쉽게 발견하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도 이런 ‘혈액형 성격 이론’을 믿는 사람들에게서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혈액형 성격에 잘 맞는 사람의 경우에는 ‘역시 잘 맞는다니까’ 라고 하면서, 그 반대로 전혀 맞지 않는 경우에는 쉽게 무시하고 잊어버린다. 또, 혈액형 성격 이론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사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사실인데 특정 혈액형의 특성으로 여기는 경우도 생긴다. 예를 들어, A형 남자는 ‘맘에 드는 여성을 보더라도 섣불리 행동하지 않고 차츰 만나는 횟수를 늘리면서 고백을 하는 타입’이라고 설명지만, 이런 현상은 대부분의 남자들이 하는 행동이다.

사실 혈액형 성격 이론이든 점성술이든 자기 예언적인 성향이 있어서 ‘나는 이런 사람’으로 규정하는 순간, 스스로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현상도 나온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믿음이 들어맞지 않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믿음을 의심하기보다는 기존의 믿음을 유지하면서 예외적인 상황으로 치부해버린다. 혹자는 이것을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고 한다는데, 당신도 그러는 것은 아닌가?


<참고문헌>

  • 김상인, 조한익, 한규섭: 수혈의학. 고려의학, 1999, pp.173~219

  • 아산병원 혈액은행 홈페이지 http://bloodbank.amc.seoul.kr


작성자 : 박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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