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피디아 이미지 - The University of Texas M. D. Anderson Cancer Center


두 명의 환자가 있다. 한 명은 작업장에서 추락해서 중증의 외상을 입은 35세의 남자 환자고, 또 한 명은 70세의 은퇴한 폐암 환자이다. 둘 다 중소 병원에서 치료가 힘들어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치자. 이 두 환자 중 어느 환자가 과연 대학병원에서 환영 받을까. 질문이 좀 이상하다면, 현실적으로 두 환자 중 어느 환자가 병원 이익이 되느냐는 질문으로 바꿔 생각해보자.

정답은 국내의 병원들의 현황에서 찾을 수 있다. 전국의 대형 병원들이 경쟁적으로 짓는 것은 외상센터가 아닌 암센터다. 암은 국내 사망률 1위의 질환군으로 예방 및 치료는 국민의 건강을 증진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데 매우 중요하다. 암환자 치료를 위한 투자가 이루어지는 것을(환자가 수도권으로 몰린다거나 하는 등의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나무랄 수는 없다. 앞서 예를 든 폐암 환자도 얼마든지 국내 대형 병원의 암센터에서 치료 계획을 세워 치료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외상 환자는 딱히 치료받을 병원이 없다.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암 환자는 병원 입장에서 봤을 때 수익을 창출하는 반면, 외상 환자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암 환자는 새로운 치료법이 계속 나와 건강보험이 감당하지 못하는 비보험 항목이 발생할 수밖에 없어 수가가 낮더라도 충분히 만회가 가능한 실정이다.

이와 반대로 외상 환자는 반복되는 수술과 중환자실 치료, 그 이후 긴 재활 기간까지 비급여나 고가 검사와는 거리가 멀뿐더러, 입원기간도 길어 병상도 장기간 차지하게 된다. 사실 그 기간이면 돈이 되는 암환자 여럿을 입원시킬 수 있을 정도다. 적자가 발생하면 경영이 어려워지니, 민간병원 입장에서는 어디에 투자해야할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면 암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환자 개인사정을 떠나 국가입장에서는 더 이익인지도 따져보자. 앞서 예로 언급한 환자들이 치료를 잘 받아 회복했다고 가정해 보자. 35세 외상환자는 직장으로 복귀하여 앞으로 적어도 20년 정도 경제 생산 인구로서 일을 할 것이나, 70세 환자는 이미 은퇴를 했을 나이다. 물론 젊은 암환자라고 하더라도 병을 앓았던 경험 때문에 경제 활동에는 제약이 생길 공산이 크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대부분 고령인 암 환자에 비해 외상 환자는 젊은 나이인 경우가 많고, 회복해 경제 활동을 한다는 면을 봤을 때 국가적으로는 외상환자의 회복이 암환자의 회복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암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고 또 누가 암에 걸리든 국가가 보장해주는 범위도 꽤 넓은 편이다. 하지만 중증외상 환자는 그 발생 빈도가 저소득 블루 컬러 계층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다는 면에서 더욱 심각하다. 만약 가장이 다쳐서 쓰러지고 회복하지 못한다면, 사실상 이 가정은 저소득층에서 극빈층으로 몰락하게 된다. 이들이 충분히 치료 받고 회복하도록 하는 것은 소득 차에 따른 보건수준의 양극화를 막는 중요한 길이기도 하다.

아마 이런 것들을 정치권이나 정부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중증외상에 대한 투자 이야기는 항상 있어왔고, 외상센터 지정도 이루어지고 있긴 하다. 그런데 아무런 지원 없이도 우후죽순으로 생겨 운영되는 암센터와 비교하면 뭔가 지지부진하다. 나라에서 돈을 줘서 건물을 짓고 장비를 사 주고 인건비를 준다고 해도, 본질적으로 외상환자를 치료함으로써 이익이 생기지 않는다면 병원 경영진 입장에서는 외상분야를 키우고 싶을 생각은 안 들것이다. 더 직설적으로 말해, 외상과 관련된 수가체계가 개선되지 않으면 이런 투자들이 빛을 보기는 힘들다.

외상센터에 대한 정부의 정책들을 보면, 분명 외상환자 치료에 좀 더 자원을 투자하고자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약간의 지원금을 쥐어주고 몇몇 외상센터를 지정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의 의료시스템 자체가 자발적으로 외상환자를 진료할 수 있게 바꾸도록 변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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