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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의견(Second Opinion), 환자 권리인가 의료 과소비인가

위키피디아 이미지 - 의무기록

두께가 5~6cm 정도는 되어 보이는, 무거워서 한손에 잡히지도 않는 부담스러운 차트. 지친 표정에 경계가 가득한 눈빛을 담고 있는 환자 또는 보호자. “영상 다 올라오려면 (외부병원 영상이 우리병원의 영상정보시스템에 업로드 되려면) 몇 분 더 기다려야 한대요”라며 난처한 웃음을 짓는 외래 담당 간호사.

이차의견(second opinion) 환자다. 지금 받는 치료에 대해 다른 병원 의사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어서 온 분이다. 지방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수도권의 유명병원에 가봐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오신 분들도 있고, 우리 병원보다 더 큰 소위 Big 5라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오신 분도 있다.

나를 비롯해 대부분의 의사들은 이런 환자들을 그리 환영하지 않는다. 파악하는데 오래 걸리는데 비해 실제로 치료 및 계획이 달라지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자 입장에서는 그만큼 절실하고 답답해서 왔을 것이다.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며 불만을 터뜨리는 분들도 있고, 말기암 상태에 대한 병식이 전혀 없이 호스피스 돌봄을 받아야 하는 단계인데도 새로운 치료를 받아보시겠다며 오시는 난감한 분들도 많다.

정말 설명을 잘 들었고 잘 이해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대로 지금의 주치의에게만 자신의 몸을 맡겨놓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지 확인하고 싶은 분들도 있다. 또 현 주치의에 대한 불필요한 의심을 품으며 오는 경우도 가끔은 본다. 아주 드물게 현 주치의와 나와 의견이 완전히 달라 대안이 필요한 경우도 있으나, 이는 정말 드물다.

의료산업이 발달한 미국에서는 이런 이차의견을 듣는 것에 대한 수요도 비즈니스모델이 되는 모양이다. 특히 영상과 의무기록의 전산화는 이러한 ‘이차의견’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존스홉킨스, 엠디앤더슨 암센터 등의 유명병원들은 이차의견을 원격으로 제시하는 서비스에 500달러 이상의 비용을 청구하고 있다.

스탠포드의 영상의학과 의사가 설립한 이차의견 회사인 ‘Grand Rounds’는 2013년 천만 달러의 투자유치를 달성해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기부금과 의사들의 자원봉사로 운영하며 환자들에게 이차의견을 제시하는 ‘The Second Opinion’란 이름의 비영리기구는 설립된 지 45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이차의견을 얻음으로써 잘못된 판단에서 비롯된 불필요한 시술 또는 치료를 피할 수 있고, 이것이 결국 의료비용과 생명의 손실을 줄일 수 있게 해준다며 환자 안전을 강조하고 있다.

질병과 진단에 대한 의학적 추론과 그 한계에 대해 서술한 베스트셀러인 ‘닥터스 씽킹’이라는 책이 있다. 나는 이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는데, 여기서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부분은 저자가 이차의견에 대해 매우 긍정적일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권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떤 의사나 병원도 100% 완벽할 수는 없고, 의학적 결정에서 수많은 불확실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다.

일견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차의견을 묻는 과정이 의사-환자간의 불신과 의료비용을 증가시키는 ‘닥터쇼핑’이란 형태로 더 많이 나타난다. 2014년 뉴잉글랜드 저널에는 의사가 제공한 치료에 대한 만족도가 실렸다. 29개 국가를 분석한 결과 미국은 만족도가 58%로 3위, 우리나라는 25%로 24위였다. 이를 보면 불신에서 비롯된 닥터쇼핑 또는 이차의견진료가 많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물론 정말 이차의견이 필요한 소수의 환자들도 있다는 것은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겠다. 그러나 우리는 짧은 진료시간으로 인한 소통과 불신의 문제를 이차의견 진료로 해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즉 이차의견을 구하기 위해 먼 길을 오가는 환자의 불편, 산더미 같은 차트와 영상을 파악하는 데 시간과 수고를 들여야 하는 의사의 허탈감, 건강보험공단에서 지출되는 진료비, 이런 것들도 저수가에서 비롯된 짧은 진료시간과 의사-환자관계의 파괴로 인해 파생된 일종의 사회적 비용이 아닐까 한다.

김선영  cathykimm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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