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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이렇게 바꾸는 겁니다

'세상은 이렇게 바꾸는 겁니다' 책표지


지난해 나는 노벨평화상 발표를 손꼽아 기다렸었다. 꼭 수상하기를 소망했던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7년부터 후보로 거론되었던 그는 이번에도 수상하지 못했다.

그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희망했던 사람들 중에는 빌 클린턴(Bill Clinton) 전 미국 대통령도 있다. 클린턴은 일찍이 “더 많은 젊은이들이 영감을 얻어 그의 활동을 이어 갈 수 있도록 그의 업적이 노벨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하버드를 졸업한 의사이자 인류학자이자 국제보건 전문가다. 세계은행 총재이자 의사인 김용 박사의 절친이기도 하다. PIH(Partners In Health)라는 단체를 설립하여, 25년간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있다. 아이티와 르완다를 비롯해 전 세계 20개 나라에서 국제보건 평등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쳐 왔다. 그는 “내 식사량의 32%는 항공사의 땅콩 봉지”라는 농담을 할 정도로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다. ‘21세기 슈바이처’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그의 최대 관심사는 보건의료 분야의 국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일이다.

“아프리카에서 새로운 에이즈 발생을 막는 것이 이미 에이즈에 걸린 환자를 치료하는 것보다 28배 비용 효과적이다.” 이는 2002년에 발표된 어느 논문이 주장한 내용이다. 당시 2,500만 명에 육박했던 아프리카의 에이즈 환자들을 전부 치료하는 것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므로 사실상 그들을 죽게 놔둬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걸린 문제에서 ‘비용 효과 분석’과 같은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정당한 일인가? 그 비용 효과 분석의 결과가 옳기는 한가? 이런 질문을 가장 적극적으로 제기하면서 에이즈 환자의 치료를 주장하여 그것을 관철시킨 핵심 인물도 바로 그다.

앞의 질문은 윤리적인 것이니 일단 논외로 하더라도, 당시의 비용 효과 분석이 완전히 틀렸다는 사실은 이미 드러나 있다. 그 논문의 저자들은 ‘비용’과 ‘효과’를 모두 상수로 취급해 그런 결론에 도달했지만, 둘 다 변동성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논문이 나왔을 때의 에이즈 치료비용은 환자 1인당 연간 1만 달러였지만, 10년 후에 그 비용은 100 달러로 줄었다. 반면 에이즈 치료약의 효과는 당시의 예상보다 훨씬 좋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 결과,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800만 명 이상이 에이즈 치료를 받고 있으며, 그중 약 600만 명은 아프리카에 있다.

빌 클린턴은 그가 가진 장점을 “정의에 대한 헌신,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서 싸우려는 태도, 환자와 가족들을 끝까지 돌보겠다는 고집, 훌륭한 정책을 만들고 추진하려는 의지, 마르지 않는 낙천성”이라고 했다. 김용 총재는 자신의 친구에 대해 “그보다 더 도전적이고 영감을 주는 멘토는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이름은 폴 파머(Paul Farmer)다. 내가 그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10년 전이다. 한 출판사의 의뢰로, 그의 이야기를 다룬 논픽션 《작은 변화를 위한 아름다운 선택(원제: Mountains Beyond Mountains)》의 공동 번역자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에선 퓰리처상을 수상한) 그 책은 그리 성공하지 못했고, 여전히 그는 한국에서 무명이었다.

나는 사실 오랫동안 폴 파머를 한국에 널리 알릴 계기를 찾고 있었다. 그가 쓴 책들 가운데 몇 권을 번역하여 출간하는 계획도 세웠지만, 도저히 수지를 맞출 수 없을 것 같아 포기했었다. ‘매우 유머러스하다.’는 세간의 평과 달리 그의 책들은 대단히 진지하고 전문적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유명 대학 졸업식장에서 행한 연설문 중에서도 최고의 것들만을 모은 책 《To Repair The World》가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됐을 때, 나는 매우 기뻤다. 드디어 폴 파머를 ‘제대로’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정말 감동적이었고, 심지어 재미있기까지 했다. 작년에 《세상은, 이렇게 바꾸는 겁니다》라는 제목으로 한국어판이 나왔다.

이렇게 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떠드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실제로 세상을 조금이나마 바꾸는 사람은 많지 않다. 폴 파머는 확실히 후자다. 그의 행적과 그의 연설은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주지만, 특히 의사들에게는 더욱 큰 공명을 일으킨다. 꼭 읽고 ‘큰 그림’을 한번 구경하시길 권한다.

박재영  editor@docdocd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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