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 본격적인 의학, 건강 블로그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당시에 블로그에 대한 나의 인식 수준은 평범함 이하였다. 가입하면 저절로 만들어지는 포털의 블로그에 가족들 사진을 저장하거나, 기억해둬야 할 정보를 스크랩해 두는 정도의 용도였고, 홈페이지와 블로그의 차이라고 하면 블로그란 것이 최근에 새로 나왔다는 것, 이제는 블로그가 대세 라더라는 소식을 언론을 통해 들은 정도였다.





조사에 따르면 블로그를 활용하는 사람들의 90%는 블로그를 이용하고 있으나 새로운 정보를 창출하기 보다는 정보를 소비하고 있으며 적극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정보를 창출하는 블로그는 3%에 미만에 불과하다고 하니 대다수가 내가 그랬듯 블로그를 만들어 놓고 방치하거나 스크랩한 글로 채워 넣고 있나 보다. 대부분이 정보의 생산자보다는 소비자로써 활동하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블로그를 시작해볼까 생각했을 때 든 고민이 있다. '왜 나 같은 개인들이 블로그를 통해 정보를 만들어야할까?' 특히 건강 정보는 인터넷 검색하면 엄청난 양이 나온다. 각 병원 홈페이지는 질병 정보를 기본적으로 담고 있으며, 의료 포털에는 백과사전 수준의 정보가 담겨있다.










병원, 한의원들은 홍보용 블로그를 운영하고, 민간의료, 건강보조식품 모두 인터넷에서 환자를 유인하려한다. 상업적인 목적은 아니지만, 보편 타당한 정보라고 하기에는 부적절한 제한된 경험을 공유해 섣불리 따라 했다가는 위험에 빠질 수 있는 내용들도 볼 수 있다. 의사로써 이렇게 정보가 넘쳐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고, 내가 거기에 가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과 외부의 시선이 상당히 신경쓰였다.





온라인의 잘못된 정보, 또는 오해 등을 바라보며 비판하기는 쉽지만 해결방법을 제시하기란 어렵다. 의료 부분에 있어 온라인 정보는 의료 소비자로 하여금 금전적 손해뿐 아니라 건강을 해칠 수 있기 때문에 보수적인 시각에서 비판의 목소리만 높이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에는 정보 취득 과정이 다양한 소스를 통해 이뤄지고 있고 그 중 상당 부분은 전문가나 믿을 수 있는 미디어가 아닌 친구나 같은 경험을 한 환자 등 비전문가의 조언이다. 이러한 정보 전달의 체계는 일직선 관계가 아닌 거미줄처럼 매우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이뤄진다. 마치 포켓볼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움직이듯 말이다.





온라인에 있어 의료 정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순적으로 들릴 수 있으나 적극적으로 온라인에 뛰어드는 것이 해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협에서 인터넷 지식 Q&A 서비스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기도 하다. 질문과 답변 게시판과 달리 웹페이지나 블로그의 정보에 대해서는 블로그 세상의 구성원으로 활동하며 상호작용하는 것이 해법이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 의사들이 블로그를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헬스로그(http://healthlog.kr)를 비롯해 지금은 많은 의사블로거가 블로그 세상에서 활동하고 있다. 의료 소비를 부추기는 것이 아닌 건강에 대한 유익한 상식과 우리의 의료 현실과 문제점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활동하는 의사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직접 부딪히는 것이 해법'이라고 생각한 나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학 블로그들에서 단순히 의료 정보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제도와 의료시스템에 대한 포스팅, 또는 포스트와 댓글을 통한 토론을 통해 이해를 구하기도 하고,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의료 시스템에 대해 이해가 부족해 불편을 겪고 불만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그에 대한 불만이 온라인에서도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보건복지가족부나 건강보험관리공단, 의료계 등 직간접적인 당사자들은 적극적으로 이해를 구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환자를 직접 만나는 의사들은 비난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의료뿐 아니라 우리의 많은 제도들이 국민들의 관심과 토론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라 선진국의 사례를 연구 분석해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이나 관련 제도들도 그런 상황이다. 예를 들면 건강보험 재정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이나 이용자 모두에게 규제가 있지만 정작 대부분의 이용자들은 왜 그런 제도가 만들어졌는지 모른다.





대표적인 사례가 응급실 이용일 것이다. 응급환자 우선 진료를 위해 만든 여러 규제들은 때로는 응급실 진료가 비싸거나 대기시간이 길다는 불평을 만들어낸다. 이런 규제는 대다수의 의료 소비자를 위해 국가가 만든 규제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문제들을 조금이나마 변화시킬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고민했던 문제지만, 아직까지 블로그만큼 효과적으로 소통하고 대화할 수 있는 장을 보지 못했다. 의학 블로그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다.





그러나 2년 전 시작은 매끄럽지 못했다. 의사란 직업이 사람을 끊임 없이 만나고 이야기하는 직업이기는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이해하기 쉽게 글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참고해볼 모델이 없다는 것도, 열심히 쓴 글이지만 봐주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도 큰 어려움이었다. 무모했지만 블로그 시작 당시에는 잠잘 시간과 진료 시간을 뺀 모든 시간을 블로그에 대한 고민을 하고 해외 사례를 공부하는데 투자했다. 덕분에 둘째 출산한지 얼마 되지 않은 집사람에게 구박도 많이 받았다.





시작한지 3개월쯤 넘어가자 이웃 블로거들이 생겼고, 블로고스피어가 어떤 세상인지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의사가 운영하는 의학 블로그란 이유만으로 의사들에 대한 불만을 나에게 쏟아내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블로고스피어의 다양성을 위해 따뜻하게 맞이해준 블로거들이 더 많았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런 따뜻한 배려와 블로그 관련 산업에서 전문가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사례로 헬스로그를 지목한 덕분에 지나치게 고평가된 부분도 없지 않다.





블로그를 몇 달 운영해보니, 부족한 글쓰기 실력 그리고 전공분야 이외의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의 한계를 경험하게 되었다. 이때 알게 된 것이 팀블로그라는 기능이었다. 다행히도 사용하던 블로그에서 팀블로그 기능을 제공하고 있었고, 의료정보를 주로 올리고 있지는 않았지만, 블로그를 운영하는 몇몇 의사들과 동료들에게 부탁해서 작년 11월부터 팀블로그를 운영할 수 있었다.





팀블로그는 개인 미디어로써 블로그에서 전문 미디어로 한걸음 더 나아간 형태라고 할 수 있는데, 장점을 꼽으면 여러 사람이 글을 쓰다 보니 비교적 많은 글이 자주 발행되어 독자들의 관심을 유지하거나 더 끌어 모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전문 영역에 대한 글을 쓸 수 있게 되니, 정보의 질의 관점에서도 매우 만족스러운 형태였다.





반면 단점도 존재하는데, 모든 필진들의 시각이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의료 정보만 제공한다면 큰 이견이나 마찰이 존재하지 않겠지만, 여러 의료 사안에 있어서는 이견이 존재할 수 있다. 특히 잘 모르는 사람이 팀원으로 활동하겠다는 경우에는 이런 문제가 우려되어 쉽게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때문에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찾아보니 항상 의료 관련된 글을 쓰고 있지는 않지만, 개인 블로그를 가지고 있는 의사들은 상당 수가 있었다. 이들 블로그에 가끔이라도 올라오는 건강 정보를 수집해서 독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면 어떨 까란 생각에 이르자 기술적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런 형태의 블로그를 메타블로그라고 한다는 것을 알았고, 기술적으로 의료정보 관련한 포스트만 수집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지금 의사들의 블로그 네트워크이자 메타블로그인 닥블(http://docblog.kr)의 시작이 되었다.











이렇게 의사 블로거들이 하나 둘씩 모이게 되었고, 더 정확하고 이해하기 쉬운 정보들이 블로그 세상으로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이 있다. 궁극적으로 의사의 존재 이유가 환자를 위해서 있듯, 블로그 세상 속으로 나온 의료정보들도 환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정보가 환자를 혼란스럽게 하거나 개인정보가 유출되어 피해를 입어서는 안될 일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런 위험성이 존재한다. 의사면허를 가지면 환자를 진료할 수 있고 그에 합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간주되지만, 의학에는 수없이 많은 논란이 되는 또는 연구되고 있는 분야가 존재하며 학문적으로 어느 정도의 근거가 확보되었는가를 분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런 부분을 다루는데 있어 모든 의사들이 익숙하지 않고 특히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실제로 올해 2월 한 의사블로거가 허리 디스크에 유도를 권하는 포스트를 발행했고, 미디어 다음의 블로거뉴스를 통해 수만 명이 글을 읽게 되었다. 취지가 과도한 허리 수술을 비판하는 것이었다면 일견 이해되는 부분이 없지는 않았겠으나 의학적으로 어떤 경우에 수술이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도 없고, 더 나아가 학문적으로 금기 시 되는 과격한 운동을 권해 행여 잘못된 정보를 믿고 실행에 옮겨 피해자가 생길까 걱정되는 사건이었다. 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잇따랐고 헬스로그를 통해 허리 디스크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제공을 함과 동시에 의사들이 글 쓸 때 주의사항에 대해 지적하기도 했다.





해외에서는 의료정보를 제공하는 웹사이트, 블로그에 일정 수준의 윤리 강령을 지킬 것을 요구하며, 비영리 단체에서 해당 웹 페이지를 인증해주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HON(Health On the Net Foundation) 코드인데, 의학 블로거들을 위한 윤리 코드도 별도로 존재한다. 의료 소비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해 건강을 해치거나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일을 없도록 하기 위해 근거중심의 의학정보를 제공할 것과, 치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관계인 의사 환자 관계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골자다.





의료정보에 있어 이러한 중요사항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비단 블로그에 첫 발을 디딘 의사뿐 아니라 의학 저널리즘에 몸을 담고 있는 의료전문지 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국내 의료전문지들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고, 기자 개인들 역시 여러 가지 힘든 상황에 있다는 것은 친분이 있는 기자들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상황이지만, 정보의 신뢰성과 윤리성에 있어 개선이 절실하다.





의료 소비자의 시대에 맞춰 환자의 선택권이 강조되고 있다. 제대로 된 정보를 기반으로 소비를 할 권리가 있다는 이야기로 이런 프레임이 갖춰질 때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도 줄이고, 건강을 증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웹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이러한 변화는 Health 2.0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환자의 선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근거가 있는 치료인가?' 라는 근거 중심의 의학이 바탕에 깔려있다.










근거중심의학이 의료 소비자의 선택권과 건강을 보장하는데 중요 사항이고, 국가 보건 정책이나 보험 정책을 결정하게 한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의료 소비자들은 정보에 있어 취약할 뿐 아니라 스스로도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지금 닥블을 통해 활동하는 의사들은 이러한 정보 제공의 중요성을 공감하는 의사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일부 의사들은 헬스로그나 닥블의 의사 블로거들의 이런 활동이 구조적으로 왜곡되어 있는 국내 현실에서 수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행해 지고 있는 대체의학, 공인되지 않은 치료에 제동을 걸게 될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전통의학인 한의학의 경우 과학적 증명을 요구하는 근거중심의학의 측면에서 본다면 충돌하는 부분이 많다. 인기 의학드라마인 <뉴하트>의 한약 발언을 통해 불어져 나온 한의학 논쟁은 블로그를 통해서도 이뤄졌다. 결국에는 환자의 선택의 문제지만,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전통한의학에 대해 알고 치료에 임하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일부 의사들이나 일부 한의사들에게 있어서 이런 변화는 불편하게 느껴질 것이다.





의학 정보뿐 아니라 공중 보건측면에서도 블로그의 활용가치는 매우 높다. 지난 3년간 공중보건의사로 지역사회에서 공중보건 활동, 예를 들면 칫솔질, 개인위생, 가을철 전염병, 금연, 예방접종 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했지만, 시간과 공간의 제약뿐 아니라 그 정보 파급력도 미미한 것이 사실이다. 오프라인에서 만나 교육한 사람 숫자가 몇 백 명에 불과할 수 밖에 없는 시골의 공중보건의사지만, 온라인을 통해 수만 명에게 이런 공중보건과 연관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었다는 것은 공중보건의사로써 매우 자부심을 느낀다.















해외에서는 온라인을 통한 공중보건 향상에 대해 많은 연구가 있다. 미국의 질병관리본부에서는 의학, 건강과 관련된 커뮤니티, 블로그와 긴밀한 연계를 통해 잘못된 정보 확산을 차단하고, 공중 보건에 중요한 정보를 공유하고 토론하는 시스템이 이뤄져 있다. 국내의 경우 보건복지가족부가 최근 블로그를 통해 금연 캠페인을 벌인 적이 있으나 아직 효과적인 대화 창구는 없는 상태로, 단순히 PR회사를 통한 이벤트 성격이 짙다. 특히 건강관련 이슈가 자주 터지고 있는 현실을 생각할 때 보건 당국의 대응은 안일하게 느껴진다.





블로그 활동은 진료실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것만큼이나 보람된 시간이다. 지금까지 의료정보와 공중보건, 의료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다면 앞으로는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은 블로거로써 이 관심이 힘이라고 한다면, 더 약한 사람들에게 그 힘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시작으로 이주노동자들의 인권과 진료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알리려고 노력 중이다.





블로그를 통해 많은 의사들이 나오고, 의료계의 문제점이나 이용자인 환자들의 목소리가 수면위로 떠오르는 것은 궁극적으로 의사 환자의 관계가 더 나아질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아직 2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의 블로그 운영 경험이라 남에게 조언할 입장도, 또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 것이라고 예견하기에는 지식도 적다. 확실한 것은 온라인 의료정보와 의료커뮤니케이션 변화에 있어 블로그가 최근에 큰 화두가 되고 있으며 그 가운데 헬스로그와 닥블이 있다. 더 많은 의사 블로거들이 나와 의사와 환자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봤으면 좋겠다.






* 신문과 방송 12월에 기고한 글을 많이 고쳐 포스팅했습니다.



** 헬스로그와 닥블에 참여해주신 많은 선생님들께 감사드리고, 특히 닥블이 생기도록 도움을 주신 고수민, 양기화, 한정호. Dr Choi선생님과 관리에 도움을 주시는 두빵, 마바리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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