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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근거를 무시하는 '일부' 의사들

도서 <당신의 암은 가짜암이다> 표지 이미지


작년 가을에 참석한 해외학회에서 일본인 의사들과 만나 회의 후 식사를 같이 할 기회가 있었다. 공통의 화제를 생각하던 중 문득 한국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한 곤도 마코토 박사가 떠올랐다.

곤도 마코토 박사는 일본의 방사선종양학과 의사로서 ‘암은 방치해두는 게 낫다’, ‘항암제는 효과가 없다’,‘건강검진은 백해무익하다’는 주장을 책으로 써 논란을 일으켰다.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된 책이 9권정도 되는데, 제목을 보면 그가 주장하는 바를 대략 알 수 있다. ‘의사에게 살해당하지 않는 47가지 방법’, ‘항암치료는 사기다’, ‘당신의 암은 가짜암이다’, ‘시한부 3개월은 거짓말’ 등이다. 여러 출판사에서 경쟁적으로 그의 책을 번역해 출간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한국 출판계에선 비교적 잘 나가는 작가로 대우받고 있는 듯하다.

이에 대해 일본의 의사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져 “곤도 마코토 박사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요? 일본의 의사선생님들은 어떻게 생각하나요?”라고 물었다. 일본 모 암센터의 소화기내과의사인 A씨는 내 질문을 듣자마자 한숨을 푹 내쉬며“notorious(악명 높은)” 이라며 입을 뗐다. 그의 동료 B씨도 “그 사람이 한국에서도 알려져 있느냐”며 민망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A씨는 곤도 마코토가 주장하는 바에 따라 화학치료를 거부했던 자신의 환자가 수개월 후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말기암 상태가 되어 왔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일본 환자들 사이에서 매우 유명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 동조하는 일본 의사는 거의 없다고 한다. B씨는 “의사들마다 의견이 다를 수는 있겠으나 그것이 환자에게 효과가 입증된 치료를 기피하는 잘못된 선택을 하도록 조장한다면 문제가 있지 않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나는 사실 곤도 마코토의 책을 읽지 않았다. 칼럼을 쓰기 전에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실천하지 못했다. 시간도 부족하기도 하고 요즘 속어로 속이 터져 ‘암’을 유발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그 대신 2013년 모 국내 일간지 전면기사로 나온 곤도 박사의 인터뷰를 꼼꼼히 읽었다. 그 기사를 즈음하여 곤도 마코토 박사의 책이 더 많은 인기를 얻었고 더 많은 책들이 번역돼 나왔다. 국내에 번역된 9권의 책 중 인터뷰 기사가 나간 뒤 6권이 출간됐다.

곤도 박사가 말하는 ‘유사암’, 즉 거의 진행하지 않고 생명을 위협하지도 않는 암종이 아주 일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항암화학치료나 수술 등이 거의 효과가 없어 치료가 오히려 삶의 질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수명연장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경우만으로 모든 암을 설명할 수 없거니와 해서도 안 된다. 곤도 박사는 이를 간과했다. ‘암 치료가 항상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말이 ‘암 치료는 필요 없다’와 동의어는 아니다. 분명히 조기 치료로 도움을 받거나 진행암 상태에서도 수명이 연장되어 보다 나은 삶의 질을 누리는 환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근거에 기반한 치료 자체에 불신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최근 대한의사협회는 ‘쇼닥터’를 제재할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의사라는 감투를 쓰고 검증되지 않은 시술을 안내하거나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하는 행위 등은 사실상의 허위과대 광고에 해당된다. 곤도 마코토 역시 일종의 ‘쇼닥터’로도 볼 수 있다. 대중에게는 큰 호응을 얻으나 동료의사들에게 인정과 신뢰를 얻지 못하는 의사는 일단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이를 ‘잘 나가는 것을 동료들이 시기하여 비난한다’는 저급한 프레임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물론 곤도 마코토는 한국의사가 아니므로 그를 의협에서 제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국내외의 쇼닥터들을 소개하고 인터뷰하는 국내 언론의 행태에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 그들의 의견을 지면에 실어주는 자체가, 쇼닥터의 황당한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잘못된 의료이용행태를 조장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언론인들은 하지 못하는 것일까.

의협의 ‘쇼닥터’ 제재에 대해 ‘쇼닥터, 진짜 의사 맞나요?’라는 제목 하에 보도한 한 언론사는 곤도 마코토 인터뷰를 일간지 전면에 걸쳐 게재한 ‘그’ 언론사였다. 또 유산균 복용으로 불임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 대표적인 쇼닥터 서모씨 인터뷰를 해당 언론의 주간지에 싣기도 했다. 요샛말로 표현하자면 ‘유체이탈화법’의 예로 보인다. 쇼닥터의 등장과 그 폐해의 심각성에 대해 도대체 언제쯤이면 언론도 책임이 있고 반성한다는 기사를 볼 수 있을까.

김선영  cathykimm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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