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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맹장염 진단




맹장염, 정확하게는 충수염(appendicitis)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맹장염으로 알고 있고, 이제는 진료실에서도 그냥‘ 맹장염’으로 부르는 게 환자와의 의사소통에도 도움이 되니 그렇게 부르겠다. 아주 옛날부터 있어 왔고 사람들에게도 아주 친숙한(?) 맹장염이 왜 그리도 진단이 어려울까? 의학이 엄청나게 발전을 해왔어도 맹장염을 정확하게 진단하는 방법이 없기도 하고 또 그 증상이 너무나도 천차만별이기도 하다.

미리 말하자면, 외과 의사에게 물어보면 맹장염 진단하고 수술할때 맹장염으로 확인되는 비율은 약 80퍼센트정도가 되는 것이 가장좋다. 그보다 정확성이 높으면 과단성 있는 결단을 못 내린 것이고 정확성 100퍼센트는 이미 다 터진 맹장을 수술한 것이기 때문), 그보다 정확성이 낮으면 무리하게 진단을 하고 수술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이런 맹장염 진단과 얽힌 안 좋은 기억이 두 개 있다. 내가 지금의 병원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2002년 초였던 것 같다. 50대 중반의 남자였는데, 토요일 오후에 갑자기 배가 아파 진료를 보러왔다. 증상, 이학적 소견이 맹장염 소견과 거의 일치하는것 아닌가. 간단한 혈액 검사 및 소변 검사를 해봤더니 맹장염일 때 올라가는 백혈구도 상당히 올라가 있었고, 아무래도 맹장염인 것 같아 이미 퇴근해서 집에 있던 외과 의사를 불러서 보라고 했다. 고맙게도 그 외과 의사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서 본인이 보기에도 맹장염이 맞는 것 같다고, 수술하겠다는 얘기를 했다.

“그럼 그렇지…….”
혼자 흡족해 하면서 퇴근했다. 그런데 2주 후쯤 되었을까, 바로 그가 내 외래에 다시 접수를 했다.
“어떻게 오셨어요? 어디가 아프세요?”
내 인사 겸 질문에 그 50대 남자의 대답은‘ 배가 아프다’는 것이다.
“네? 지난번에 수술도 했는데…….”
“야! 이 개XX야. 너 같으면 생배를 째면 안 아프냐?”
“…….”

알고 보니 우리 외과 의사가 너무 곧이곧대로(?)“ 환자는 맹장염이 아니었습니다.”라고 얘기를 한 것이었다. 물론 그런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누누이 설명했지만, 이 50대 나자는 내가 시켜서 외과 의사가 무조건 수술을 한 것이고, 오진(?)의 책임은 모두 나에게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휴, 진료실에서 이런 욕을 들은 것도 처음이고 충분한 검사와 진찰을 해서 내린 결정에 결과만 갖고 흥분하는
환자 때문에 무척이나 곤혹스러웠지만 만약 우리 아버지가 같은 증상으로 같은 소견을 보여도 똑같이 진단하고 수술했을 거라고 하며 간신히 설득해서 돌려보냈다.
두 번째는 이와 반대되는 사례다. 2년 전쯤이다. 이번에도 50대 중반의 남자다. 그는 약 한 달 이상이나 되는 오랫동안 복부가 불편함을 호소했다. 마침 진료를 보러 오기 직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복부 초음파를 포함한 건강검진을 받았고 전부 정상이라 들었다고 했다.

간단한 진찰을 해봤지만 특이한 소견도 없고, 그동안 해본 적이 없는 위 내시경 검사와 대장 내시경 검사를 해보기로 했다. 며칠 후 시행한 위 내시경 검사는 별 이상 없었고, 대장 내시경 검사에서는 왼쪽 장에 작은 용종이 있어서 용종 제거를 했다. 조직 검사를 확인하러 일주일 후에 온 그는 검사 이후 증상이 좋아진 것 같다고 했다.‘ 검사에서 별 이상도 없고 증상도 좋아진 것 보면 과민성장증후군이겠지’라는 생각으로 1~2년 후 대장 내시경 검사 다시 해보자고 말하고 기분 좋게 보냈다. 그런데 다시 일주일 후쯤 예약도 없이 다시 그가 왔다. 본인이 맹장염 아니냐고 한다. 그럴 리가? 맹장염이 이렇게 오랫동안 서서히 아플리도 없고 그동안 검사도(직장에서 검진도 했으니까) 많이 했지 않은가.

“에이, 그럴 리가 있나요?”
약을 처방해서 다시 보냈는데, 그날 바빠서 배를 만져보지 않았던게 결정적 실수였다. 이틀 후, 그는 근처 의원에서 맹장이 터진 것
같으니 빨리 가보라는 얘기를 듣고 검사 결과지를 갖고 다시 나타난 것이었다. 결과를 보고 다시 진찰을 하니 누가 봐도 맹장이 터져
복막염이 된 상황이다. 식은땀이 나고, 어디로 도망가고 싶은 생각만 들고, 내 자신이 한없이 바보 같았다.

“정말 죄송합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선생님이 맹장염 같다고 했을때 제가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것은 정말 잘못한 겁니다.”
정말 싹싹 빌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분명히 그것은 잘못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의 맹장염은 아마도 오래전부터 염증이 있어 왔고 항생제를 먹어서인지 조금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를 반복한 것 같고 최근 갑자기 더 곪으면서 터진 것 같다. 그래서 진단이 어려웠을 것 같지만, 그래도 뒤늦게라도 진단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것이었는데…….
무척이나 화를 내고 어이없어 하던 그, 외과에서 수술 받고 좋아진 후 퇴원하기 전 해준 말이 너무도 기억에 남는다.

“내가 늑대별 선생(내 애칭) 실력은 믿을 수 없지만, 그래도 양심은 믿을 수 있소.”
정말 아무리 의학이 발전해도 맹장염 진단은 너무나도 어렵다.

작성자 : 박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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