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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적 근거가 환자에게 중요한 이유를 말하기 전에 근거(evidence)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론적 근거부터 실험적 근거, 임상적 근거 등 다양한 근거가 있다. 이론은 실험이 뒷받침돼야 하고 실험적 결과는 환자들에게서도 유효하게 나타나야 한다. 임상 시험은 환자들에게 적용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런 임상 시험 중에서 가장 신뢰도가 높은 것은 이중맹검 무작위 배정이다. 하지만 모든 주제에 대해서 이렇게 한다는 것은 현실적인 제약이 많고 또 학술적으로도 그렇게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의학 연구 방법론에 대한 얘기는 복잡하기 때문에 자세한 얘기는 생략하더라도, 다양한 디자인의 연구가 있게 되고 이런 것을 근거라고 한다. 단지 논문을 근거라고 하지 않는다. 논문을 통해 근거를 보는 것일 뿐이다.

때로는 이런 근거가 같은 주제에서 서로 상반된 결과를 보일 때가 있다. 나의 전공 분야에서 예를 들어보겠다. 당뇨가 있을 때 수술하면 감염이나 상처 회복이 지연된다고 흔히 알려져 있다. 정확히 표현하면 당뇨인 환자 중 혈당 조절이 잘 안 될 경우에만 그렇다. 이런 당뇨의 합병증 중 하나가 발기부전이고 약물 등 여러 비침습적(non-invasive)인 치료에 효과가 없을 때 마지막으로 음경 보형물을 삽입하게 된다. 기계적인 발기를 유발하는 것으로 남성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주는 중요한 수술이다.

그러나 당뇨의 합병증이 있는 환자들은 혈당 조절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고, 혈당이 조절된다고 하더라도 불안하다. 팽창형 보형물 가격이 소형차 한 대 가격인 것을 감안하면 수술 후 결과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보형물 자체가 워낙 고가의 제품인데, 수술 후에 감염이 발생하면 제품을 제거해야만 한다.

더 걱정되는 것은 만약에 감염이 생기면 치유 과정에서 생기는 섬유화로 재수술 합병률도 높아지고, 감염률도 높고 가장 중요한 것은 길이도 짧아질 수 있다. 그렇다고 수술을 안 할 수도 없다. 이것이 최후의 방법이니까. 그런데 실제 수술한 결과들을 보면 당뇨 환자에서 혈당이 조절되는 정도와 무관하게 감염 발생이 낮다는 연구가 있는가 하면, 당뇨 환자군에서 감염이 높은데 이런 높은 감염율은 혈당 조절이 안 되기 때문이라는 결과도 있다.

연구 방법이나 대상자 수, 편견(bias) 등을 고려해 더 신뢰할 수 있는 연구를 가리는 능력도 임상 의사에게 중요하지만, 대부분 교과서를 보면 현재까지 연구들을 잘 분석해서 알아야 할 것들을 정리해놓는다. 리뷰 저널을 통해서도 균형 있는 시각을 키울 수도 있다. 위의 예는 리뷰 저널이나 최신 비뇨기과학 교과서에서도 상반된 근거들이 제시되고 있다고 얘기한다.

이럴 경우 비슷한 연구들이 더 많아지거나 또는 더 신뢰할 수 있는 전향적 연구들이 나와야 정립이 된다. 나는 지금 과거와 비슷한 연구들 중 하나를 쓰고 있다. 디자인은 비슷하나 여러 변수는 조금 통제되고 수가 좀 더 많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기대하고 있지만, 객관적으로 봐 ‘환자가 동의해서’ 더 나아가서는 ‘환자가 선택해서’ 이뤄지는 개념이기 때문에 이런 정보는 의료 소비자들의 권리 향상에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근거 중심의 의학적 치료가 최근에는 강조되고 있는데 거기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근거 중심의 의학이라고 한다.

다시 내가 연구하는 주제로 넘어와서, 만약 여러분이 당뇨 환자고 발기부전으로 다른 치료가 소용이 없어 보형물 수술을 받는다고 한다면, 이 수술의 위험성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 것이 당연한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나를 만나면(?) 나는 이렇게 설명할 거다. ‘해외의 M 모 박사는 부작용을 ○○퍼센트로 보고했고, 다른 기관에서는 ○○퍼센트로 보고했고, 우리 병원 실적은 ○○퍼센트입니다’라
고 말이다. 미국의 경우, 단순히 학술적 근거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기관, 특정 의사의 실적까지도 공개하는 실정인데, 이는 우리와는 다른 보험 체계를 가지고 있어서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내의 대형 병원에서는 이미 이렇게 환자에게 설명하고 있는 경우가 많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정리하면, 근거는 여러분이 의료를 선택하고 소비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정보로서의 가치를 가지게 된다. 때문에 이런 근거가 되는 정보를 의료 제공자인 병의원에서만 제공해서는 안 되고, 신뢰할 수 있는 국가가 객관적인 자료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아직 걸음마 단계고 이러한 인식 변화 역시 시작 단계지만, 극복해야 할 장애물들이 너무 많이 있다.

작성자: 양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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