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심평원(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공문 때문에 기분이 안 좋다. 정말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체계는 전면 수정하지 않으면, 의사는 영원히 나쁜 놈 소리를 듣는 대상일 뿐이고, 환자들은 정상적인 치료를 받지 못할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신하게 된다.


이 사진은 피를 토하여 응급실에 실려 온 70대 남자의 위 내시경 사진이다. 사진의 중앙에 피딱지가 궤양 위에 얹혀 있다.




딱지를 벗겨내자 궤양으로 인한 동맥 파열과 이 동맥에서 피가 쭉 쏟아 나오는 것이 보인다. 내시경에 특수 부속기구인 긴 주사기를 삽입하여 지혈제를 쏘지만, 지혈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시경 클립(집게 모양)으로 혈관을 잡아서 지혈시켰다.




얼마 전에 이렇게 치료하여 사흘 뒤 퇴원한 이 할아버지를 과잉/부당 진료하여 나는 오늘 의료보험공단으로부터 진료비 환수 조치(과태료와비슷한 성격)를 당했다.

1. 위와 같은 내시경 치혈 치료술의 의료 수가는 9만 원 정도다. 환자의 본인 부담은 20퍼센트, 즉 2만 원 정도다.

2. 시술에 사용된 클립(일본 올림푸스 생산)은 한 개에 1만5000원이다. 4개를 사용했으니 6만 원이다. 현행 보험 규정에는 클립을 사용은 하되 환자에게 돈을 받을 수는 없도록 되어 있다. 자선 행위를 하라는 것일까? 종합병원이니, 의사의 월급에서 차압하여 사용하라는 뜻일까?

3.지혈제로 사용한 녹십자에서 생산하는 지혈접착제는 1시시에 9만 원이다. 아이러니하게 이것은 의료보험이 적용된다. 나는 딱 1시시만 사용했고, 환자에게 병원에서는 2만 원을 받았다. 그리고 보험공단에 나머지 7만 원을 청구했다. 6만 원짜리 1회용 주사기 또한 법으로 돈을 받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이 또한 손해를 보고 환자를 살리는 데 사용한다. 그랬더니 보험공단에서 지혈제를 사용한 것이 부당한 치료라며 7만 원을 돌려주기는커녕 환자에게 받은 2만 원도 다른 환자 진료비에서 빼앗아 환자에게 보내주면서 ‘○○병원의 한정호란 의사가 과잉/부당 진료하여 당신이 낸 진료비를 빼앗아 우리(보험공단)가 돌려드립니다’를 했다는 말이다.

자, 계산을 한번 해보자.




손익을 계산해볼까? 최소한 21만 원의 손해를 본 것이다. 환자를 보다 좋은 방법으로 치료를 하려고 한밤중에 내시경 전문의, 내과 전공의, 간호사가 나와서 억대의 기구를 사용하였지만, 적자만 보고 욕먹게 된 것이다. 노동자인 의사와 간호사의 콜 수당, 택시비를 여기서 뺀다면? 응급내시경센터는 하루라도 빨리 문을 닫는 것이 병원을 망하지 않도록 하는 지름길이다. 이런 상황도 힘든데, 여기에 멀쩡하게 치료 잘 받고 집에 간 환자에게 ‘과잉 진료하고 부당 진료비 징수한 의사’란 낙인을 찍는 공문서까지 보내는 마당이니……. 도대체 이런 의료보험 정책이 이해가 되나?

무슨 미국 같은 고가의 의료 수가를 책정해달라는 것도 아니다. 최소한, 정말 최소한 치료에 사용되는 소모품을 보험 적용해주든지, 아니면 사용할 수 있도록 인정비 급여 승인이라도 해줘야 하지 않을까? 혈관이 크거나 위치가 어려운 경우 사용되어야 하는 클립이 수가 예측되지 않는데, 무조건 보험은 안 되니 의사가 사용하고 싶으면 네 돈으로 네가 알아서 사용해라? 더 비싼 지혈제는 형식적으로 보험 등재는 해놓고, 사용하면 과잉 진료라고 처벌하고?

정말 환자 죽이고 싶지 않아서 내시경 클립을 적자를 보면서 사용하고 있다. 산부인과나 흉부외과, 고난위도 수술 분야가 기피 대상이 된 것에는 이런 의료보험 행정의 영향이 크다. 마찬가지로 이렇게 당하는 내시경 치료 의사들이 고생만 하고, 적자에다 욕먹으며 언제까지 이런 체제를 유지할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방법으로 그냥 수술을 보낼 수밖에 없다.

위의 할아버지는 심장병으로 항혈소판제를 복용하고 있었다. 내시경 지혈이 안 되면 더 큰 위험을 안고 개복수술을 해야 했다. 이런 마당에 그 할아버지를 그냥 수술 보냈더라면 병원도 수술비와 긴 입원으로 돈을 더 벌고, 환자의 생사와 상관없이 내가 이런 욕을 먹어야 할 이유도 없다.

연배가 있는 선배 의사들이 왜 내시경 치료를 기피하는지 이해가 된다. 솔직히 나도 한 번에 지혈이 잘 안되면 고생해서 두세 번 내시경 치료를 점차 안 하게 되었다. 이후에 내시경 치료를 하면 이 또한 과잉 치료라고 하여 내시경 시술 자체를 보험공단으로부터 통제받기 때문이다. 나에게 내시경 치료받으러 오지 마라. 정말 지칠 만큼 지쳤으니까.

작성자 : 한정호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