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키캐스트 광고 캡춰


우연히 TV에서 우주복을 입은 우주인이 등장하는 광고를 봤다. 그 우주인은 시험 준비를 하지 않은 수험생에게 다가가 숫자가 적힌 연필을 주는 것이 아닌가. 자막에는 ‘우리는 답을 줄 것이다, 아주 가끔 그랬듯이’라고 적혀있었다. 하지만 그 수험생과 우주인은 교실 밖으로 나가 손을 들고 벌을 서게 되는 다소 황당한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이는 큐레이션 콘텐츠 생산업체인 ‘피키캐스트’의 홍보물이다. 원래 큐레이션이라 함은 미술이나 예술 작품의 수집과 전시하는 일을 뜻하던 말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여러 정보를 수집해 선별하고 이에 새로운 가치를 전파하는 것으로 확대되어 사용되고 있다. 다시 말해 피키캐스트는 세상에 수많은 정보 중에 재미있고, 가치 있는 내용을 선별해 보여주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새로운 미디어(New Media)란 의미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피키캐스트 누적 앱 다운로드 수는 900만 건을 넘어섰고, 앱 서비스 별 일평균 이용시간은 페이스북 22.8분에 이어 12.1분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인스타그램 7.8분이나 밴드 5.8분, 카카오스토리 4.7분보다도 높은 수치다. 이런 성장에 힘입어 올해 초 50억의 투자를 받기도 했다.

과거에도 ‘큐레이션’이란 말을 붙이지 않았을 뿐이지 콘텐츠 큐레이션은 존재했다. 블로그 미디어인 허핑턴포스트의 일부는 기존 언론 기사에 SNS 사용자들의 반응을 덧붙여 제작됐다. 하지만 피키캐스트와 같은 큐레이션 미디어는 SNS가 확산되는 모바일 환경을 더욱 파고들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콘텐츠 제공 형식을 파격적으로 바꾼 것이다.

대표적인 큐레이션 콘텐츠 형식은 ‘카드뉴스’다. 매체마다 약간은 다를 수 있지만 대체적으로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소비되기 적합한 형태다. 이미 기사로 보도된 사실(fact)에 ‘적합한’ 이미지나 인포그래픽을 합성해 제작해 이해가 쉽도록 만드는 것이다. 블로그 미디어에서 시작된 ‘OO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형식의 목록형(리스티클) 콘텐츠도 여전히 인기다. 큐레이션으로 가공될 경우 각각의 목록들을 추가로 짜깁기해 제공되기도 한다.

큐레이션 미디어의 성장은 모바일과 소셜미디어의 활성화와 확실히 맞닿아 있다. 그러나 현대의 정보과잉 현상에 따른 필연적인 측면도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정된 시간에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소비할 수 있도록 ‘믿고 맡긴’ 결과가 바로 큐레이션 미디어의 성장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정보에 큐레이션이 중요하겠으나, 그 가운데 건강정보는 더욱 그러하다. 건강하지 않은 정보가 유통될 경우에는 육체적인 건강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전에 ‘담배는 천연 약초’라고 황당한 주장하던 베스트셀러 작가 허현회씨나, 항암제 무용론을 펼친 일본 의사 곤도 마코토 등의 사례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실제로 현대의학을 거부하고 허현회를 믿고 따르다 고통 속에 사망한 사례도 있었으며, 곤도 마코토의 책을 보고 항암제를 거부하는 환자들도 상당수에 달한다.

그렇다면 누가 건강정보를 큐레이션 할 것인가. 정보의 특성상 ‘의학적 권위’도 간과돼서는 안 되며, 시시각각 변하는 ‘미디어에 대한 감각’도 매우 중요하다. 양측의 요구사항을 조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기에 아직까지 시도된 적도 없을뿐더러, 참고할 모델도 없다시피 하다.

하지만 발상을 조금만 달리하면 대학병원이야 말로 적합한 주체가 될 수 있다. 대부분의 의료진들은 대학교수이나 정보에 대한 권위는 이미 확보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내놓은 콘텐츠에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감각만 더할 수 있다면 이상적인 매체가 탄생할 수도 있다.

국내 대학병원 중에서도 이런 시도를 준비하고 있는 곳이 있다고 한다. 건강정보를 큐레이션하는 것도 거의 처음이고 의료기관, 그것도 대학병원이 운영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기 힘들다고 한다. 성공한다면 더 이상 허현회나 곤도 마코토와 같은 사이비 전문가들이 발붙일 곳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상상만으로도 통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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