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 산하 건강보험연구원이 설립된 지 벌써 8년이 넘었다. 2000년 7월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과 직장조합이 통합되면서 ‘건강보험공단’이란 거대 조직의 출범과 동시에 현 건강보험연구원의 전신인 ‘사회보장연구센터’가 설립됐다. 사회보장연구센터는 2002년 1월 그 명칭이 ‘건강보험연구센터’로 변경된 데 이어 다시 2006년 9월 지금의 ‘건강보험연구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2000년 의약분업 도입과 함께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격동기에 출범한 건강보험연구원에 대한 안팎의 평가는 엇갈린다. 연구원이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정권의 코드에 맞춘 정책연구 자료를 쏟아냈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최근 연구원 신임 원장에 연세대 보건대학원 정우진 교수가 임명됐다. 전임 이상이 원장이 2007년 11월 임기 만료로 물러난 이후 1년이 넘게 공석이었던 자리다. 막 출근을 시작한 그를 공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Q. 건강보험연구원장 공모에 응모한 동기는?



= 국민보건의료 향상을 위해 사회보험제도인 건강보험의 역할이 상당히 크다고 생각한다. 그런 맥락에서 건보공단의 싱크탱크라고 할 수 있는 건강보험연구원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동안 국내외 연구기관과 학계에 몸담으며 쌓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좋은 정책연구를 수행하고자 지원하게 됐다.



미국에서 보건의료 분야 연구소에 1년간, 보건사회연구원에서 6년간 근무한 바 있다. 또한 대학에서 수행했던 학술연구가 건강보험연구원장직을 수행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Q. 김창엽 초대 소장이나 이상이 전임 원장 등에 비춰볼 때 여러 측면에서 대조적인 느낌이 든다. 어떻게 생각하나? 



 = 동감한다. 전임 원장들은 의료관리를 전공한 의학자들로서 (건강보험제도를 통해) 형평성을 최대한 확대하고자했던 분들이다. 하지만 나는 경제학적 접근을 하고 싶다. 물론 나 역시 형평성이 증대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안에서 효율성도 함께 제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야 건보재정의 낭비를 줄여 더 많은 사람들이 꼭 필요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또한 형평성과 함께 동시에 추구해야 할 것은 건강보험에 대한 국민의 만족도다. 이 두 가지를 극대화해야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가 건실히 유지된다. 이를 위한 관련 연구가 시급하다.  










Q. 현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평가정보센터가 설립·운영되고 있으며, 2009년 초에는 보건의료연구원도 신설된다. 건강보험연구원과 중복된 기능의 연구기관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 



= 비슷한 기능의 연구기관이 많은 것은 다양성을 유지하는 관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효율성 측면에서는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각 섹터에서 다양한 연구가 행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집약되는 중심적 연구는 건강보험연구원에서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엄밀히 따져 보면, 사회보험 체계에서 심사평가기구가 보험자와 분리돼 있는 것은 임시적이고, 기형적인 현상이다. 심평원이 공단 내부에 존재해야 할 것 같다. 장기적으로 볼 때 심평원의 연구기능은 공단의 연구기능과 합쳐져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Q. 공단은 올해 기관 운영계획을 통해 요양기관 포괄수가제 및 유형별 총액계약제 등 지출구조 적정화를 위한 지불제도 개선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행위별 수가제도 만으로 건강보험제도가 운영되기는 상당히 어렵다. 좀 더 다양한 제도를 시행하고 적절한 방식을 선택할 시점이 왔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요양기관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수가의 크기라고 생각한다.



의료공급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수가를 결정하고, 점진적으로 시행해 나가야 한다. 의료계도 그렇게 가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 비용을 들인다면 지불제도 개선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Q. 지속가능한 의료보장체제 구축의 핵심은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다. 재정안정화를 위한 해법은 무엇인가? 



= 우선 보험재정 지출부문에 있어서 환자들의 의료이용도를 관리하는 방향으로 개선이 필요할 것이다. 외국에서 시행되는 전향적 의료비 지급방법인 포괄수가제와 인두제 등을 요양기관들이 수용할 수 있도록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수입 부문은 보험료와 국고인데, 기본적으로 보험료 수준이 낮기 때문에 이를 인상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그렇지만 현재 건보공단이 가입자인 국민들과 유리돼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공단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나 제도가 국민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조금 소홀히 하지 않았나 싶다. 국민들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가 필요한 서비스를 확인하고, 보험료 인상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해야 한다. 국민들에게 밀착된 서비스를 제공해 가입자의 만족도를 증대시키고, 보험료를 인상해도 국민들이 저항 없이 순응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공단과 요양기관간 관계도 문제다. 현재 공단과 요양기관은 반목 관계에 놓여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요양기관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 (내가) 의료계의 처지를 좀 더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공단과 의료계 사이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본다.  









Q. 정치권 일각에서 ‘건강보험 기금화’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 개인적으로 판단할 때 (건강보험 기금화는) 사회보험의 기본적인 구조와는 다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건강보험제도가) 사회보험적 구조를 갖고 있는 이상 지금 체제에서 실현 가능한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건강보험 기금화는 사회보험 체계의 기본을 훼손하는 측면이 있다.





Q. 의료계에서 수가 동등계약에 대한 요구가 높은데? 



=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에 비춰볼 때 의료수가가 싼 것은 사실이다. 의협이 주장하는 내용과 별개로 국민들에게 특정 부분이 결핍되지 않도록 의료서비스를 제공되기 위해서는 수가가 조정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국민들에게 분절적 의료서비스가 아니라 통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저수가 등은 개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가장 적절한 방법이 무엇인가는 연구원장직을 수행하면서 차근차근 찾아보도록 하겠다.



제도적인 개선과 함께 국민들에게 팽배해 있는 ‘우리나라 의료계는 돈을 많이 번다’ 등의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는 것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국민들에게 올바른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Q. 공단 재정운영위원회에 공익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유형별 수가협상을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 공단 재정운영위원으로 수가협상을 지켜보면서, 공급자와 보험자간에 상호 신뢰가 없다는 점을 느꼈다. 서로 이해하고 대화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보공단과 연구원에 의료인들이 많이 들어와서 연구도 하고 정책결정에 참여하는 것이 절실하다. 그렇게 되면 (공단이) 의료계와 임상의사들의 고충을 훨씬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Q.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건보공단의 ‘코드 연구용역’이 논란이 됐는데? 



= 지난 10년간 나 역시 (보건의료 정책 연구 등에서) 제외됐었다. 이제는 제외됐던 사람들의 의견도 들을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너무 한쪽으로 휩쓸리지 않으면서 새로운 시각을 갖고 있는 연구자들의 의견을 많이 반영하고, 통합적으로 그 의견들을 수렴할 수 있는 연구과제들이 많이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들이 변화를 추구하므로 새 정부를 출범시켰기  때문에 보건의료분야에도 변화를 유발할 수 있는 새로운 학자들이 건강보험을 연구할 수 있도록 개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건강보험연구원이 향후 수행해야 할 중요한 연구과제는 무엇인가?



= 개인적으로 국민들의 건강향상을 위해 복합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상하고 있다. 예방의학적 접근과 건강증진, 진단, 치료, 재활, 장기요양, 호스피스를 다함께 묶어서 관리하는 의료제도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싶다. 이는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방향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훨씬 더 효율적이고 국민만족도를 증대시킬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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