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병원2도 이제 4회 방송을 남겨 두고 있습니다. 전문분야도 아닌 드라마 자문에 괜히 나섰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지만 한사람의 의사로서 일반인과 의사소통을 하게 된 계기가 되어서 나름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종합병원이 시즌제로 정착이 된다면 점전 더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겠죠.





오늘 포스팅한 내용은 제 주변의 의사들이 종합병원2를 보지 않게 만든 응급실 환자의 의료사고에 대한 내용입니다. 주변 동료들이 7부를 보고 이 환자의 치료과정이 어떻게 의료사고가 될 수 있나며 드라마를 보지 않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게시판에 항의성 글도 많이 올린 것으로 압니다. 저는 8부의 내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좀 섭섭하기는 했습니다. 8부가 방영되고 나서는 오히려 의사협회 홍보드라마냐는 비판도 받을 정도 였으니까요.





의료분쟁은 의학드라마라면 한번은 다루어 보고 싶은 주제입니다. 보통 의사들은 의료사고라는 말보다는 의료분쟁이라는 말을 더 선호 합니다. 사고와 분쟁은 일반인과 의사와의 의견차이를 잘 보여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사의 과실이 명백한 의료사고는 당연히 보상을 해야 겠죠. 하지만 일반인들이 그것을 알기가 어렵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보상을 받아야 할 의료사고는 보상을 못 받고 의료사고가 아닌 경우는 불필요한 의료소송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전공의협의회장을 할 때 다양한 의료소송을 간접적으로 경험했습니다. 의료소송을 당한 전공의는 자기가 소송의 당사자가 될 줄은 그전에 상상도 못합니다. 그 중에는 명백한 의료과실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의사로서도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경우도 많아 의료분쟁은 의사와 환자 모두 지치는 소모적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이번 에피소드의 환자는 CPR하는 장면에서 문제점이 많기는 했지만 응급실에서 한 처치는 환자는 사망했어도 의학적으로 큰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의사들은 항상 환자를 살릴 수 있을 방법에 대해 고민을 합니다. 환자의 정확한 상태를 모르는 상황에서는 당연히 기도를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이고 응급갑상선절개로 피가 나오는 상황이고 기관삽관이 안된다면 다음 단계로 기관절개를 생각합니다. 기관절개를 했으면 살았을 줄 모른다고...





그런데 이 말이 보호자나 법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어떻게 들릴까요? 살릴 수 있는 환자를 시술을 하지 않아  죽었기 때문에 의료사고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실제로 알 수 없는 일이지요. 기관절개를 했으면 살았을지도... 하윤이는 이말을 듣고 과거 아버지의 경험도 있어 환자편을 들게 됩니다.









제가 수사관 앞에서 조서라는 것을 처음 써본 경험이 있습니다. 군의관으로 있을 때 장교 체력측정 지원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체력측정의 항목 중에 오래달리기가 있기 때문에 앰블런스를 타고 뒤에서 천천히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분이 어지럽다며 앰블런스로 다가왔습니다. 앰블런스를 타자마자 환자는 청색증을 보이고 의식이 소실되며 맥박이 뛰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일반 앰블런스와 다르게 당시 지원 나간 앰블런스는 CPR을 할 수 있는 장비가 모두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기관삽관을 하고 앰부 배깅을 하고 EKG를 달고 V fib(심실세동)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cardioversion(심장제세동)을 하면서 15분 정도 거리의 종합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군복을 입고 CPR을 하면서 응급실로 들어갔는데 응급실 인턴이 청진을 하더니 기관삽관이 잘 못 되었다고 다시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호흡기내과 분과전문의라는 자격증이 참으로 무색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전 아니라고 저항했지만 제가 입은 군복은 인턴에게도 무시당할 만 하겠더라구요. 이때 기관삽관을 다시 했다면 나중에 아주 골치 아픈 상황이 생겼을 것입니다. 초기 대응을 잘 못 했다구요. 다행히 응급의학과 교수가 와서 기관삽관은 잘되었다며 심장내과와 응급 관상동맥조영술을 시행여부를 논의했지만 환자는 곧 사망했습니다.




환자 사망 후에 군 수사관에게 조사를 받았습니다. 군이라는 특수한 상황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했지만 꼭 살릴 수 있는 환자가 실수로 죽은 것은 아닌지 재차 확인하는 과정이 반복되었습니다. 군대에서의 의료사고가 생기면 어떻게든 군의관에게 책임을 물으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앰블런스에 뭔가가 준비되어 있었다면 살릴 수 있지 않았나? 

병이 걸려 위험한 환자를 뛰게 한 것은 아닌가?





수사관에게 이정도면 최선을 다한거라고 말해도 수사관은 의학적 지식이 없기 때문에 의사라면 그런 처치가 당연한 거 아니냐는 반응이었습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환자를 살릴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언급을 하면 조서에 그대로 적으려고 했기 때문에 참 애먹은 기억이 납니다.





동료 군의관들은 제가 지원을 나갔기 때문에 다행이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만약 내과가 아니라 피부과나 정형외과가 지원을 나갔는데 이런 사고를 당한다면 군의관은 꽤 고생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 사건 이후의 체력검정은 내과가 나가는 것으로 결정이 났고 우리는 최선의 방어진료를 했습니다. 혈압을 재서 조금만 높아도 못 뛰게 하고 이전에 심장질환이 있었다면 못 뛰게 하구요.









이 사건 이후에도 의사이기 때문에 환자를 살릴 방법을 고민하게 됩니다.  정확한 사인을 알 수는 없었지만 관상동맥 질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재발을 방지하고 응급상황에서 치료를 할 수 있도록 의무병과 간호장교 교육을 하고 추가 약품을 준비했습니다. 이 앰블런스는 최신 인공호흡기까지 장착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종합병원2에서도 영범이가 이 환자의 case를 가지고 발표를 합니다. 영범의 대사대로 다시 똑같은 상황을 겪는다면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아마 병원내 컴퍼런스나 회진 내용을 환자들이 들으면 놀라거나 오해를 할 만한 내용이 많을 것입니다. 하윤이와 같이 어설픈 의학지식이 있는 사람이 들으면 온통 소송거리이겠죠.





제가 전공의시절에는 mortality cofnerence(사망환자 컨퍼런스)가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의료소송이 늘어나면서 컨퍼런스의 자료가 소송에 이용될 수 있기 때문에 많이 줄었습니다. 또 사인이 애매한 환자는 부검을 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부검은 점차 없어지고 있습니다. 환자에 대한 최선의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실수한 경험도 중요하고 사인을 정확히 밝혀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송의 위험으로 인해 부검을 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종합병원2의 의료소송은 결과가 빨리 나와야 하기 때문에 부검을 하게 됩니다. 이 환자의 경우 드라마라서 자세히 나오지 않았지만 응급실 내원 당시에 이미 환자의 소생가능성은 없었던 상황입니다. 병원과 환자와의 의견 대립이 있다면 가장 좋은 해결책은 부검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부검에 대해 안좋은 시각을 가지고 있어 선뜻 부검을 제안할 수 없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의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장기기증 및 시신기증 못지 않게 질병으로 죽은 환자들의 부검까지는 아니더라도 장기 일부를 적출하는 것을 허용하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의료분쟁에 대한 글이 사족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의료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지만 의사와 소비자의 입장 차이는 여전합니다. 의료분쟁조정법을 제정하기 위해 시도되어 왔지만 많은 관에 봉착해 있습니다. 의료분쟁과 관련된 중요 슈들은 조정전치주의 (의료소송을 하기전에 조정절차를 반드시 거치도록 하는 것), 형사처벌 특례조항, 무과실 의료사고 보상 및 기금 문제, 입증책임 전환문제가 있습니다. 의사의 입장과 환자의 입장이 평행선을 긋고 있기 때문에 쉽게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중에도 많은 의사와 환자들이 의료분쟁과 관련하여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의료분쟁과 관련하여 의사와 환자가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시급합니다. 지금은 병원과 환자가 일대일로 해결하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적이고 객관적인 감정기관의 운영이 필요하지만 의료가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고 과실 여부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아 의사와 환자가 모두 동의할 기관을 만들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디스클로저 프로그램(discloser program 나쁜결과 말하기)에 관심이 있습니다. 디스클로저는 폭로와는 좀 다른 개념입니다. 의료사고가 났을 때 담당의사가 환자에게 찾아가 유감을 표한 후 조사를 투명하게 진행을 하고 과실이 있을 경우 기준에 의해 보상하고 없는 경우에는 투명하게 진행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 내 여러 기관에서 1년 동안 해봤더니 매년 발생하는 의료분쟁, 즉 환자 측에서 병원을 고소하는 사건이 연간 200여건에서 100여건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건당 소송비용도 줄었으며 소송 기간도 평균 20.9개월에서 10개월 미만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이 프로그램이 국내에 들어오는데 걸림돌은 의사가 사과했을 때 의사의 사과가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이런 규정이 있는 주가 많지만 우리나라는 의사가 미리 사과를 하면 너무나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경험으로도 검사 과정에서 의료진의 잘못이 명백할 경우 환자와 보호자에게 사실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필요한 보상을 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보호자들은 이런 사과가 더 큰 실수를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추가로 진행되는 검사나 시술과정에도 의료사고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힘든 경우는 의료사고의 범위를 넘어가는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사과를 한 후에는 동등한 관계가 유지되지  못하고 저를 죄인취급하는 보호자를 보면 아직 갈길이 멀었다는 생각입니다.





의료분쟁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면 신문 청년의사에서 창간 16주년 기념 특별기획시리즈의 마지막 좌담회 기사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기사 : 의료분쟁 해결, 핵심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공적 감정기구의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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