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인턴이란 제목으로 소개된 뉴스입니다. 울산의 한 종합병원 수련의(인턴)가 실수로 엉뚱한 환자에게 레빈 튜브(L-tube)를 집어넣었다고 합니다.





지난 8일 울산에 사는 A씨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12월 20일 저녁식사를 한 뒤 속이 몹시 좋지 않아 오후 10시께 인근의 한 종합병원을 찾았다고 합니다. 엑스레이 촬영 결과도 아무 이상이 없자 컴퓨터 단층(CT) 촬영까지 하고 대기 중이던 A씨에게 한 의사가 5차례나 찾아와 "장에서 가스를 빼내야 한다"며 코로 관을 집어넣을 것을 요구했다고 하네요.





영문도 모른 채 "검사 결과가 안 나왔는데 벌써 하느냐"고 반문한 A씨에게 이 의사는 "검사 결과와 상관없이 무조건 가스를 빼야 한다"며 A씨의 코를 통해 장으로 관을 집어넣었다고 합니다. 30여분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A씨는 조금 뒤 경악했습니다. 알고 보니 정작 가스를 빼야 할 사람은 자신의 옆에서 함께 대기하고 있던 장폐색증 환자였던 것이죠. 환자 이름을 미처 확인하지 않은 수련의가 사람을 잘못 알아본 결과였습니다.









분명히 의료진의 과실이고 병원이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 같습니다. 코를 통해 삽입하는 레빈 튜브는 비가역적인 시술이 아니였기에 건강이나 생명에 위해가 되지는 않습니다만 극심한 구역질과 통증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인턴이 되면서 서로 서로 넣어주며 환자가 겪을 그 통증을 느껴봤던 기억이 납니다.





인간이 하는 일이니 있어서는 안될 일이지만, 실수가 있기도 합니다. 이런 실수를 예방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중요도에 따라서 몇차례 중복 확인을 하게 하도록 만들기도 하죠. 수술 환자의 경우 수술 전날 수술 부위에 표시를 하고, 다음날 수술방 간호사, 마취과, 수술 담당 전공의, 집도의가 다시 확인을 하지만 그래도 엉뚱한 부위를 수술했다는 뉴스가 국내뿐 아니라 해외, 의료 선진국이라고 하는 미국에서도 토픽으로 뜹니다.





레빈 튜브야 비가역적인 처치도 아니고 큰 위험이 없는 간단한 처치입니다. 그렇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안해도 될 처치를 했고 고통을 당했으니 분통 터지는 것은 확실합니다. 언론에까지 나올 정도니 분명 저 인턴 선생은 평생 기억에 남을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저런 상상을 해보다가 제 인턴 생활이 떠올랐습니다. 저도 사고를 친적이 있거든요. 응급실 파견에서 골절이 있는 소아환자의 X-ray에서 골절 부위를 놓쳤던 것입니다. 다음날 다른 병원에서 다시 X-ray를 찍고 응급실로 항의하러 왔음은 물론이고, 파견 병원 정형외과 과장님과 저는 환자 보호자분께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드릴 수 밖에 없었죠.





생각해보면 변명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찾기 어려운 소위 금이 간 사진이였기도 했지만, 그래도 자세히 보면 보이는 것은 사실이였습니다. 속으로는 좀 억울하기도 했습니다. 밤 사이 엄청나게 몰려온 환자들 속에서 발생한 일이였거든요. 억울함은 업무량이 제대로 분배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억울함이였습니다.





요즘은 인턴 업무량이 많이 줄었습니다. PACS라고 하는 컴퓨터 영상장치와 EMR이라고 하는 전산화된 의무기록 덕분입니다. 아날로그 인턴 시대의 마지막 차를 탔던 저는 하루 종일 발바닥 물집이 터저 축축해진 양말을 신고 병원을 뛰어다녔습니다. 의사가 되서 발바닦에 물집 잡히도록 뛰어다녀야하는 줄 몰랐습니다.





예를 들면 7시 30분에 회진도는 호흡기 내과 환자 CT 사진을 회진때 보자 마다 구관에 있는 7시 40분에 회진을 시작하는 흉부외과에 협진을 위해 긴급 배달(?)하는 역을 하기도 했고요, 다음 주 입원할 환자의 차트를 찾거나 옛날 필름을 찾기 위해 창고를 밤새워 뒤지다가 거기서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쓰다보니 눈에서 눈물이...





물론 인턴 업무가 이런 일만 있는 것은 아니고 여러 의료 처치도 있습니다. 위장관에 레빈튜브를 넣는 일이나 동맥혈 채혈, 항암주사, 응급실 진료 등도 있죠. 여러 실수도 있고 때로는 혼나기도 하고, 무력감에 좌절하기도 하면서 성장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의사라면 누구나 인턴, 레지던트 시절을 추억합니다. 하지만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왜곡되기도 하고 잊혀지기도 합니다. 만약 그 시절에 조금만 더 여유를 가지고 기록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저도 책한권은 못쓰더라도 블로그에 할 이야기가 참 많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면에서 얼마전에 본 '인턴 일기'란 책은 부럽습니다. 누구나 공감할 인턴의 경험담이 담긴 책이였거든요. 인턴의 시각에서 의료를 바라본 기록이란 면에서 성장 과정의 의사가 느끼는 감정이나 경험이 잘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일전에 읽은 영국 응급실 의사의 '의사 이야기'와 비슷한 면도 있습니다.





책 속에는 인턴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감정들을 당시의 시점에서 아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처음 채혈하면서 있었던 일... 누군가의 팔에 멍을 만들었던 일... 의사로써 자신감을 상실했던 일.. 누군가에게 살을 잡혀본 일... 처음 의사가 되면서 각오했던 것들이 점차 무뎌져 가는 자신을 발견하는 일 등..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엉뚱한 환자에게 레빈 튜브를 넣은 인턴 선생님은 지금 어떤 심정일까요. 아마 두려움과 자신감 상실에 떨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 해선 안될 실수였죠. 하지만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책임을 지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을 배우는 것도 인턴때 경험해야할 성장통인 것 같습니다.
















인턴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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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

지은이

홍순범 (글항아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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