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부 대학과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의대 신설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국립목포대, 인천대, 대진대(대진의료재단 분당제생병원) 등 여러 대학들의 주장은 ‘우리 지역에 의대가 없다’, ‘의대(대학병원)가 생김으로써 지역의 낙후된 의료 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 등으로 비슷비슷한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90년대 초중반, 의대 신설이 러시를 이루던 시절에 듣던 것과 똑같은 내용입니다. 이런 논리를 바탕으로 김영삼 정권 5년 동안 9개의 의대가 신설되어, 현재 우리나라의 의대 숫자는 41개에 이릅니다. 인구 대비 의과대학 수 측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하죠.











의료 혜택으로부터 소외된 지역 주민을 위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리 없습니다. 하지만 의대 신설은 그 해답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한데요, 그 증거는 10여 년 전에 같은 이유로 설립된 신생 의대들의 현주소를 살펴보면 됩니다.





현재 4개 의대가 설립 당시 인가의 전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여 정원 감축을 당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조속히 해당 지역에 500병상 이상의 부속병원을 설립하지 않으면 당장 2010년부터 해마다 10%씩 계속해서 정원을 줄여야만 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들 대학들은 구체적인 병원 설립 계획조차 없는 가운데 정부의 ‘구제 조치’만 기다리는 배짱을 부리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빅 4’를 넘어 국내 최고 병원 지위를 노리고 있는 삼성서울병원을 수련병원으로 두고 있는 성균관의대와 LA에서까지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차병원 재단의 포천중문의대도 이들 4개 대학에 포함돼 있다는 사실입니다.





특정 지역 발전을 명분으로 그 지역에 의대를 설립해 놓고 슬그머니 캠퍼스를 서울 등으로 옮기고 병원도 다른 곳에서 운영하는 행위는 기만적이라 할수 밖에 없는 것이죠. 어쩌면 이런 대학들에 대해서 아무런 제재 조치가 지금껏 없었기 때문에, 지금 다시 여러 대학들이 같은 수법을 사용하려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속병원 설립 약속을 어기는 것 외에, 열악한 교육 환경도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대 인정평가가 점차 강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일부 의대가 교수진 구성이나 실습 환경 등 여러 측면에서 기준 미달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심지어 ‘국가고시 대비 학원 아니냐’는 비판까지 듣는 학교도 있습니다.





이는 학생에게는 물론이고 궁극적으로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갑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의대 신설이라는 승산 희박한 도박이 아니라 기준 이하 의대들을 자극하고 격려하여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일이 더 시급합니다.





가장 원시적인 방법이기는 하나, 의대 인정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의대에게 강력한 불이익을 주는 조치가 필요하며, 단기간에 단위 대학이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의 적극적 지원도 필요하리라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선의 전망이 보이지 않는 대학은 폐쇄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모두에게 이익될 겁니다.





전체적인 의사 인력 공급 상황을 보아도 의대 신설은 어불성설입니다. 현재 의사 수가 부족한지에 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10년 20년 후에는 분명히 과잉 공급으로 인한 문제가 불거질 전망입니다. 오히려 전체 의대 입학정원을 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일부의 욕심으로 인해 의대 신설 주장이 자꾸만 제기되는 것에 대해 깊은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지역사회에 있는 대학병원 자체의 공동화 현상 (서울로 환자 쏠림 현상)이나 지역 의대 출신 인턴 레지던트의 감소에 대한 고찰 없이, 의대를 만들면 지역의 의료 수준이 향상될 것이라는 대학 관계자들의 주장으로 주민을 선동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의과대학은 지역 특산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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