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성식욕부진증이라고도 부르는 거식증은 섭식장애의 하나로, 체중 증가에 대한 스트레스 등으로 먹는 것을 장기간 거부하는 질환이다. 지금까지는 거식증으로 인한 영양실조로 이차적인 저혈당, 지질 이상 등 대사문제가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대사 이상이라는 유전적 특성이 거꾸로 거식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전 세계 섭식장애 유전전문단체인 섭식장애 정신유전컨소시엄그룹(Eating Disorders Working Group of the Psychiatric Genomics Consortium, PGC-ED)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다국적 연구결과에 따르면 대사 질환을 유발하는 돌연변이 유전자가 거식증에도 동일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유전적 대사 이상의 한 극단이 당뇨, 지질 이상, 과체중 양상의 질환이라면, 다른 극단은 거식증 양상으로 나타난다는 분석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신디아 불릭(Cynthia M. Bulik)교수와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의 제롬 브린(Gerome Breen) 박사는 전 세계 100여 개 기관의 공동연구자들과 함께 유럽, 북미, 호주의 유럽 혈통의 거식증 환자 1만 6,992명과 건강한 여성 5만 5,525명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한국에서는 인제대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율리 교수가 참여했다.

연구팀은 거식증 환자의 DNA 중 8가지 돌연변이 유전자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거식증을 유발할 수 있는 돌연변이 유전자는 대사질환(당뇨, 지질대사 이상)을 유발하는 유전자와 동일했다. 하지만 해당 유전자의 발현 정도는 대사질환과는 비례하는 반면, 거식증과는 반비례 양상을 보였다. 또 강박장애, 우울증, 불안장애, 정신증에서 발견되는 유전자와 동일한 유전변이를 발견했다.

신디아 불릭 교수는 "지금까지 거식증 연구는 심리적인 부분에 초점을 둬왔다. 이번 연구 결과를 통해 왜 거식증 환자들이 쉽게 저체중이 되고, 영양치료 후에도 쉽게 재발하는지 알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으며 제롬 브린 박사는 "거식증 환자들의 대사이상은 영양 결핍에서 비롯하지만, 이번 연구 결과는 타고난 대사이상이 거식증을 유발함을 알려 준다"고 말했다.

김율리 교수는 “본 연구는 거식증 병인에 있어 획기적 전환을 가져왔다”며 “향후 거식증 치료에 있어 대사적 특성과 정신적 위험 요인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네이처 제네틱스(Nature Genetics)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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