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도서가 된지 오래되었지만, 뒤늦게 승자독식의 사회란 책을 읽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읽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승자독식하는 사회(The Winner Take All Society)에서 이야기하는 것들 중 경제 현상에 대한 것은 다른 경제 서적에서도 볼 수 있던 것이였지만, 약간 다른 것은 경쟁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방향 제시일 겁니다.





승자가 독식하는 사회는 의료 사회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란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의과대학 입학하기 위해서 피땀흘려 공부하는 것 자체가 이런 경쟁 속에서 이기기 위한 것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러나 정말 무서운 경쟁은 의대 입학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상위 1%가 진학한다는 의과대학도 서열화가 있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습니다. 디씨 인사이드 의학갤러리에서는 의대 진학을 꿈꾸는 학생들과 의대생들이 학교 서열 놀이를 합니다. 선배로써 이런 것이 과연 의미있는 것인가란 생각과 유치함도 느끼지만, 사실 학교 교육의 질의 차이는 있을 겁니다. 그것이 얼마나 좋은 결과로 나타나 배출되는 의사간의 유의미한 차이를 나타내느냐는 별개로 말이죠.









그러나, 더 관심을 가져야하는 것은 입학전에 실제 능력의 차이가 없는 학생들이 아주 근소한 차이로 서열화된 학교에 차례대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모 지역에서 의대를 신설하겠다고 하는데, 실제 배출되는 의사 수는 통제해야하기 때문에 다른 의대의 정원을 줄여 만들면 된다는 이야기를 보통 합니다. 그렇게 되면 정말 근소한 차이로 극과 극의 교육 환경에서 교육을 받아야할 겁니다.





실제적인 교육의 질도 문제지만, 사람의 인식 속에 있는 명문대에 대한 신뢰 역시 평생을 따라다닙니다. 때문에 의과대학 졸업 후에 좀 더 좋은 병원, 좋은 대학원에 진학하고, 유명 해외 병원에 연수를 다녀 온 것을 직.간접적으로 홍보를 합니다.





또 병원의 시설로도 경쟁력을 강화합니다. 새로운 시설과 장비, 예를 들면 더 좋은 CT, MRI 그리고 다빈치(로봇), 개인 병원의 경우에도 피부에 사용하는 레이저 장비등을 직.간접적으로 홍보합니다. 당연히 엄청난 비용이 드는 모험입니다만, 승자가 되면 보상되고도 남을지도 모르죠.





그러나 모두가 승자가 되지 못하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최근 몇 대학 병원의 경영이 어렵다는 뉴스와 도산하는 개인 병원 소식만 보더라도요. 게다가 최근에는 병의원의 은행 대출 연체율이 높아져 대출 범위를 병원 수익성을 분석해 진료과에 따라 차등 적용하겠다고 하니, 정말 의료 시장은 치열한 경쟁 속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후회없는 선택을 하기 위해, 환자와 그 가족이 최고의 병원, 최고의 시설을 이용하려는 마음도 이런 경쟁을 부추기는 요인이 됩니다. 실제 수술의 결과에 차이가 없다고 아무리 이야기 하더라도, 행여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가 나온다면 평생 마음의 짐이 될 것은 분명합니다. 환자뿐 아니라 의사의 마음도 그렇기에 강하게 붙잡지 못하죠.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어느 병원을 가든지, 의료 처치에 따른 비용은 차이가 없습니다. 건강 보험이 적용되는 한 그렇습니다. 물론 병원마다 비급여 항목이 있고, 검사 횟수등에 따른 차이가 있겠지만, 한 항목당 비용은 전국이 통일되어 있습니다.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측면은 여러분은 의료 비용이 더 비쌀까봐 서울에 있는 유명 대학병원에 갈지 말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고 불행일 수 있다는 측면은 이 제도로는 의료 시장의 과도한 경쟁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환자의 숫자로 수익을 늘릴 수 밖에 없기에 당연히 최고의 병원이라고 하면 환자의 대기시간은 길고 진료 시간은 짧을 수 밖에 없죠. 비용은 묶어 놓았지만 한정된 자원(병원)만 활용되는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진료 시간을 가지고 뉴스꺼리로 만드는 기자는 아주 피상적인 것만 아는 사람입니다.





시간이 흐를 수록 이런 현상은 더 커져갑니다. 지방의 A라는 교수의 수술 실력과 서울의 B란 교수의 수술 실력이 차이가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질문에 적어도 서울의 B란 교수가 그 수술을 훨씬 더 많이 한다라고 답할 수는 있는 시대입니다. 수술 건수가 많다는 것은 연구도, 실적도 늘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의료의 쏠림 현상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우리 의료의 왜곡도 더 심해집니다. 대학 병원이 3차기관으로써 진료해야할 것이 아닌 1-2차 기관에서 봐야할 환자들도 보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지난 시절에는 거리가 멀어 접근성이 좋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가까운 의료 기관을 이용했지만 교통 수단의 발달은 전국을 일일 생활권으로 묶었습니다. 부산에서도 서울에서 KTX를 이용해 당일로 병원을 다녀 올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더 고속의 교통 수단이 생기면 거리에 따른 장벽은 사라질겁니다.





아무리 교통이 좋아져도, 집 앞에 있는 것보다 더 좋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의과대학을 지역 발전이란 명분으로 만들고, 많은 지역 주민들이 반깁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서울에 유명한 대학 병원과 같은 규모와 실력입니다만, 그 서울의 유명 병원의 규모와 시설을 따라한다고 만족할 수 있을까요? 10년 전에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의과대학 신설을 많이 했습니다만, 지금와 돌아보면 예상과는 다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시간이 더 지나면 지방에 있는 대학 병원의 수술 건수가 너무 적어 의대생들과 수련의들의 교육에 차질을 가져올지도 모릅니다. 이미 그런 곳이 있다고 말씀드리지는 못하겠습니다. 의과대학 학생들은 지방에서 졸업하고 나서 서울로 수련을 떠납니다. 지방에는 의사가 부족하다는 뉴스가 종종 나옵니다. 지역에 경제력이 어느 정도 되는 환자들도 서울로 떠납니다. 어느 사이엔가 대학과 병원의 서열화는 강화되고, 특정 상위 병원으로의 환자 쏠림은 더 심해질 겁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이미 실패 사례들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에서 의과대학 신설을 하고 또 병원을 만들어야하는 것일까요? 경쟁만 가속하는 것은 아닌가요? 이미 있는 자원을 활용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혹시 이런 경쟁 속에서 더 나은 서비스가 나오는 것이라고 믿고 있으신가요? 만약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본인은 진보적이거나 평등을 중요시 한다고 믿는 것은 아니길 바랍니다.





많은 분들의 의료민영화를 두려워합니다. 잘은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단기적으로는 지금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 줄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의료의 공공성을 해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모두들 민영화만 걱정하고 있습니다. 마치 유행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지금의 현실도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의료의 질과 만족도를 떨어뜨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것이 민영화에 대한 고민보다 더 선행되야하는 것은 아닐까요?





지금의 우리 의료의 미래는 갈림길에 있습니다. 어물쩡거리다가는 가운데의 중앙 분리대에 충돌할 위기입니다. 우측으로 가면 당장 내 돈은 적게 들지도 모르지만 그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길이고 좌측으로 가면 당장 내가 부담해야하는 돈이 더 많아지는 길입니다. 중앙 분리대로 충돌하자고 하지는 맙시다. 내 돈을 더 부담하기도 싫고, 민영 자본을 들여오기도 싫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가장 무책임한 행동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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