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력 있는 ’유전성 부정맥‘ 유력…유전자 검사로 미리 진단

어릴 때부터 뇌전증(간질)으로 약물치료를 받아오던 고등학생 A군은 어느 날 발작이 심해져 여느 때처럼 중앙대병원 응급실을 찾게 됐다. 짧게는 몇 초에서 길게는 2~3분까지 지속되는 A군의 발작은 약을 챙겨 먹어도 조절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A군 심전도 모니터에는 심장 수축이 병적으로 빨라지고 심한 경우 급사에 이를 수 있는 ‘심실빈맥’이 나타났다. A군의 간질 발작은 심실빈맥으로 뇌혈류가 일시적으로 공급되지 않아 생기는 2차적인 현상이었던 것이다.

정밀검사를 받은 A군은 유전성 부정맥의 일종인 ‘긴 QT 증후군(Long QT syndrome)’으로 진단받았다. 부정맥 치료를 받으면서 A군은 이후 간질(심실빈맥) 발작은 한 번도 없이 대학생이 된 현재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긴 QT 증후군(Long QT syndrome)’은 유전성 심장질환이다. A군의 어머니는 심전도 검사에서 ‘유전성 부정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외할아버지도 30대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심장마비로 돌연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심장마비 또는 심실빈맥은 갑작스런 돌연사의 주된 원인 중 하나였다. 보통 고혈압‧이상지질혈증‧당뇨병‧흡연 등의 위험인자의 종합적인 결과로 관상동맥이 막히면서 생긴다. 급성심근경색과 같은 허혈성 심장병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실제 돌연사로 사망한 환자들을 분석해 보면 관상동맥에 병이 없거나 심하지 않은 10대부터 30~40대 청장년층에서 발생하는 심장 돌연사의 경우 가족력이 있는 유전성 심장질환일 가능성이 있다.

돌연사를 일으키는 유전성 심장질환에는 ‘브루가다 증후군(Brugada syndrome)’과 ‘긴/짧은 QT 증후군(Long/Short QT syndrome)', '비후성 심근증(Hypertrophic cardiomyopathy)', '부정맥 유발성 우심실 이형성증/심근증(Arrhythmogenic right ventricular dysplasia/cardiomyopathy)' 등이 있다.

우리나라의 심정지 발생 수는 연간 2만5,000명 정도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 가운데 기질적인 심장질환이 없는 급성 심정지 환자가 ‘유전성 부정맥’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대한심장학회가 2007년부터 2015년까지 국내 급성 심장마비 환자 1979명을 분석한 결과, 290명(14.7%)이 ‘유전성 부정맥’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가족력이 있는 유전성 부정맥이 있는 경우 심장질환으로 고혈압‧고지혈증‧당뇨병 등 관상동맥질환 또는 기저질환이 없어도 젊은 나이에 갑자기 돌연사할 위험이 있다.

유전성 심장질환에 의한 돌연사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심장질환 가족력이 있다면 증상이 없거나 경미한 경우라도 부정맥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을 찾아 심장초음파‧심전도검사‧유전자검사를 통해 신중하게 평가하고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

이들 유전성 부정맥의 진단 과정에서 유전자 검사가 유용하게 활용된다. 이 가운데 최근 도입돼 널리 사용되고 있는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 Next Generation Sequencing)' 기술을 통해서 유전자 이상이 병으로 발현되기 전 단계에서 유전성 심장질환 위험군을 미리 찾아 낼 수 있다.

중앙대병원 신승용 순환기내과 교수는 “유전적인 이상만 있다고 치료를 결정하지는 않지만, 개별 환자에서 병의 진행 정도에 따른 돌연사 위험도를 평가해본 후 치료 방향을 결정한다”며 “급사의 위험도가 중등도 이상이라면 이식형 제세동기 시술을 신중히 고려하거나 경우에 따라서 고주파 전극도자절제술로 돌연사의 발생위험을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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