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뺨치는 아마추어들이 활동하는 블로그 세상에서 전문가가 전문가로 대우 받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정보가 평등하게 취급되는 만큼, 통찰력과 식견을 보여주는 경우가 아니면 살아남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정지훈 소장의 블로그 ‘하이컨셉&하이터치’는 사회를 보는 눈을 가진 전문가의 날카로운 분석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블로거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지난해 9월 본격적으로 블로그를 시작해 올해 2월 방문자 100만을 기록했으니 수치로도 확인되는 인기다.





2월말 아부다비로 일주일간 출장을 다녀왔다는 정 소장은 우리들생명과학기술연구소장이자 해외사업 총괄자다. 직책상으로도 첨단 의료, 공학의 현장과 시장의 상황을 꿰뚫고 있어야 하는 입장이다. 매일 인터넷을 통해 세상의 수많은 변화를 접하는 것이 정 소장에게는 더 없는 즐거움이라고. 특히 정 소장은 사용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컨텐츠를 만들고 공유하는 웹 2.0과 의료가 합쳐진 Health 2.0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의 블로그에서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분야 중의 하나.






정지훈 (우리들생명과학기술연구소장, 의공학박사)





“ 지금은 산업 혁명에 이은 또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변화하는 시대입니다. 그 흐름을 거스를 수 없죠. 제가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의공학을 공부할 때 지도교수가 말했죠. 만약 지금 당신이 보는 것이 SF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미래에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SF처럼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이 잘못된 것이다, 저는 이 말을 제 인생의 모토로 삼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그리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 변화의 흐름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세상이 ‘리니어(linear)하게’ 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세상은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바뀌다가 어느 한 시점에서 폭발적으로 변화한다.





“말콤 글래드웰의 <티핑 포인트>를 좋아합니다. 타이밍의 예술에 대해 말하고 있죠. 지금은 200년간 이어져온 산업혁명이 새로운 시스템으로 발전해나가는 타이밍, 티핑 포인트의 순간이죠.”





의사면허제도, 지속될까?





이런 변화에서 대표적인 특징은 프로페셔널리즘의 와해다. 전문가가 정보를 틀어쥐고 있는 산업혁명시대에서 대중지성이 스스로 만들어낸 고급 정보를 아무런 대가없이 공유하는 시대. 의료계에도 변화가 올 수밖에 없다.





특히 지금 현재 의료계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시스템인 라이선스, 즉 의사면허 자체에 도전이 올 수도 있다. 미국 의료계도 눈부시게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 미국에서 2010년 virtual visit, 즉 원격진료에 대해 보험이 인정될 예정인데 이건 하나의 예죠. 대중이 모여서 만들어낸 고급 정보는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이 생산하는 고급 정보에 뒤지지 않습니다. 물론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에 대해 의사들은 신뢰성이 없다고 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생기기 마련이거든요.”





온라인 백과사건인 위키피디아는 피어리뷰 방식으로 잘못된 정보를 고치려 한다. 웹 2.0과 전통적인 전문가 사회의 견제장치가 만난 셈이다. 하버드 의대에서는 위키피디아 형식을 띤 의학대사전을 구상하고 있다. 각 의료 사이트 정보를 전문적으로 리뷰하는 곳도 있다.





“집에서 모든 기초 의학검사를 할 수 있는 기계가 상용화될 겁니다. 생활 중심의 전인적인 의학으로 가겠죠. 이에 대응해서 의사도 변해야죠. ‘제너럴 닥터’라고 카페의원도 있잖아요? 수익 보전 차원만이 아니라 의사의 진료실이 옛 사랑방처럼 사람들이 만나서 정보를 교환하는 곳이 되는 거죠.”





하지만 평범한 의사들이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지 않을까. 그는 잘라 말한다.





“면허체제 자체, 전문가 권위가 도전을 받는 시점이에요. 미네르바 사건도 그렇죠. 결국은 의사 면허가 아니라 개개인의 능력에서 권위를 찾게 될 거라고 봅니다. 어쩌면 10년 안에 이런 변화가 올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변화가 찾아오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릴 듯하다고 덧붙인다. 이런 변화가 일어날 잠재력은 큰 환경이지만 의료 규제가 많기 때문에 새로운 산업으로서 의료계가 발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의료계, 변화에 민감해야





한참 동안 세계와 의료계의 변화에 대해 강의(?)하는 정지훈 소장, 좁고 깊게 파야 하는 전문가의 특성과는 다른 깊고 넓은 식견을 자랑한다. 그는 어떻게 이런 능력을 갖게 됐을까?





“ 원래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싶었고, 의대는 2지망이었어요. 하지만 의학이라는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를 전공했기에 다른 분야를 색다른 관점으로 보게 된 것 같습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의료정책을 공부하고, USC에서 의공학박사 학위를 딴 것은 이런 관심사 때문이기도 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모으고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있다. 지금 하는 일 역시 글로벌 트렌드에 둔감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그가 이렇게 최신 정보에 매력을 느끼게 하는 자극제다.





이렇게 최신 정보를 꿰고 있다 해도 변화를 반영해야 하는 의료는 사회의 수많은 규제와 환경으로 발이 묶여있는 상황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그 변화가 초보적인 단계.





“ 사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정보를 통해 뭘 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제가 하는 일도 우리나라보다는 세계의료시장의 변화에 더 민감해야 하고요. 하지만 바깥세상이 변한다면 어느 순간 우리나라 의료제도도 바뀌는 시기가 올 겁니다. 그 때는 또 제 지식을 우리나라 의료계의 발전을 위해 쓸 수 있겠죠.”





20년 후 내 모습, 미래학자





수많은 관심사를 챙기고 공부를 지속하고 있지만 그것은 당연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공학과 의학 등 과학으로 재단할 수 있는 변화는 그리 많지 않다. 과학이 사회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인간과 문화를 알아야한다. 그의 블로그 제목이 ‘하이컨셉, 하이터치’인 것이 이해가 간다. 하이테크의 기반에 감성적 요소가 합해져야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학을 더 공부하려 하고 있습니다. 지리, 인종, 문화 등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저의 강점인 의학도 더 갈고 닦아야겠죠.”





계속해서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은 이런 배움을 정리하려는 차원에서다. 지금은 현장에서 정신없이 뛰고 다른 뛰어난 학자들의 예측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시야를 넓히고 있지만 20년 쯤 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는 미래학자가 되고 싶단다. 지난 10년간의 변화를 생각해보면 앞으로 10년 후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는 예측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 변화의 흐름을 읽고 언젠가는 그 방향을 예측해 보겠다는 정지훈 선생은 이미 미래학자의 꿈을 조금씩 실현해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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