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음알음 전해지던 ‘한의계 위기설’이 뜬소문이 아니라는 정황들이 하나 둘 확인되고 있습니다.





한의계가 최근 급속히 쇠퇴의 늪에 빠져들고 있는 원인은 한의사 숫자의 급증, 발기부전 치료제의 개발로 인한 보약 수요 급감, 반복된 중금속 파문으로 인한 신뢰 상실, 그리고 불경기 등 네 가지 정도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10년간 한의사 2배 증가…건강기능식품 밀려 보약 수요 '뚝'





실제로 1999년 1만343명이던 한의사 수는 2009년 3월 현재 1만9,500여명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의사가 6만6,985명에서 10만1,988명으로 52.3%, 치과의사는 1만6,764명에서 2만4,442명으로 45.8% 증가한 것에 비하면 상당히 가파른 증가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한의원 매출의 약 80%를 차지하던 첩약, 즉 ‘보약’ 수요가 많게는 50%까지 감소했습니다. 한의계에 따르면 산전·후 관리, 정력, 원기보충 등이 테마인 보약은 2000년대 들어 매년 터지는 한약의 중금속 파문으로 수요가 줄었고 이 틈새를 ‘홍삼’을 필두로 한 건강기능식품 시장이 파고들었다고 합니다.





건식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홍삼 시장 규모는 약 8,000억 원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또 10년 전부터 비아그라를 필두로 발기부전 치료제들이 줄줄이 출시된 것도 보약 수요 감소의 한 이유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지역의 모 한의원은 10년 전에는 연 매출액 6억원에 순이익이 2억원에 달했으나, 현재는 그 매출이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고 전했습니다.





250만원 월급 한의사 모집에 지원자 대거 몰려





한의원컨설팅업체 2N2의 박병철 팀장은 “한의원 원장들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하다보면 약 10년 전과 비교해 수입이 적게는 20~30%에서 많게는 50%이상 줄었다는 하소연을 자주 듣게된다"며 " 이같은 현실을 반영한 것인지 약 한 달 전 청주지역 요양병원에서 월급 한의사 1명을 뽑는데 200명이 지원했다고 들었다"고 전했습니다.





경영악화로 폐업하는 한의원도 늘고 있고, 젊은 한의사들의 신규 개원은 더 어려워졌다고 하는데요, 최근엔 월급 한의사 모집 공고를 내면 한 명을 뽑는데 수십명이 몰리기도 한다. 월급 한의사의 월 급여는 300만원 수준까지 떨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서울 A한의원의 장 모 원장은 “월급 250만원인 부원장 1명 모집하는데 원장 경험이 있는 사람을 포함해 50여명이 지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최근 한의대 동기 중 2명도 환자가 줄고 수익이 없자 대출금을 갚지 못해 파산신청을 하고 월급 부원장 자리 알아보고 있다"고 상황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한의대 인기도 시들…경희대 한의대 커트라인 하락세





이런 변화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곳이 입시 시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서울 강남에서는 ‘이제는 한의대 보내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돌고 있으며, 실제로 서울의대와 맞먹는 수준이던 경희대 한의대의 커트라인과 경쟁률도 점차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교육전문가들은 한의사의 미래를 ‘불투명하다’고 보고 있다는데요, 한의계는 나름대로 자구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한의계는 2000년대 들어 비만, 탈모, 피부, 임신, 비염, 성장 등 특화된 진료를 표방하며 네트워크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감소한 보약 수요를 특정 질환 치료 분야로 전환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특화된 진료차별화는 오히려 환자의 폭을 좁히는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도 있으며, 최근의 불경기까지 겹치면서 경영 악화는 심해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행법상 의료법 위반인 CT, MRI 등 의료기기를 사용하며 불거진 양의계와의 분쟁도 이런 어려움 가운데 큰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약 10년 전부터 조짐을 보인 한의계의 위기는 당분간 지속되거나 더 악화될 것이라는 게 관련 업계 전문가들의 관측입니다.





한의계도 점차 빠져들고 있는 쇠퇴의 늪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선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하고 있습니다. 신비주의에 가까운 ‘비방’에서 벗어나 현대 의학의 트렌드인 ‘근거중심의학’으로 가기 위해 객관화된 데이터를 제시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으며 이와 관련한 노력도 경주하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한의사들 사이에선 의료일원화의 필요성이 점차 대두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30대 초반의 한 한의사는 “한의대 시절에는 한의학을 고수해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지만 의료 현장에 진출하면서 전통 한의학의 진료 범위의 벽에 맞닥뜨려 의료일원화의 필요성에 손을 드는 젊은 한의사들이 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의료계에서는 한의계의 위기가 의료계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입니다. 돌파구를 찾아야하는 한의계가 택할 수 있는 길 중에는 현대의학적 치료를 병행하거나 가미하려는 경향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는 의료일원화 논쟁을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시각도 존재하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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