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산부인과 교수로 있으면서 컴퓨터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오성택 교수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머릿속에는 두 가지 경우 가 떠올랐다. 공대를 가고 싶었으나 집안의 권유로 의대에 들어간 후 공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의사, 혹은 현장에서 필요한 시스템을 직접 만들어보겠다는 사명감으로 공대 박사과정에 도전한 의사. 오성택 교수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물론 전자죠”하며 웃는다.




의대 외과 교수의 첫째 아들이었던 탓에 ‘당연하게’ 의사가 되어야 했지만 공학에 대한‘사랑’은 20년 넘게 간직해왔고, 2005년 호남대 컴퓨터공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하는 것으로 평생의 소원을 이루게 됐다. 4년 만에 받은 박사학위가 더 없이 자랑스럽고 소중하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소중한 건강을 잃을 뻔도 했다는 오성택 교수. 오 교수의 공학박사 도전기를 들어봤다.








오성택 교수를 인터뷰하기 전, 병원 직원에게서 그가 병가 중이라는 소식을 먼저 들었다. 그리고 2주일 후에 이뤄진 오 교수와의 전화 통화, “언제든 오셔도 좋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말이 어눌하지만 오실 때쯤 되면 훨씬 알아듣기 좋을 거예요.”




다행히도 그의 얼굴빛은 좋아 보인다. 논문 심사로 긴장한데다가 할머니의 부고까지 겹쳐 스트레스가 심했던 탓인지 가벼운 뇌졸중이 왔었다고. 다행히 지금은 약간 말이 어눌한 것을 빼면 회복 상태다.




“3개월쯤은 이 상태가 지속될 거라고 하더라고요. 선생님들이 한 달은 쉬어야 한다고 했는데, 2주 만에 수술을 시작했어요.”




스트레스를 가장 쉬운 방법인 술 마시기로 풀려 했던 것이 문제가 됐던 것 같다며 오 교수가 웃는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이는 말, “이젠 음대 한번 가볼까 했는데 음악은 취미로만 해야죠, 하하.”




공대식 논문 vs 의대식 논문




오 교수의 박사논문 제목은 《GLCM 특징과 신경망을 이용한 유방 초음파 영상의 비정상 패턴 유출에 관한 연구》. 간단하게 말하면 초음파 검진장치를 사용하는 개원의 등이 유방세포 검진을 할 때 암으로 의심되는 비정상부위를 손쉽게 판별할 수 있도록 하는 컴퓨터 보조진단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다.




“보통 영상의학과 의사들이 유방암 진단을 내리는데, 환자들이 직접 영상의학과 의사들을 만나는 일은 별로 없잖아요. 첨부터 엑스레이 찍는 사람은 없으니까.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가기 쉬운 산부인과 등에서 건강검사 등으로 오는 환자들에게 매스 스크리닝을 통해 유방암 검진을 할 수 있다면 유방암을 일찍 발견하는 비율이 훨씬 높아지겠죠. 의심 환자를 영상의학과로 의뢰하면 되니까. 이런 것을 가능하게 하는 프로그램이 전 세계를 뒤져봐도 없어요. 그래서 연구해보자 싶었죠.”




원래 제목은 ‘산부인과의사와 일반개원의를 위한 기초유방방사선 판별시스템’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도 교수들의 평은 ‘너무 의대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공대에서는 결과를 내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썼느냐가 중요한데 의대에서는 ‘결과’를 찾는 자체를 중요시한다는 결정적인 차이점을 발견한 후, 의대식 논문 서술법을 공대식으로 바꾸느라 꽤나 애를 먹었다고.




“제 논문에서 언급된 GLCM(Gray Level Co-occurrence Matrix)이 가장 많이 쓰이는 데가 주차장이거든요. 장치가 번호판에서 신호를 감지해서 언제 들어와서 어디 주차했다가 언제 나가는지 체크해서 주차비가 얼마 나오는지 알려주는데, 이 프로그램을 이용해 초음파 패턴 분석을 통해서 의심 가는 케이스를 다 걸러내는 거죠. 또 인공지능을 통해 결과의 오차를 줄이는 거예요. 지금은 97% 정도 정확성이 있죠.”




오랫동안 병원전산실장을 맡아왔던 인연으로 병원에 있던 수많은 자료들을 이용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지금은 기초 원리와 프로그램까지 완성된 상태고 개원가 보급이 가능한 단계까지는 아직 과정이 남았다.




의대 교수 or 공대 박사과정 학생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의대 교수가 공대 박사과정을 밟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공대 박사과정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시간상으로 임상과 연구를 병행하는 의대 교수가 다른 분야의 박사과정을 해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데.




“산부인과 교수로 자리 잡고 나니 공학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처음에는 공대에 청강생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교수님도 그렇고 아내도 이왕 하는 거 과정을 제대로 밟는 게 어떻겠냐고 하더라고요.”




마침 호남대 공대 박사과정 등록 자격에 ‘대학 교원으로 있는 자는 석사학위 없이 박사과정 입학이 가능하다’는 조항이 있었다. 대신 석사과정 학점을 박사과정을 할 동안 따야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었다. 박사과정 기간 동안 66학점에 해당하는 추가 수업을 들어야했다. 동료들과 공대 교수들의 협조로 진료시간과 수업시간을 최대한 확보한 끝에 4년 만에 따낸 공학박사 학위다.




“의대처럼 3년 만에 되는 줄 알았는데 1년이 더 걸렸어요. 그런데 7년 10년 걸리는 사람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5심(審)을 거치는 동안 고생 많이 했어요, 심사, 발표, 심사, 심사, 심사 정신없었죠.”




논문 주제는 3학년 초에 잡았다. 고심한 끝에 산부인과에 도움이 되고, 방대한 병원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고른 주제였다.




공학언어-의학언어 전문 통역자가 되고 싶다




“음대에서 박사과정 받겠다는 건 농담이죠. 아내가 질색을 하더라고요, 또 쓰러진다고. 음악은 취미로 해야죠. 이비인후과 의사인 아내와 함께 요즘은 드럼을 배우고 있습니다. 술 대신 음악으로 스트레스 풀려고요.”




공학박사 학위를 가진 의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초의학전공자가 대부분이고 그 중 많은 수가 공학 쪽으로 방향을 튼다고. 그의 꿈은 공학자와 의학자를 연결하는 통역자가 되는 것이다.




“의학 분야에서 공학이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합니다. 요즘 로봇 수술이 대세인데 공학자들은 그건 로봇이 아니라 기계라고 하거든요. 그 사람들 입장에서 로봇이라면 ‘수술해’라는 한마디 명령으로 수술이 가능해야 하는데 로봇수술에서는 의사의 손놀림을 그대로 재현하는 기계일 뿐이란 말이죠. 그렇게 본다면 의료공학이 갈 길도 범위도 끝이 없는 거죠.”




하지만 세계적인 공학자와 의학자가 만나 얘기를 나눈다면 말이 안 통하는 것은 당연지사란다. 공학자의 언어를 의학자의 언어로, 의학자의 언어를 공학자의 언어로 ‘번역’해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제 논문의 연구 결과는 좀 더 발전시켜서 의사들에게 나눠주고 싶어요. 리눅스라고 아시죠? 그것처럼 이 프로그램을 공개해서 다른 사람들이 더 발전시켜 유방암환자 초기 진단에 활용되면 좋겠죠. 좋아서 한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남에게도 도움 되는 거, 이게 학문의 공통점인 것 같아요. 의학은 아버지 강권으로 시작했지만 이젠 의사인 것이 좋고, 공학은 제가 좋아서 시작했지만 사람들에게 도움 되는 장치가 하나 생기게 됐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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