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대법원은 소위 ‘존엄사 소송’에 대한 최종 판결을 내렸습니다. 결론은 ‘존엄사 허용’이었죠. 하지만 이번 소송이 원고와 피고 양측이 모두 존엄사를 인정해야 한다는 데 있어서는 이견이 없었던 것이라서, 판결 자체보다는 그 판결이 내려진 이유나 그에 덧붙여지는 설명에 더 관심이 쏠렸습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피고인 세브란스병원 측이 존엄사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병원 측의 요구는, 비슷한 사례가 빈발할 것이 예측되는 바, 이러한 경우에 매번 법원의 판단을 물을 것이 아니라 환자와 가족과 의료진이 자체적으로 합리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달라는 것이었죠.







고심 끝에 대법원이 내린 판결은 여러 모로 ‘절묘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법원은 우선 이번 사건 자체에 대한 판단에서 고등법원의 판결을 그대로 지지했습니다. 회복 불가능한 사망 과정에 진입한 환자에 대한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중단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중요하다는 점,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절대적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소위 ‘추정적 의사’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판결 자체만 놓고 보면 세브란스병원이나 의료계 전문가들이 그간 주장해 왔던 요청들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부연 설명에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언급했습니다. “(향후 비슷한 사례에서는)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은 법원을 거치지 않고 병원 내 윤리위원회 등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인 것이죠.




이 판결만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의 결정권이 병원 내 윤리위원회에 주어지는 것은 물론 아닐 겁니다. 일부 대법관들이 “연명치료 중단은 반드시 법원의 중재를 구해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지는 데서 알 수 있듯이, 혹시 생길지 모르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 또한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소송과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계기로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크게 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또 그러한 변화가 대법원의 판결문에도 영향을 주었음으리라 생각됩니다.이런 판결에 맞춰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이 잇따라 존엄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발표하는 등 의료계는 선도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번 판결이 추후 실제로 존엄사의 법제화로 이어질지 여부는 불확실한 상황입니다. 그런 법제화가 필요하기는 한 것인지 여부도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일정한 요건에 부합하는 환자에 대해 환자의 자기 결정권, 가족의 동의, 병원 윤리위원회의 결정 등 세 가지가 충족될 경우에는 존엄사를 허용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환자 본인의 뜻에 따라 연명치료를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 것도 당연히 허용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 절대 다수가 존엄사에 대해 찬성 의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좀 더 구체적이고 분명한 기준을 만드는 일이며, 법률이든 아니면 다른 어떤 형태로든 이를 사회가 공인하는 기제를 만들어서 현장의 불필요한 혼란을 줄이도록 해야합니다. 또한 이와 더불어 말기 환자의 편안한 임종을 돕고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야 하겠죠. 바로 호스피스 등 임종 관련 의료서비스의 제공 체계를 확충하는 것, 반드시 병행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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