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의사국시 수석합격 00의대 000씨’




매년 1월 의사국가시험이 치러지고 나면 과연 그해의 수석합격자가 누구인지 언론을 통해 보도됩니다. 수석합격의 비법이 뭔지, 과연 앞으로 어떤 진로를 선택할 것인지를 놓고 미주알고주알 관심을 보이는 것은 이젠 거의 관례가 돼었죠.




그렇다면 지금까지 70회 이상 치러진 의사국시의 수석합격자들은 과연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수석합격’이란 타이틀을 거머쥔 그들이 어떠한 인생경로를 밟아 지금은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다들 공신(공부의 신)이라고 불리는 의대생이였고 그 중에서도 의사국시 수석이였으니 뭔가 특별한 인생을 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의사국시가 시작된 해는 1952년입니다. 이후 해마다 1월 중에 의사국시가 치러지면서 올해까지 총 73회의 시험이 치러졌습니다(1년에 2회 이상 치러진 적도 있음). 청년의사에서는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등을 통해 각 연도별로 의사국시 수석합격자들을 파악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예상 외로 쉽지 않았습니다.




1952 년 첫 의사국시가 시작된 이래 1993년 제 56회 시험에 이르기까지 42년간은 정부 주도(구 국립보건원)로 의사국시가 치러졌고, 1992년 현재 국시원의 전신인 '한국의사국가시험원'이 개원하면서 민간 평가기관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변경된 상태입니다.




한국의사국가시험원 개원 이후 다시 1998년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이 정식으로 출범하면서 의사국시는 이후 국시원 주관으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의사국시에 관한 전반적인 자료가 국시원 개원 이후인 1998년부터 전산화가 이뤄졌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98년 이후 의사국시 수석합격자 등에 관한 정보는 쉽게 찾을 수 있었지만 그 이전에 시행된 시험의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일일이 수작업으로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발행 연도가 비교적 오래된 의료전문지 등의 자료를 일일이 발품을 팔아 찾아낸 끝에 총 38명의 수석합격자 리스트를 확인, 이들 가운데 29명의 현재 근황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아쉽게도 50년대의 경우 의사국시 관련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수석합격자를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혹시 이전 자료를 가진 분은 제공 부탁드립니다.)







수석합격자 배출 역시 ‘서울의대·연세의대’




취재를 통해 확인된 전체 수석합격자를 출신학교별로 보면 서울의대가 12명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연세의대 9명, 가톨릭의대 3명, 고려의대·경희의대·중앙의대·전남의대·조선의대 등이 각각 2명, 그리고 경북의대·대구가톨릭의대·연세원주의대·부산의대 등이 각각 1명으로 파악됐습니다.




근황이 파악된 29명의 수석합격자 가운데 현재 대학병원의 교수로 재직 중이거나 교수를 역임한 이가 13명에 달했고 나머지 수석합격자들은 중소병원의 병원장, 혹은 개원의, 그리고 전공의 및 공보의 근무 등으로 확인됐습니다. 또한 29명의 수석합격자 가운데 4명은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60년대에서 70년대 초반에 의사국시를 합격한 서울의대 출신들이었다는 점이 특이했습니다.




수석합격자들의 전공 진료과를 보면 내과계열이 10명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소아과 3명 등의 순이였습니다. 전체 수석합격자 38명 가운데 여성은 6명으로 파악됐고, 이들 가운데 3명이 현재 대학병원 교수로 재직 중이였으며 특히 2명의 여성 수석합격자는 현재 혈액종양내과 전문의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당뇨·심장수술 名醫 등 전공 분야서 두각




수석합격자들 가운데 현재 의료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펴며 대외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인물도 적지 않았습니다. 우선 1963년 시행된 제16회 의사국시에서 수석을 차지한 하버드의대 최찬혁 교수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도미해 병리학과 방사선종양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는데요 이후 1971년부터 하버드의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미국 내에서 방사선을 이용한 폐암치료·연구 분야에서 독보적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964년 실시된 제17회 의사국시의 수석합격자인 허갑범 원장님은 국내 최고의 당뇨 명의이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주치의로 유명하죠. 특히 허 원장님은 ‘한국형 당뇨병’이라 불리는 1.5형 당뇨병을 규명해 낸 것으로 더욱 유명합니다. 허 원장님은 2002년 모교인 연대의대 교수직을 정년퇴임한 후 신촌에 당뇨병 전문 클리닉인 '허내과의원'을 개원해 운영 중입니다.




또 1967년 시행된 제20회 의사국시의 수석합격자인 정풍만 전 한양의대 학장도 유명하시죠. 특히 서울의대 졸업 당시 수석으로 졸업한 데 이어 의사국시에서도 수석합격을 차지해 화제를 모은 바 있습니다. 올해 2월 한양의대에서 정년퇴임한 후 지난 3월 경기도 남양주시에 개원한 남양주한양병원의 병원장으로 재직 중이시라고 하네요.




1982 년 치러진 제43회 의사국시에서 수석을 차지한 서울아산병원 이재원 교수님은 현재 심장수술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또 1998년 의사국시의 수석합격자는 난소암으로 투병하던 여학생이 차지해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당시 의사국시에서 수석을 차지한 고려의대 출신의 박경화 씨는 현재 고대안암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암으로 힘든 고통을 겪었던 의대생이 이후 암 전문의로 성장해 자신의 모교에 교수로 임용되는 드라마틱한 삶의 궤적을 보이고 있네요. 인생 역경을 인간극장이나 자서전으로 많은 분들께 알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수석합격 타이틀, 의사 인생의 채찍 같은 것”




‘의사국시 수석합격’이란 타이틀이 당사자들에겐 어떤 의미로 남아 있을까요? 제 17회 의사국시 수석합격자인 허갑범 원장님은 “의사국시에서 수석을 차지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며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의사국시에 대비한 족보도 별로 없었고, 졸업시험이 끝나고 나서 2~3개월 정도 국시 준비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습니다.




허 원장님은 “당시에는 의사국시에 합격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겼고, 수석합격에 대해서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며 “다만 그때 의대학장님께서 순금 10돈짜리 금메달을 수여한 것이 기억에 남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수석합격이란 타이틀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외부에서 바라볼 때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며 “주위의 사람들이 나를 의사국시 수석합격자로 바라보는 데 따른 부담감이 없지는 않았다. 결국 그런 점이 의사로서 더욱 발전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회고하셨습니다.




의사국가고시, 전문의 시험은 수석 이외에는 다 차석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수석이외에는 기억되지 않는 시험이기에 역대 수석 합격자들이 반세기가 지나서도 회자되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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