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여자가 주는 달콤한 행복감, 덧없이 짧은 그 눈부신 젊음 앞에 모든 남자들은 노예처럼 무릎을 꿇는다.’


남자라면 누구나 공감가는 이 대사는 영화 <사랑할 때 버려야할 아까운 것들>의 주인공 해리(잭 니콜라스 분)가 한 말입니다. 영화 속 주인공인 그는 독신 40년차 성공한 사업가이자, 영계전문 킬러이다. 60이 훨씬 넘은 나이에 딸 뻘 되는 젊은 여성들하고만 데이트하는 그를 남자로써 부러워해야할 것인지, 철없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 열정과 정력만큼은 높이 살만하죠.





하지만 그에게 작은 비밀이 있었으니 바로 발기부전제를 복용한다는 사실입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발기부전 복용하는 것 자체를 쉬쉬할 일은 아니죠. 영화에서 해리는 여성들과 데이트가 있는 날에는 언제나 비아그라를 미리 복용하는데 그렇게 해서라도 영계들과 어울리려는 그가 좀 안쓰러울 뿐입니다.


나이 탓이였을까요? 아니면 그가 즐겨 피우던 시가의 영향이였을까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젊은 여성과 침대 위 사랑을 나누기 직전 해리는 심각한 흉통을 느끼고 쓰러지게 됩니다. 이때 해리가 '코끼리가 짖밟는 것 같다.’고 통증을 묘사하는데 이는 아주 전형적인 심근경색의 증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흉통의 양상이 다르고 때로는 팔저림이나 어깨, 목등 흉부 통증이 아닌 곳이 아프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이를 방사통이라고 하는데, 이런 비특이적인 증상으로 응급실에 내원할 경우에는 심장 이상을 의심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의식을 잃어버린 해리를 구해준 것은 여자친구 마린(아만다 피트 분)의 엄마 에리카(다이안 키튼 분). 해리를 탐탁치 않게 여기던 그녀가 심폐 소생술로 그를 살려 응급실로 데리고 갑니다. 당황하는 딸을 침착하게 돌아보며 911에 전화하라고 이야기하며 심폐소생술을 하는 에리카의 행동을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교과서적인 절차와 처치를 할까? 영화라서 그런걸까? 아니면 저 나라가 선진국이라서 그럴까?' 이런 저런 생각과 함께 국내의 응급처치 실태가 떠올랐습니다.


아직도 국내에는 의식을 잃은 사람을 발견했을 때 취해야하는 응급처치방법에 대해 널리 교육되지 않아 안타까운 목숨을 잃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길을 가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진 사람을 발견했을 때 무리해서 물을 먹이려고 하거나 팔다리를 주무르거나 손발에서 피가 흐르도록 바늘로 따는 행동을 응급처치로 알고 있으니까요. 


2000년 4월 18일 잠실 야구장에 경기도중 정신을 잃고 쓰러진 임수혁 선수의 경우나, 2007년 12월 25일 권투경기 도중 쓰러진 최요삼 선수의 경우의 공통점은 초기 응급처치가 적절하게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임수혁 선수는 지금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병원에 누워있으며, 최요삼 선수는 뇌사판정을 받고 장기기증을 하고 세상을 떠났죠. 당시 자료화면을 보면 주변사람들이 하는 응급처치가 쓰러진 환자를 들것에 들어 옮기거나 팔다리를 주무르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의사단체나 보건당국이 나서서 심폐소생술 교육을 하고 있고 최근에는 자동 제세동기(AED) 보급도 이뤄지고 있으니 우리도 나아지리라 기대하는 수밖에요. 만약 아직도 심폐소생술 방법을 모른다면 소방방재청에서 제공하는 교육 동영상을 인터넷을 통해 보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족이나 친구가 위급할 때 응급구조사가 도착하기 전에 여러분이 취해야할 응급처치가 환자의 예후에 큰 영향을 미치니 평소 한번쯤 눈여겨 보고 시간 내서 교육을 받는 것도 좋겠습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응급실에 실려온 해리에게 응급실 의사인 줄리안 (키아누 리브스 분)은 기본적인 처치 및 검사를 하면서 중요한 질문을 합니다. 바로 발기부전제 비아그라의 복용여부에 대한 것이였는데요. <사랑할 때 버려야할 아까운 것들>은 영화 자체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의학 자문의 완성도만 두고 본다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영화입니다. 환자 역할의 배우들의 연기나 의학적 사실성 모든 면에서 의과대학 학생들을 위한 교육자료로 써도 될 만큼 만족스럽습니다.


심근경색이 의심되는 환자에게 응급실에서 사용하는 약물 중 하나인 니트로글리세린은 혈관을 확장시키는 약물입니다. 이 약물은 발기부전제와 병용할 경우 심각한 저혈압에 빠질 수 있어 치명적일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발기부전제는 원래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되다가 기대하지 않은 부작용으로 발기가 일어나는 것을 발견해 만들어진 약이기 때문에 같은 계열의 혈관 확장제가 이중으로 쓰여 심각한 저혈압에 빠지는 것이죠.


때문에 심근경색이 의심되어 니트로글리세린을 써야할 때에 남성 환자들에게 응급실 의사들이 꼭 묻는 질문 중 하나가 발기부전제를 복용했는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영화 속에는 비아그라를 복용했느냐고 묻지만 지금은 다양한 회사에서 다양한 제품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비아그라 이외의 발기부전제 (예를 들어 씨알리스, 레비트라 등)를 복용하고 있더라도 꼭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영화 속 해리는 생명이 위독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애인과 그 가족 앞에 자존심을 생각해 복용 사실을 숨기려합니다. 잠시 후 죽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온몸으로 복용 사실을 시인하게 되죠.


이후 죽음의 고비에서 살아 나온 해리가 자기와 비슷한 나이의 에리카와 함께 별장에 머물면서 지금껏 젊은 여성들과는 나누지 못했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드디어 사랑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는 어찌보면 뻔한 이야입니다. 메가폰을 잡은 낸시 마이어가 여성 감독이고 약간은 페미니스트의 시각에서 영화를 만들었기에 소중한 사랑의 가치에 대해 다소 훈계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사랑의 소중한 가치가 비아그라보다 더 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그 둘의 사랑은 약물의 도움 없이 이뤄지는 기적(?)을 보여주기도 했으니 말 다했죠.




자세한 내용은 여러분 모두가 이 영화를 한번쯤 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더 이상 하지 않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중요한 이벤트인 해리의 심근경색과 발기부전에 대해서만 한마디 더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도대체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 두 질병을 영화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대충 가져다 붙인 것일까요? 감독이자 이 영화의 작가인 낸시 마이어가 의학적 지식 없이 그렇게 썼을 가능성도 있지만, 전체적인 의학적 완성도를 봤을 때 철저한 자문을 통해 만든 설정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의학적으로 발기부전과 심혈관질환은 밀접한 상관성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2008년도 미국 심장학회지에 발표된 연구를 보면 제2형 당뇨를 가진 환자에서 임상적으로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인자가 없다고 하더라도 발기부전을 가지고 있을 경우 심혈관 질환 발생률이 높다고 보고했습니다. 남성의 음경은 혈관으로 만들어진 장기로 의사들은 ‘혈관 덩어리’라고 표현 합니다. 이 혈관에 이상이 생겨 발생하는 발기부전의 경우(혈관성 발기부전)에는 심장의 혈관에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나에게 심장마비는 극복하기 쉬웠어요. 하지만 당신을 잊는 건 내게 너무 어려웠어요.’ 에리카를 잠시 떠나 다시 젊은 여성을 찾았던 해리가 다시 에리카를 찾아와 한 말입니다. 영화를 통해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이 대사로 모든 것이 풀리면 좋으련만, 이 영화의 마지막까지 속시원하게 풀리지 않았던 것은 정작 제목에 써있는 ‘사랑할 때 버려야할 아까운 것’에 대한 이야기죠. 해리에게 사랑하기 때문에 버려야하는 아까운 것이 비아그라였을까요 아니면 젊은 여성들이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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