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의 눈물을 쏙 빼놓은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치매가 만든 슬픈 사랑이야기입니다.

극중에서 신혼의 단꿈에 빠져있던 철수(정우성)는,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습니다.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 수진(손예진)이 치매에 걸렸다는 것인데요, 수진이 머리 속에 든 지우개는 수진의 기억을 하나 둘 지우더니, 결국 철수도 못 알아보게 만듭니다.

집에 오는 길도 잃어버리고, 맨 밥만 두개 들어있는 도시락을 싸주고, 심지어 옛 남자의 이름을 부르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아내, 수진. 그런 아내를 보면서 눈물을 참으며 어깨를 들썩이면서도 “나도 사랑해..” 라고 대답해주는 철수를 보며 정말 많은 분들이 눈물을 쏟으셨죠.

2004년 겨울, 이 영화가 처음 개봉됐을 때, 사람들은 치매라는 질병이 만든 애틋한 사랑이야기에 큰 관심을 보였고 더불어 치매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습니다. 건망증이 있는 젊은 분들도 영화를 보면서 '나도 혹시 치매 아니야?'라고 이야기 했을 정도니까요. 사랑했던 기억마저도 모두 지우는 질병, 치매. 오늘은 치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치매란?


치매란?

치매란, 의식이 청명한 상태에서 통상적인 사회생활이나 대인관계에 장애를 초래할 정도로, 기억을 비롯한 여러 인지기능의 장애가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치매는 대개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치매와 다발성 뇌경색으로 인한 치매로 나뉩니다.

먼저, 치매의 대표격인 알츠하이머병은, 치료도 잘 되지 않고 예후도 좋지 않습니다. 발병 원인도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죠. 최근 아세틸콜린의 저하를 막는 약재가 개발되어 조기 치료시 효과를 보인다고 하나, 궁극적으로 뇌손상을 막는 획기적인 방법은 찾지 못한 상태입니다.

한편, 다발성 뇌경색으로 인한 치매는 흔히 ‘혈관성 치매’라고 하는데요, 뇌졸중이 반복되면서 뇌의 여러 부위의 경색이 생기고, 그에 따라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경우, 조기에 발견해서 바로 치료한다면, 치명적인 뇌 손상을 막을 수 있는데요, 안타깝게도 대부분 뒤늦게 발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혈관성 치매의 경우 발생 가능성이 있는 분들, 예를 들면 위험인자로 알려진 고혈압, 고지혈증, 심장질환, 당뇨 등을 가진 분들은 이들 질환을 잘 관리하시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밖에 정신질환 또는 뇌 질환으로 인해 치매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는데요, 우울성 가성치매, 갑상선 기능저하, 정상압뇌수종, 약물 중독 등이 대표적입니다.


치료는?

젊은 사람도 치매에 걸릴 수 있나?

<내 머리 속의 지우개>가 흥행하면서 일부에서는 치매에 대한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습니다. 극중에서 수진이는 20-30대인데, 그렇게 젊은 나이에도 치매에 걸릴 수 있냐는 거였죠. 수진이가 걸린 질병은 치매, 그 중에서도 알츠하이머병인데요, 대부분의 경우, 알츠하이머병은 예순 살이 넘어야 발병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족력이 있는 경우에는 좀 더 일찍 발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최소한 40대는 되어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이죠. 또, 신경과 전문의들도 20대 알츠하이머병 환자는 사실 본적이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부분은 아무래도 현실성은 조금 떨어지지만, 영화를 극적으로 만들기 위한 설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건망증과 치매

한편, 영화 개봉 당시 “혹시, 나도 치매에 걸린 건 아닐까” 괜한 불안감에 시달렸다는 분도 생각보다 많았는데요, 이는 건망증과 치매를 혼동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사건의 세세한 부분만 잊어버리는 게 건망증이라면, 치매는 사건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건망증의 경우, 옆에서 살짝 귀뜸해주면 기억을 되살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이 기억을 잘 못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메모 등을 통해 이를 보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치매는 옆에서 아무리 귀뜸해줘도 기억하지 못하고, 자신이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 자체도 잘 모르죠. 하지만 단순한 기억 장애도 치매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극중에 수진이도 알츠하이머병을 진단받기 이전부터 유달리 건망증이 심했습니다. 콜라 사러 편의점에 갔다가, 지갑은 물론 콜라마저 두고 올 정도였죠. 따라서 기억력 장애와 사고의 장애, 문제해결능력의 장애, 인격의 변화를 보이는 경우라면 전문의의 진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치료는?

치매는 분명 치료가 어려운 질병이긴 하지만, 치유 가능한 경우도 10-20%에 달합니다. 우울성 가성치매나 몸의 기질적인 문제로 인한 치매(갑상선 기능저하, 약물 중독)의 경우, 원인을 해결하면 증상이 호전될 수 있습니다. 또, 알츠하이머 역시 약물로 진행속도를 어느 정도 늦출 수 있죠.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말고도 치매는 최근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더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고령화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치매라는 질병이 사랑했던 추억까지도 다 지워버리는 잔인한 질병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극중에서 치매에 걸린 수진이 기억을 잠시 되찾았을 때 이렇게 말했죠.

“나는 당신을 기억하지 않아요. 당신은 그냥 나한테 스며들었어요.. 나는 당신처럼 웃고, 당신처럼 울고, 당신 냄새를 풍겨요.. 당신 손길은 그대로 내 육체에 새겨져 있어요.”

이 말이 치매환자를 가족으로 둔 분들에게 작지만 따뜻한 위로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