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을 치료에 쓴다니 약간 의아해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요즘은 이상하게 얼음이 치료에 필요한 사람을 많이 보게 되어 관련한 글을 한번 써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한국처럼 의료비가 싸고 의료의 접근성이 좋은 경우는 몸이 아프면 바로 의사를 보고 약이나 주사를 처방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집에서 스스로 하는 자가 치료에 관심이 적을 것도 같지만 제 경험으로는 한국인의 천성이 부지런한지라 병원치료로는 만족을 하지
못하고 뭔가 스스로 병세를 호전시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묻는 분들이 매우 많았습니다.


1. 화상


제가 얼음의 치료 효과에 대해 처음으로 생생하게 느꼈던 경험은 제가 어렸을 때 있었습니다. 집에 석유난로가 있었는데 구조자체가 열이 발산되는 난로의 뚜껑부분을 손대지 않는 한 옆이나 뒤를 만져서는 화상을 입지 않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란 항상 사고를 치는 것이 일이라서 그런지 저나 동생들도 모두 괜히 난로에 손을 대다가 아주 경미하나 데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아주 조그맣게 데여도 빨갛게 된 피부는 욱씬욱씬 쑤시는 통증이 있게 되었는데 어느 날 스스로 색다른 시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손을 데고 나서 통증도 오기 전에 즉시 차가운 방의 유리창에 손을 대니 거짓말처럼 아프지 않았었습니다. 물론 아주 경미한 1도 화상이니까 가능했던 것이겠지만 이 때 처음 차가운 물체가 주는 치료 효과랄까 하는 것에 대해 신기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살갗이 벗겨질 정도의 화상이 아닌 그냥 빨갛게 변하는 1도 화상이나 햇빛에 지나치게 살을 태워서 피부에 통증이 올 때는 얼음 찜질을 하곤 하는데 차가워서 피부가 약간 먹먹하게 느껴지기는 해도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것을 보면 얼음이 참 대단한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2. 근육과 인대 손상


제가 의과대학에 다닐 때 정형외과학을 배우면서 R.I.C.E 치료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운동 중이나 후에 근육통이나 각종 인대 손상 등을 입었을 때 기본이 되는 네 가지 치료의 첫 자를 딴 치료법입니다. R은 rest(휴식), I는 ice(얼음 찜질), c는 compression(압박), e는 elevation(환부를 높게 유지한 자세)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발목을 삐었다면 일단 걷거나 뛰지 말고 잠시 휴식을 가져야 하고, 얼음 찜질을 해주어야 하며, 붕대 등으로 감아서 부기를 예방하고, 누워서 다리 밑에 배게를 두는 식으로 다리를 올려주는 것입니다. 나
중에 보니 일반인들도 운동을 자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었는데 유전자를 조작하는 수준에 이른 현대 과학으로도
인대나 근육이 삐는 등의 흔한 손상에는 이런 간단한 상식이상 더 좋은 치료가 없다는 것은 세상의 섭리가 참 오묘하다고까지
생각하게 됩니다.



3. 발열


제가 한국에서 가정의학과 의사로서 개인의원에서 근무할 때 소아 환자들을 꽤 보았습니다. 소아들이 열나고 아프면 해열제도 먹이고 이마에 찬 물수건을 대주는 등의 치료도 추천했지만 차가운 수건(혹은 얼음찜질)의 효과를 아주 잘 본 것이 바로 가려움증의 치료였습니다. 아이들이 두드러기가 나거나 벌레에 물려서 피부가 가려우면 (어른들이야 자제가 가능하므로 덜 긁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대개 박박 긁어서 이차감염이 생기는 정도까지 가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4. 두드러기


이럴 때면 당연히 가려움을 줄여주는 약도 처방하지만 얼음 찜질은 효과가 좋았습니다. 피부질환이 다 제대로 진단을 받고 이에 바탕을 둔 원인 치료가 중요하겠지만 어차피 치료에는 시간이 걸리는데 당장의 가려움을 해결해주는 방법으로는 얼음 찜질이 매우 유용했습니다. 물론 어른들도 마찬가지로 옻이 오르거나 벌레에 물려서 가려운 경우 등에서 정당한 얼음 찜질을 권하는데 너무 과하지만 않으면 상당히 좋은 치료가 됩니다. 그냥 찜질로 안되면 얼음 주머니를 수건으로 싸서 가볍게 두드려주는 것도 괜찮습니다.



5. 피부 감염


군대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하다 보면 사회에서 잘 보지 못하는 피부 감염증을 자주 보게 됩니다. 바로 ‘봉와직염’이라는 이상한 이름의 병인데 결국은 피부 약간 깊은 곳에 생기는 균 감염증입니다. 피부가 붉게 되고 약간 반질반질할 정도로만 부으면서 통증과 열감이 생기는데 마치 햇빛에 화상을 입은 것과 비슷한 증상입니다. 균이 들어갔다고 그냥 피부에 고름이 잡히는 종류의 감염과는 조금 다른 것으로 피부를 소독하는 것만으로는 효과가 없고 대개의 경우 반드시 항생제 치료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증상도 역시 붓고 아픈지라 진통제도 주지만 뭔가 진통에 좋은 치료가 없나 고민했는데 얼음 찜질만한 치료가 없었습니다.



6. 류마티스 관절염


그리고 미국에 와서 내과를 하면서 한때 류마티스내과에 관심이 있었던 지라 관련 학술 모임에 부지런히 쫓아 다니던 때가 있었습니다. 한 번은 어떤 교수님으로부터 cryotherapy(한랭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특수 제작된 방이나 마치 관처럼 생긴 냉동실의 온도를 최저 영하 110도까지 맞춘 다음 환자에게 2-3분 동안 있게 하는 것이 바로 그 치료인데 놀랍게도 대부분의 환자들이 이 전신 한랭치료에 통증의 경감을 보고 했다는 것입니다.


영하 1도만 되어도 추워서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도 계실 텐데 영하 110도라니 얼마나 추울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만 아마도 류마티스 관절염 등을 심하게 겪는 사람들이 그 고통이 얼마나 크면 이렇게 해서라도 통증이 감소되는 것을 원할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
방법은 각종 운동 후에 근육통이 생긴 운동선수들을 대상으로 비슷한 실험을 해보기도 했고 혈액검사등으로 근육 파괴로 생기는 효소의
수치나 염증관련 물질의 농도를 측정한 결과 단지 통증만의 문제가 아니고 실제로 근골격계 회복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음이 보고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은 특수한 시설이 있는 병원에서 가능한 것이고 집에서는 간단하게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부어있고 열이 나는 관절에 냉찜질을 통해서 통증과 부기를 내리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7. 점액낭염


제가 위에서 말한 최근에 얼음이 필요했던 환자는 위에서 든 예와는 또 다른 점액낭염이라는 질환을 가졌는데 이 점액낭이라는 주머니는 우리 몸의 관절부위에 곳곳에 존재하며 인대와 뼈의 마찰을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치료는 각종 주사나 약으로 치료하지만 역시 집에서 얼음으로 적당히 찜질을 해주면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환자들이 점액낭염으로 입원하지는 않습니다만 대개 다른 문제로 입원한 환자들이 이런 문제가 동시에 있어서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의 경우 요즘 주로 입원환자를 보므로 간호사에게 얼음 주머니를 하루 세 번 정도 대주도록 처방하는데 특별한 약을 쓰지 않고도 3일 정도면 좋아지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물론 얼음으로 해결이 안 되는 경우도 많지만 이런 경우에도 얼음을 기존의 치료와 병행하면 더 좋은 효과를 봅니다.

8. 두통, 안통


저도 집에서 얼음 요법을 아내를 위해 하기도 합니다. 아내가 가끔 두통이 있고 때로는 눈 주위가 피로하고 무겁다고 하는데 무슨 특별한 진단을 붙일만한 증세가 아닐 때도 많습니다. 이럴 때 쓸 목적으로 냉 찜질이 가능한 눈 주위에 착용하는 마스크를 샀는데 효과가 아주 좋습니다. 한국에서도 홈쇼핑 등에서 이런 제품을 파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콧대가 높아서 눈에 부착이 잘 안 된다는 분도 있는 것 같은데 증상 가벼운 경우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약을 먹지 않고 두통, 안통 등을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생긴 두통, 안통은 반드시 제대로된 진찰을 받아야 하며, 얼음으로 완화가 되지 않아도 마찬가지로 의사의 진료가 필요합니다.



* 얼음을 치료에 사용시 주의사항


하지만 불도 마찬가지지만 얼음도 다루기에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닙니다. 일단 얼음으로 인한 피부 손상은 불로 인한 화상에 비견할 만 하므로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오히려 피부 손상을 가져오게 됩니다. 말이 얼음찜질이지 얼음을 피부에 직접 대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권하지 않습니다. 제가 권하는 방법은 얼음을 비닐 봉지에 잘 싸서 묶고 주위를 마른 수건으로 다시 싼 다음에 피부에 너무 차갑지 않게 대주는 것입니다. 얼음은 피부를 0도로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고 적당한 차가움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함입니다. 아니면 수건을 냉장고에 냉장실에 넣었다가 차갑게 만든 후에 쓸 수도 있는데 더 안전하긴 하지만 차가움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 단점이 있습니다. 결론은 하여간 너무 차면 안 됩니다. 영하 110도짜리 한랭치료도 하는데 영하 몇 도짜리 얼음이 대수냐고 그냥 피부에 대면 피부에 큰 손상을 입게 됩니다.



* 얼음 사용법


병원에서 하는 전문적인 치료와 집에서 하는 자가치료는 다르기 때문에 최대한 안전하게 하지 못하면 아예 하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그리고 치료 시간도 가능하면 10분에서 20분으로 한정하고 필요에 따라 잠시 시간을 두고 반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관절염이나 염좌, 점액낭염에 사용한다면 하루에 3번 정도도 충분하고 봉와직염이나 가려움증이라면 조금 더 자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증세가 왜 오는지 진단 자체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얼음으로 증상만 치료하면서 병원 행을 늦추어 병을 키우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하겠습니다. 일단 제대로 의사에게 보여주고 나서 얼음을 보조적으로 쓰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단 한가지 예외라면 순간적으로 가벼운 화상을 입었을 경우인데 (피부가 벗겨지지 않았다면) 병원을 찾기 전이라도 이럴 때는 잽싸게 환부를 (얼음이 아니고) 차가운 물에 담그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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