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의아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WHO의 NTD(소
외 열대 질환) 목록에는 당당히 snakebite(독사교상, 뱀에 물리는 것)가 등록되어 있다. 독사에게 물려봐야 얼마나
물리겠나, 아니 질병이나 되나 싶은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실제 통계를 보면 뱀에 의한 사고는 세계적으로 적지 않은
피해를 입히고 있다.

사실 독사에 의한 피해는 그 규모나 위험성에 비해 심히 과소평가 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독사에 의한 피해가 적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제대로된 통계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는 대부분의
사고가 의료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은 외딴 지역에서 자주 일어나며 맹독을 가진 독사에게 물릴 경우 병원에 가기도 전에 사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나마 2008년에 들어서야 피해 규모가 집계 되었는데,(1) 보고된 케이스만을 가지고 봤을 때 연간
421,000명의 피해자와 20,0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보고되지 않은 케이스가 많다는 것을
고려해 보면 최대 1,841,000명의 피해자와 94,0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 정도 규모라면
왠만한 전염성 질환에 의한 피해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동남아시아, 사하라 인근 아프리카 지역, 남아메리카 지역에서의 피해가 특히 심하다. >
뱀에 의한 피해는 주로 외딴 저소득 지역에서 많이 발생하며 그 피해도 크다. 뱀의 서식지가 충분히 확보되어 있고, 농경 및
수렵채집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는 지역에서는 외부 활동이 잦아 뱀과 접촉할 기회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외딴 지역에서는 뱀에
물린 후 적절한 의료 시설을 찾기 보다는 민간요법을 통해 자체적으로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제대로된 치료를 받기도 전에
사망하거나 뒤늦게 치료를 받더라도 예후가 나쁜 경우가 많다.


이렇게 뱀과 접촉하는 사람들은 현재 해당 지역에서 가장 활발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젊고 활동적인 사람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사회 경제적인 피해도 크다. 만약 병원을 찾았더라도 이동에 시간이
오래 걸려 치료하기에는 너무 늦었거나 병원조차 제대로된 해독제를 구비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또한 뱀에 물린 후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영구적인 장애가 남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적절히 치료하고 예방하지 못하면 치명적인 부담이
되기도 한다.

뱀의 독은 복잡하게 얽힌 단백질 칵테일로 볼 수 있는데 대략 네가지 형태로 분류할 수 있다.
1)
조직을 부어오르게 하고 결국 파괴하는 세포 독소(cytotoxins)
2) 혈관을 파괴하여 출혈을 유도하는
haemorrhagins
3) 피의 응고를 저해하는 항응고제
4) 마비 등을 유도하는 신경 독소(neurotoxins)
우리는 일반적으로 뱀독이라고 하면 마비를 유도하는 신경독소를 떠올리게 마련인데, 실제로는 조직파괴와 출혈을 유도하는 다른
많은 단백질들이 같이 흘러들어와 신경독소 이상의 피해를 입히게 된다. 아래 사진처럼 치료가 늦어져 조직이 상당수 괴사한 후에는
흉터도 심하게 남을 뿐만 아니라 근육의 피해량에 따라 영구적인 장애가 남는 경우도 많다.

뱀에 물렸을 때의 처치법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세포 독소의 영향으로 발등 피부와 근육이 괴사한 모습>
이런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뱀에 물렸을 때의 처치법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사실 뱀에 물렸을 때의 처치만큼
'민간요법 썰'들이 난무하는 의학 분야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흔히 만화나 영화에서 보는 뱀에 물렸을 때의 처치법들은
그야말로 최악의 처치법들이다.

물린 곳을 불로 지지는 소작법이나 뱀독을 빼내겠다고 물린 부위를 째는 행위는 절대 해서는 안된다.
독을 빼내겠다고 상처 부위를 입으로 물린 부위를 빨아내는 것은 물린 사람에게도 괴로운 일이지만, 빨아내는 사람도 중독될 수 있기
때문에 역시 절대 피해야할 짓. 이렇게 째고 빨고 지지는 행위는 이미 세포독소의 영향으로 괴사되고 있는 조직 손상을 키울 뿐만
아니라 이차감염의 위험도 높이게 된다. 또 앞서 언급했다시피 뱀독에는 항응고제가 포함된 경우가 있어 괜히 째고 했다가는 엉뚱하게
출혈 과다로 환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흔히 보게되는 '독이 몸에 퍼지면 안되!'라며 지혈대를 이용해
물린 부위주변을 압박하는 행동 역시 절대 피해야할 일이다. 오히려 물린 곳의 혈액 공급을 차단해 조직 괴사를 촉진시켜 예후를
나쁘게 만드는 주범이다.

이런 엉뚱한 처치법들은 뱀에 물리면 '몇 분 내로 사망한다'는 오해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이런 오해 때문에 억지로 독을 빼내려는-이미 체내에 들어간 독을 빼낸다는 것이 가능한지도 의문이지만- 성급한 시도를 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실 킹코브라에 물린 후 수분만에 사망했다는 사람도 있다고 하고, 살무사에 물린 후 41일 후 사망했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뱀에 따라 중독 후 사망까지의 시간 편차가 큰 편이지만 이는 상당히 과장된 바가 없잖아 있다. 일반적으로는 코브라과의
경우 물린 후 사망까지 수시간이 걸리고, 바다뱀의 경우 12-24시간, 살무사의 경우에는 수일이 걸린다.

즉 뱀에 물린 직후에는
환자를 안심시키고 물린 곳의 움직임을 최소화 시켜 안정시킨 후 일단 병원으로 후송하여 제대로된 치료를 받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
말도 안되는 응급처치로 환자의 생명을 위독하게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또 해독하려면 뱀 종류를 확인해야 한다고 어설프게 뱀을
잡으려는 시도를 하다가는 오히려 잡으려는 사람이 죽은척 한 뱀에 물리는 경우가 있으니 그냥 깔끔하게 포기하고 환자의 빠른 이송에
힘쓰는 것이 가장 올바른 자세라 하겠다.

Reference:
1. Kasturiratne A,
Wickremasinghe AR, de Silva N, Gunawardena NK, Pathmeswaran A, et al.
(2008) Estimation of the global burden of snakebite. PLoS Med 5(11):
e218.
2. Alimuddin I. Zumla; Gordon C. Cook; Manson, Patrick (2009). Manson's tropical diseases. Philadelphia: Saun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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