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란 무엇일까?

잠이라는 주제는 아마도 생물학에 있어 가장 큰 미스테리 중 하나가 아닐까. 이전에는 포유동물이나 조류 정도만이 잠을 잔다고 생각했지만, 초파리는 물론이고 예쁜꼬마선충에서도 잠과 비슷한 과정이 발견되었다.(1) 잠이라는 행위는 생물 종 사이에 굉장히 널리 퍼져있으며 그 역사도 오래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잠을 자는 도중에는 주변 환경에 대한 주의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포식자에 잡아먹힐 위험성이 높아지고 한정된 자원이나 생식 행위를 위한 시간에도 적잖은 손해를 입게 된다. 특히 일부 포유동물의 경우에는 하루의 절반 이상을 잠으로 보내는 종도 있는데, 과연 잠이라는 행위가 얼마나 많은 이득을 가져다 주기에 이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되는 것일까.

어쨋든 동물의 일생에 있어 단일 행위로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잠을 설명하기 위해 생물학의 각 분야가 서로의 이론을 내놓고 있다. 몇가지를 소개해 보자면, 다른 행위가 별 다른 이득을 가져다 주지 않을 때는 차라리 잠을 통해 에너지를 축적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설, 기억과 학습을 강화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설, 뇌의 발달과 회복을 위해 필요하다는 설 등이 있으나 각각의 실험 데이터들이 서로 다른 방향을 가르키고 있어 논란이 분분하다.



-몇몇 포유동물들의 평균 수면시간. 3시간 남짓 자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하루의 대부분을 잠으로 보내는 녀석도 있다.

이러한 와중에 혜성처럼 등장한 것이 바로 잠이 기생충을 비롯한 다양한 감염성 질환에 대한 면역력을 강화시켜준다는 설명이다.(2)

우리는 호시탐탐 몸을 노리는 수많은 잠재적 침입자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면역계는 끊임 없이 활동하고 있어야 한다. 때문에 면역계가 우리가 소비하는 전체 에너지의 상당량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닌데, 성장이나 생식에 소비되는 에너지가 늘어나게 되면 면역계가 사용 가능한 에너지가 줄어들게 된다.

잠을 자는 도중에는 이렇게 다른데 소비되는 에너지가 줄어들어 면역계가 더욱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기생충에 감염된 포유동물의 경우에는 수면시간-특히 NREM(non-rapid eye movement sleep, 논렘수면) 시간-이 눈에 띄게 늘어났으며(3), interleukin이나 interferon 같은 사이토카인(Cytokine: 면역조절물질)들이 면역 조절 뿐만 아니라 수면 시간을 조절하는 기능도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4) 또한 잠을 전혀 자지 못한 쥐의 경우에는 전신성 박테리아 감염으로 사망하기도 했고(5), 인간의 경우 백신 접종을 전후하여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면 항체 반응이 떨어지는 것이 관찰되기도 했다.(6)




최근의 연구결과(7)를 보면 잠이 면역계의 활성화에 깊이 관여한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래프A에서는 수면시간의 증가에 따라 체내 백혈구가 정비례하여 증가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그래프B에서는 수면시간의 증가에 따라 기생충 감염량이 반비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충분한 잠을 자는 것이 면역계의 활성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증명해 낸 것이다. 즉 앞서 소개한 가설 중 잠을 자는 행위가 에너지를 보존하는 과정이라는 설명과는 달리 잠을 자는 중에도 에너지 소비는 꾸준히 이루어지며, 단지 다른 행동에 소비될 에너지가 재분배 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따지자면 실제 잠을 자는 중에도 보존되는 에너지는 그렇게 많지 않다는 말이 되는데, 실제로 인간의 경우 8시간의 수면 시간 동안 보존되는 에너지는 한시간 정도 걸으면 사라질 양에 불과하다.(8) 에너지 보존을 위해 잠을 잔다면 차라리 그 시간 동안 더 먹고 마시는 것이 이득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각각의 동물의 평균 수면시간은 면역계의 효율성이나 감염 위험의 노출빈도와 깊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기생충이나 각종 감염성 질환에 노출 및 감염될 위험이 높은 생물일 수록 잠을 자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가설을 세워볼 수도 있다. 인간의 경우 과거에 비해 평균적으로 잠에 소비하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는데(9), 이는 단순히 생활환경의 변화 뿐에 기인할 뿐만 아니라 감염성 질환에 노출되는 빈도가 줄어들어 그만큼 면역계에 소비하는 에너지가 줄어들고, 따라서 면역계를 활성화 시킬 수면 시간도 같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그러니 앞으로 어머님이나 부인님이 잠을 너무 많이 잔다고 뭐라 하시면 '나는 지금 면역계의 조율을 위해 힘쓰고 있는 중이니 방해하지 마시라'고 해주시면 되겠다. 물론 이 코멘트 이후 빵빵 터질 불꽃 싸다구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Reference:
1. Raizen DM, Zimmerman JE, Maycock MH, Ta UD, You YJ, Sundaram MV, et al.: Lethargus is a Caenorhabditis elegans sleep-like state. Nature 2008, 451:569-572.
2. Opp MR. Sleeping to fuel the immune system: mammalian sleep and resistance to parasites. BMC Evol Biol. 2009 Jan 9;9:8
3. Toth LA, Krueger JM: Effects of microbial challenge on sleep in rabbits. Faseb J 1989, 3(9):2062-2066.
4. Opp MR: Cytokines and sleep. Sleep Med Rev 2005, 9(5):355-364
5. Everson CA, Toth LA: Systemic bacterial invasion induced by sleep deprivation. Am J Physiol Regul Integr Comp Physiol 2000, 278(4):R905-R916.
6. Spiegel K, Sheridan JF, Van Cauter E: Effect of sleep deprivation on response to immunizaton. J A M A 2002, 288(12):1471-1472.
7. Preston BT, Capellini I, McNamara P, Barton RA, Nunn CL. Parasite resistance and the adaptive significance of sleep. BMC Evol Biol. 2009 Jan 9;9:7
8. Ravussin E, Lillioja S, Anderson TE, Christin L, Bogardus C: Determinants of 24-hour energy expenditure in man. Methods and
results using a respiratory chamber. J Clin Invest 1986, 78(6):1568-1578.
9. Jean-Louis G, Kripke DF, Ancoli-Israel S, Klauber MR, Sepulveda RS: Sleep duration, illumination, and activity patterns in a population sample: effects of gender and ethnicity. Biol Psychiatry 2000, 47(10):92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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