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운명’의 박진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연기력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배우 김명민이 주연이라는 이유만으로 ‘내 사랑 내 곁에’는 개봉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습니다.

루게릭씨 병을 앓고 있는 김명민(백종우 역)과 장례지도사인 하지원(이지수 역)이 만나 사랑하지만 결국 불치의 병이 두 사람을 갈라놓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과거에 있었던 영화들, 특히 여배우가 불치의 백혈병으로 죽는다는 스토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병에 걸린 대상이 여자 주인공에서 남자 주인공으로 그리고 백혈병에서 루게릭씨 병이라는 새로운 병으로 바뀐 것이 차이겠죠.

그래서 그런지 개봉 전의 반응에 비해 개봉 후의 반응이 약간 차가운 면이 있습니다. 그래도 루게릭씨 병이라는 질병에 대해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특히 20kg을 감량하면서 열연한 김명민씨의 실감나는 루게릭씨 병 연기가 큰 몫을 했습니다.

루게릭씨 병은 근위축성측상경화증(ALS: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또는 운동신경원질환(MND:motor neuron disease) 등으로 불리는 병으로 운동신경세포가 퇴행성 변화에 의해 점차 소실되어 근력 약화와 근위축을 초래하는 질병입니다.

1874년 신경과 의사인 Charcot에 의해 ALS, 근위축성측상경화증으로 이름 붙여졌는데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근위축, 근력약화, 섬유속성연축 등을 특징으로 하는 퇴행성 신경계 질환입니다. ALS에서는 대뇌 및 척수의 운동신경원이 선택적으로 파괴되기 때문에 운동신경원 질환(Motor neuron disease)라고도 불리는 것이고 1930년대 유명한 야구 선수인 루게릭이 이 병에 걸린 이후로는 루게릭씨 병(Lou Gehrig's disease)으로 불립니다.
대부분의 수의적 골격근들은 척수로부터 나오는 신경의 지배를 받는데 이 신경이 점차적으로 파괴되는 질병이 바로 루게릭씨 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경이 파괴되면 근육이 수축과 이완의 명령을 받지 않아 쓸 수 없게 되고 결국 근육량이 줄어들어 환자는 삐쩍 마르게 됩니다.
영화 속 김명민씨가 20kg까지 감량한 것은 이런 루게릭씨 병에 걸린 환자들과 비슷한 외형을 갖기 위함 이였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도 포스터를 통해 파격적으로 체중 감량한 모습을 보셨을 겁니다. 실제 루게릭씨 병에 걸린 환자처럼 연기하는 것도 좋지만 저렇게 급작스러운 감량이 건강을 해쳤을 것을 생각하니 영화 보는 동안 걱정도 되더군요.

영화 내 사랑 내 곁에 속 김명민씨는 이미 루게릭씨 병이 진행된 상태로 나와 초기 증상이 어땠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ALS에 걸린 환자의 4분의 3 정도는 손발의 움직임에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는다고 합니다. 젓가락을 집기가 어렵고 무거운 물건을 들기 힘들고, 달릴 수 없고, 쉽게 피곤해지는 증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 속 김명민씨도 초반에는 목발을 이용해 걸을 수 있다가 병이 진행되면서 휠체어를 이용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전동 휠체어 그 이후에는 의사 표현이 불가능한 상태까지 진행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근육들의 마비로 인해 언어 표현의 장애와 음식물 삼키는 연하 운동의 장애도 생길 수 있고 심한 경우에는 호흡 근육의 쇠퇴로 인공호흡기의 도움을 받아야만 숨을 쉴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지금 말씀 드린 병의 진행 상황이 영화에 상당히 잘 표현되었다는 것을 떠올리실 수 있을 겁니다.

또 한 가지 영화에서 루게릭씨 병을 잘 표현한 것이 있습니다. ALS에서 나타나기 어려운 증상 네 가지가 안구운동의 장애, 방광직장장애, 감각장애, 욕창이라고 하는데요, 영화에서 안구운동이 마지막까지 유지되는 것과 팔을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얼굴에 앉은 모기에 대한 감각은 살아 있어서 괴로워하는 모습은 이런 특징을 잘 나타내줬습니다. ALS 환자에서 욕창이 잘 안 생기는 원인에 대해서는 피부 콜라겐에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한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 병의 증상에 대해 여러 가지를 말씀 드렸습니다만, 안타까운 것은 ALS라는 병이 보고된 지 130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그 원인을 확실히 밝혀내지 못했고 병을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약물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0만 명에 1명 발생할까 말까한 희귀질환에 근본적인 치료법도 아직 없다보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러 대체의학 또는 민간요법을 찾기 쉽습니다. 아내 역의 하지원은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엔 ‘원래 사람은 다 죽어. 그냥 하루 하루 행복하게 살면 되는 거야’라며 대담하게 이야기 했었지만, 사랑이 커져가면서 어떻게 하든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무자격 의료인을 찾아갑니다. 결국 잘못된 처치로 인해 다시 병원에 입원하게 되죠.

죽음이 가까워지면서 김명민의 감정은 급변하게 됩니다. 이를 두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루게릭씨 병의 합병증을 표현한 것일까?’ 고민했습니다만 확실한 결론을 내리긴 어렵습니다.

ALS의 합병증으로 감정 조절이 어렵고 마치 조울증 처럼 웃다가 울기도 할 수 있다고 문헌에는 나와 있습니다만, 영화에서는 죽음을 아주 가까워질수록 김명민의 감정이 차분해지는 것으로 봐서 ALS의 합병증으로 설정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해가지 않는 감정 설정은 영화 속 아쉬운 점으로 봐야하는 것일까요?

아쉬운 점은 그 외에도 여러 곳에서 보입니다. 하지원이 임신을 원했지만 혼인신고는 미뤄온 점이나 임신했다고 했다가 하지 않았다고 다시 말하는 부분은 왜 삽입된 것인지 설명이 부족한 부분 등이 대표적입니다. 임신과 관련해 루게릭씨 병이 유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리기 위해서였을까요? 그렇다면 이 영화는 정말 루게릭씨 병을 홍보하기 위한 영화라고 해야 할 겁니다.

모든 감각이 살아있으면서 움직일 수 없다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질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점차적으로 병이 진행되어 죽음에 이르기 때문에 현 상태에서 멈추기만 해도 좋겠다고 ALS 환우들은 이야기 합니다. 발병 후 2-5년에 사망에 이르고 지금까지 나온 약재는 신경을 파괴하는 글루타민산을 억제하므로 효과를 보인다고 알려진 리누졸이란 약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이 약의 효과도 제한적이고 더구나 약을 복용해도 파괴된 신경이 되돌아오지는 않기 때문에 건강한 상태로 돌아오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줄기세포를 활용해 ALS를 치료하는 것에 대해 활발히 연구되고 있습니다. 지나친 기대를 하기엔 이르지만 쥐실험에서 줄기세포를 통해 효과를 봤다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ALS에 줄기세포 치료를 시도하는 임상시험이 미국에서 진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꼼짝없이 죽는 병이래. 근데 난 꼭 살꺼야’


영화 속 백종우가 한말입니다. 루게릭씨 병을 앓는 모든 환우분들, 그리고 가족분들 힘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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