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도와줄 활동지원사 구하기 ‘하늘의 별따기’…코로나로 악화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 범위 확대 절실…“가족 지원 허용 필요”
“희귀질환자, 장애인 정책에서도 소외…장애 판정 기준 개선해야”

가끔 뉴스에 발달장애인 부모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 나오면 심정이 이해가 가요. 해방은 영원하니까. 그러다가도 아이에게 죄스러운 마음에 가슴이 미어져요. 내가 돌보지 않으면 누가 이 아이를 보겠어요. 희귀질환과의 싸움은 끝이 없어요.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 속에서 가족들은 하루하루 지쳐가고 있어요.”

18년째 엔젤만 증후군’(Angelman Syndrome)을 앓고 있는 윤성준 군의 어머니 A씨의 하소연이다. A씨는 투병 과정을 끝이 보이지 않는 외로운 싸움이라고 했다. 희귀질환이다 보니 치료제 개발이 쉽지 않은 탓에 손 써볼 치료제도 없다.

엔젤만 증후군은 영국의 소아과 의사 Dr. Harry Angelman1965년 학계에 처음 보고해 붙여진 이름이다. 15번 염색체에 위치한 특정 유전자의 중복이나 결손이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인구 15,000~2만명 당 1명꼴로 발생하는 희귀질환이다. 국내에는 지난해 기준 엔젤만 증후군으로 보고된 환자가 2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사진출처 게티이미지
사진출처 게티이미지

엔젤만 증후군 질환을 갖고 태어난 아이들은 이유 없이 과하게 웃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행복한 꼭두각시 증후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비정상적으로 머리가 작고, 뒷머리에 편편한 홈이 나타나거나, 때때로 들쑥날쑥한 수평의 홈이 나타나기도 한다. 균형이상으로 걸음 장애가 생기고, 언어장애, 과잉행동, 비정상적 뇌파 등 중증 복합장애를 동반한다. 근육긴장이 감소되어 팔다리가 갑자기 움직이기도 하고 손 퍼덕이기가 나타나기도 한다.

성준 군은 태어난 지 10개월이 됐을 때 엔젤만 증후군으로 진단 받았다. 자연분만으로 낳은 우량아였고 100일 무렵 뒤집기를 한 성준 군이었다. 가족들은 이런 성준 군에게 건강 문제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발달이 조금씩 지연됐고, ·유아에게 드문 위식도 역류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우연찮게 발달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엔젤만 증후군으로 진단됐어요. 심한 지적장애와 수면장애, 섭식장애, 언어실조 등 온갖 장애라는 장애는 다 갖고 있어요. 인지도 안 되고 언어라기보다 무의미한 발화를 하는 정도에요. 척추측만증이 심하니 보행도 다른 애들에 비해 불안정한 편이에요.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6개월 영·유아 수준이니 24시간 눈을 뗄 수 없어요. 성준이는 24시간 활동지원이 필요해요. 누군가의 보호가 꼭 필요하거든요. 봐주지 않으면 자꾸 넘어지니까. 혼자 밥도 못 먹고 목말라도 물 달라 소리도 못하고 혼자 마시지도 못하니까. 그냥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있는 거예요. 웃는 얼굴로.”

성준 군이 어렸을 땐 기대도 했다. 열심히 치료하다보면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도 있었다. 하지만 치료과정은 쉽지 않았다. 희귀질환으로 치료제를 기대할 수도 없고 증상관리를 위한 물리치료와 재활치료, 언어치료가 전부다. 하지만 낮은 재활 수가로 성준 군 같은 희귀질환 아이들은 치료를 지속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의료기관에서 치료 종결이 되면 희귀질환 산정특례 적용을 받을 수 없는 사설 치료센터를 전전해야 한다.

발달이 느리니 물리치료나 작업치료, 언어치료를 우선적으로 받아요. 성준이는 중학교 2학년 정도 되니 치료가 종결됐어요. 재활의학과 수가가 너무 낮으니 회복 가능한 환자들에게 기회가 돌아갈 수밖에 없어요. 그것도 이해해요. 중증 희귀질환 아이들은 물리치료사가 11로 붙어야 하고 낫는다는 기약도 없으니 우리 애가 말뚝박으면 다른 아이가 들어오질 못 하니까요. 그런데 애는 죽을 때까지 운동이 필요해요. 결국 사설 치료센터를 찾아 나서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아요. 가계 부담이 너무 큰 거죠.”

"가족의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 허용 확대해 달라"

성준 군이 크면 클수록 늘어나는 치료비를 감당하기 위해 어머니 A씨도 일을 다시 시작하려고 했다. 하지만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돌봄 부담이 커지며 이마저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마스크 착용이 어렵다는 이유로 장애인 활동지원사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결국 돌봄 부담은 오롯이 엄마의 몫이 됐다.

보통의 활동지원사는 50~60대 어머니들이 많아요. 그러니 중·고등학생 정도 되는 남자아이를 돌보기가 쉽지 않죠. 간식도 먹여줘야 하고, 소변도 봐줘야 하니 어렵게 구하더라도 다들 그만둬요. 최중증 환자의 경우 활동지원을 나오면 가산으로 시간 당 2,000원 정도가 더 붙지만 그 금액으로는 어림도 없죠. 코로나19로 상황으로 더 안 좋아졌어요. 어렵게 구하더라도 마스크를 쓰지 못하니 오던 활동지원사들도 다 그만 두더라고요."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는 활동지원사를 파견해 장애인의 일상생활을 지원하고 가족의 돌봄 부담을 덜어주고자 만들어진 제도로 지난 2011년부터 시행됐다. 활동지원사를 구하기 힘든 경우 배우자나 직계혈족 등 가족을 활동지원사로 지정할 수 있다. 하지만 가족이 활동지원사인 경우 활동지원 급여비용 지급이 제한되며, 활동지원기관이 부족한 지역에 거주하는 경우 등에만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그나마 코로나19 시기 동안 한시적으로 가족 활동지원이 가능한 '희귀질환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가 허용돼 성준 군을 돌보면서도 활동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지만 이 또한 언제 중단될지 알 수 없다.

한국엔젤만증후군협회 홈페이지 캡쳐
한국엔젤만증후군협회 홈페이지 캡쳐

가족 활동지원 서비스를 신청해 승인받기까지 쉬웠던 것도 아니다.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이미 수 년 전 뇌 병변 장애를 진단 받았지만 ‘지적장애’가 아니라 가족의 장애인 활동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또한 활동보조사를 구하려고 지속적으로 요청했던 기록이 있어야 하고, 수개 월 간 활동지원사 없이 지냈다는 점도 증명해야 했다. 수소문 끝에 찾아간 의원에서 ‘심한 지적장애’로 진단 받은 후, 성준 군은 엄마로부터 활동보조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지적장애 진단을 겨우 받아 직접 활동보조를 할 수 있게 됐지만 가족 지원의 경우 한 달에 50%만 쓸 수 있어서 90시간 활동보조를 할 수 있어요. 정부에서 가족 지원을 좀 꺼리는 것 같아요. 부정수급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실사를 나와도 좋으니 가족이 활동보조를 할 수 있게 영구적으로 제도 개선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일을 하려고 해도 아이를 맡길 곳이 없으니 갈 수가 없어요. 활동보조를 할 수 있게 해주면 사설 치료센터 치료비라도 보탤 수 있으니 도움이 되요.”

'희귀질환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가 실효성 있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가족의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를 확대해 줄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희귀질환자, 개인 신체특성 및 상황 고려한 장애판정 필요”

더욱이 성준 군은 지적장애라는 장애의 범주에 들어가는 진단을 받을 수 있었기에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희귀질환으로 진단받은 환자 중에는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로 누워 있어야만 하거나 돌봐주는 사람이 없으면 집에서조차 이동이 힘든 사람도 적지 않다.

태어나면서부터 수포성표피박리증이라는 유전자질환을 앓고 있는 B군과 그 어머니는 지난 2018년 수포성표피박리증 지원확대를 위한 토론회에서 스치기만 해도 상처가 생기고, 재채기만 해도 식도가 벗겨지는 아이를 데리고 약국으로 약을 타러가면서도 장애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장애인 이동차량을 이용할 수가 없어 택시를 타고 다녀야 했다고 호소했다. B군은 어느 덧 성인이 되어 대학에 다니고 있다. 결국 B군과 그 가족은 태어나면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제도의 장벽을 온전히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김진아 사무국장은 희귀질환과 장애는 동의어가 아니다. 하지만 삶의 모든 영역에서 독립적인 기능을 유지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판정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장애판정을 받을 수 없는 환자가 있다면서 이런 이유로 다수의 희귀질환자들이 장애인 정책에서도 소외돼 있다고 지적했다.

설사 장애판정을 받아 장애인 복지서비스를 이용하더라도 희귀질환의 특성이 고려된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김진아 국장의 지적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21614일부터 1031일까지 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회원 환자와 보호자 등 456명을 대상으로 장애판정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가운데 장애판정을 받은 비율은 47.8%였다. 장애등록을 희망한다는 사람이 36.8%였으며, 원하지 않는다는 사람은 18.9%에 불과했다.

김진아 사무국장은 장애등록 희망 비율이 36.8%에 달한다는 것은 장애등록을 희망함에도 불구하고 현 기준으로서는 장애판정이 불가능해 제한을 받고 있다는 뜻이라며 희귀난치성질환자의 경우 개인의 신체특성 및 상황을 고려해 장애를 판정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진아 사무국장은 우선 장애인 수급자의 경우 희귀질환자의 경우 가족간에도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범위를 확대하고 활동지원사 등급제를 실시, 중증도가 높은 환자를 케어하는 활동지원사에 대해서는 보상을 강화하는 한편, 중증의 희귀질환 환자에 대한 일부 의료행위를 인정, 서비스 제공이 불법으로 간주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