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영소아청소년과의원 정우영 원장

여자에서 저신장증의 원인을 규명할 때 터너증후군을 빼 놓을 수는 없다. 터너증후군은 흔한 염색체 이상 질환 중의 하나로 한 개의 성염색체 소실로 인해 연관된 유전자 산물의 결손으로 표현형이 나타나는데, X 염색체 유전자의 일배수 결손(haploinsfficiency)이 있거나, 배아 세포 분화 중 염색체 쌍의 형성이 안되거나, 또는 이수배수체(aneuploidy)로 인해 발생한다.

그러면서 반드시 신체의 외형은 여성이어야 한다.

터너증후군의 염색체 핵형은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X 염색체 하나가 완전 소실된 X 단일 염색체, X 염색체의 구조적 재배열, 그리고 모자이키즘으로 구분한다. 염색체의 핵형과 표현형은 어느 정도 연관성이 보이는데 모자이키즘의 경우, 신체 일부의 세포는 정상 핵형을 가지고 있으므로 터너증후군의 임상적 표현이 경미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모자이키즘을 가진 터너증후군 환자의 약 2~4% 정도에서는 46, XY 핵형을 가진 세포가 섞여 있거나, Y 염색체의 구조적 재배열이 동반된 세포를 포함한다. Y 염색체가 있을 경우 삭상 성선(streak gonad)에서 성선모세포종의 발생 가능성이 12~30% 정도로 높기 때문에 가능하면 미리 제거하는 것이 추천된다.

12세의 여아가 무월경증을 주소로 부인과로 내원하였는데, 키가 너무 작아서 소아과로 협진 의뢰 되었다. 키는 전교에서 가장 작은 편이었고, 외형상으로도 전형적인 터너증후군을 의심할 수 있을 정도로 목이 짧고 흉부가 돌출되어 있었다. 검사를 진행하면서 신장, 심장, , 눈 부위에도 이상소견이 동반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염색체 분석에서 Y 염색체가 발견되었다.

검사결과들을 꼼꼼히 정리하면서 환아에게 어떻게 Y 염색체의 존재 사실을 이해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하였다. 그리고 향후 발생할 위험성이 있는 암 발생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는 예방적 성선 제거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조심스레 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환자의 첫 질문은 나의 머릿속을 휘저어 놓기에 충분하였다.

선생님, 저 남자예요?”

부모님께 우선적으로 검사결과를 설명하면서 Y 염색체의 존재와 예방적 성선 제거술에 대한 의논을 했었는데, 부모님께서 환자에게 대략적인 설명을 하신 듯하였다.

아니 성별은 여자가 틀림없어.”

그런데 왜 저는 임신을 못해요?”

왜 제 난소를 제거해야 해요?”

제 키는 얼마나 더 클 수 있어요?”

제 성격이 좀 남자스러운 게 Y 염색체와 관련이 있어서 그런가요?”

그날 환자와의 진료실에서의 대화는 환자가 꺼낸 로 시작해서 로 끝났다.

이 환자는 결국 예방적 성선 제거술을 시행 받았고, 병리조직학적 검사에서는 성선모세포종의 소견은 전혀 없었다. 성장호르몬 치료는 환자의 키를 거의 156cm에 이르게 하였다. 이제 거의 40대를 바라보는 이 환자는 연말이면 나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 온다.

진단 당시에 환자 본인이 느꼈던 엄청난 충격을 그나마 진정 시키고, 비록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만 결국에는 담담히 자신의 질환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환자 자신의 이야기들을 끝까지 들어주고 함께 고민을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적시 하면서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의사로 계속 남기를 바란다는 진솔한 제언을 빠뜨리지 않는다.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으며 늘 잊지 않고 있다는 따뜻한 인사와 함께 .

이 후에 2명의 환자에서 유사한 결과가 발견되었고, 이들에게 더 세심하게 질환의 진행과정을 설명했지만 예방적 성선 제거술을 시행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더 이상은 추적관찰이 중단되어서 현재의 상황을 알지는 못한다.

터너증후군은 발생 빈도가 감소되고 있는 대표적인 질환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근래 들어서는 새로운 환자를 거의 볼 수가 없다.

신생아 출생률의 감소를 감안하더라도 터너 증후군의 발생 빈도는 분명 격감하고 있다.

고도화되고 전문화 된 신생아 스크리닝 검사를 통해서 조기에 터너증후군을 진단해 낼 수 있는 체계적인 진단 시스템이 이 질환의 발생빈도를 감소시키는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터너증후군 질환 자체의 임상 경과도 많은 변화를 나타낸다. 병원을 방문 할 당시의 환자들의 키는 과거에는 대부분의 환자가 3 백분위수 미만의 작은 키를 가졌지만, 현재는 키가 거의 10 백분위수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임신도 아예 불가능한 질환으로 여겨졌는데, 자연 임신을 하는 경우도 보고가 늘고 있고, 시험관 시술을 통한 성공적인 출산 사례도 적지 않다.

난소 부전으로 인해서 자연적인 사춘기의 진행은 불가능하다고 알려졌지만, 자연적인 생리의 발생이 야기되거나, 심지어는 사춘기 성조숙증을 나타내는 경우도 경험하고 있다.

삶을 살아오면서 뜻하지 않게 환자 진료에 소홀해 질 때나, 반복되는 진료 생활에 무료함마저 느끼면서 의사로서의 역할에 동력이 소진될 때면, 나는 Y 염색체를 가진 터너증후군 환자를 떠 올린다.

의사나 환자나 후회 없는 자신의 삶은 각자가 만들어 가는 것이고, 혼자만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나이가 들면서 더 체감하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어떤 형태로든 모든 사람은 결국에는 환자가 된다는 것도 새삼 느끼고 있다.

정우영 원장
정우영 원장

정우영 원장은 부산의대를 졸업한 소아청소년과, 소아내분비 전문의로 30여년간 부산백병원에서 저신장증 환자 등을 치료해왔다. 부산백병원 유전자연구위원회 위원장, 희귀난치성질환센터장, 희귀질환 경상권·부산권 거점센터장, 국가바이오 빅데이터 구축 시범사업 희귀질환 전문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2022년 4월 정년퇴직 후 해운대 대우월드마크센텀아파트 상가에 ‘정우영소아청소년과의원’을 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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