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0.7.2 목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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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말년 병장과 같은 병원의 말턴
군대에 말년 병장이 있다면 병원에는 말턴이라 불리우는 게으른 존재들이 있다. 3월 신삥때와는 다르게 말턴의 몸과 마음은 모두 아름다운 느림의 미학에 촉촉히 젖어있다. 웬만해선 ABR(absolute bed rest)모드에 응급이 아니라면 콜이 와도 달려가는 일이 거의 없으며 픽턴이 아니라면 윗년차 눈치보는 일이 거의 없고, 드레싱이나 폴리, L-tube 등의 각종 술기가 귀찮아지는 그런 시절을 나는 보내고 있다.

 요근래 병동 간호사들에게 '선생님 예전보다 많이 게을러졌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걸 보면 나 역시도 말턴의 유혹을 피해갈 수 없었나보다. 아무래도 일이 익숙해지고 어느정도 똥오줌은 가릴 위치가 되다보니 종종 일을 미루기도 하고 요령을 피우는 경우도 확실히 늘긴했다. 허나 어쩌겠는가, 3월같은 신선함과 빠릿빠릿함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엔 너무나 많이 상해버린 것을.



쑈피알에 묘사된 인턴잡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슬렁슬렁 병동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던 찰나, 중환자실에서 드레싱하던 환자의 상처에 눈에 띄게 고름이 늘어나 있는 것을 보았고, 그 상처를 소독하는 내내 그간의 게을렀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래서인지 다른 때와는 달리 더 신경써서 고름을 짜내고 가피를 제거했다. 평소 같았으면 5분내에 끝냈을 소독을 장장 20여분에 걸쳐 땀을 뻘뻘 흘려가며 마무리 지었다.

 때마침 중환자실 보호자 면회시간이라 보호자들이 우수수 환자곁으로 몰려들었고, 내가 드레싱하던 환자 보호자 역시 환자곁으로 다가와선 환자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상처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가피를 제거하고 고름을 짜낸 탓인지 더 깨끗히 보였던 상처를 가리키며 보호자는 내게 '선생님 덕분에 아버님 발이 깨끗해져서 기분이 좋다'며 '아버님이 여기저기 많은 병원을 다녀봤지만 선생님처럼 환자를 꼼꼼히 돌보는 의사는 처음이라며 역시 환자를 살리는 의사라는 직업은 존경받아야 마땅하다'며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내게 건넸다.

 순간 얼굴이 붉어졌다. 과연 내게 그 환자 보호자로부터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받을 자격이 있었을까. 언제부터인지 환자를 질병 혹은 작업의 대상으로만 생각해왔던 내가 과연 환자를 위하는 의사가 될 자격이 있을까란 생각에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학창시절, 의사는 병뿐만 아니라 사람을 보아야한다는 한 교수님의 말이 머릿 속을 계속해서 맴돌며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만들었다. 질병이 아닌 인간을 마주하는 존경받는 의사, 학창시절 참으로 쉬워보였던 그 말이 현실에선 참으로 어려웠다. 과분했던 그 보호자의 감사와 존경을 뒤로한채, 3월 시작하는 초턴의 마음가짐으로 돌아가 환자를 돌보겠노라 다짐해본다.

Polycle  juju-crust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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