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선 Northwestern Memorial Hospital 유전상담사

우리 팀 내에서 자주 농담 삼아 말하는 문장이 있다. “It’s always the dad” (분명 아빠일 거야). 우리는 의심스러운 가족력을 가지지 않은 환자인데, 어린 나이에 유방암에 걸려서 유전 상담 클리닉에 찾아오시거나, 유전성 유방 증후군이 발견되는 환자들을 많이 만나고 나서 이 말을 많이 하게 되었다.

이런 환자분들의 가족력을 들여다보면, 금방 쓱 봐서는 유전적인 요인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 하곤 한다. 유방암이나 특정한 유전성 유방 증후군과 관련돼 있는 암 가족력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자주 간과되는 부분이 있다면, 유전성 유방 증후군은 아빠들에게서도 유전될 수 있고, 그 증후군에 의하여 남성들도 암 발병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유전성 암이라고 하면 자주 거론되는 BRCA1, BRCA2에 유전 변이가 있는 환자들, 특히 BRCA1 변이가 발견이 되었는데 가족력에 특이성이 없을 때 우리는 친가 쪽을 의심하곤 한다. 이는 BRCA1이나 BRCA2에 유해한 유전 변이가 있을 때 그 보인자가 여성이었을 때와 남성이었을 때에 보이는 암 발병률이 다르기 때문이다. 

2017년 the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JAMA)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BRCA1에 변이를 가진 여성은 80세까지 유방암이 발병률이 72%에 달하며 난소암 발병률은 44%에 달한다. BRCA2에 경우에는 유방암 발병률이 69% 그리고 난소암 발병률이 26%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에 비해 남성 보인자들은 BRCA1에 변이가 있을 때 남성 유방암 발병률이 1% 정도이고 전립선암 발병률이 15~20%, 그리고 BRCA2에 변이가 있을 때 남성 유방암 발병률이 1~5%, 전립선 암 발병률이 20~35% 정도이다(최근 연구결과들에 의하면 더 높은 것으로 추정되긴 하지만). 확률적으로 똑같은 유전 변이를 가졌다 해도, 남성들에게 암이 발병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BRCA1이나 BRCA2 변이가 남성 암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아는 분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유방암 클리닉에서 환자분들을 만나다보면 “저희 집안에는 유방암 가족력이 없다고요!”라는 말을 자주 듣곤 한다. 유방암 가족력이 없는데 왜 나만 걸렸냐며 한탄을 하시는 거다. 그런 분들 중 간혹, 아빠 쪽에 전립선암 가족력이 세다든지, 아빠가 전이성 전립선암에 걸려서 돌아가셨다는 분들이 계신다. 그분들께 내가 “전립선암 발병률을 높이는 유전자 변이가 유방암 발병률을 높이는 경우도 많아요"라고 말씀을 드리면 깜짝 놀라시곤 한다. 전립선암과 유방암이 연관이 있을 수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셨다는 거다.

이 글을 써 내려가다 보니, 작년 이맘때쯤 만났던 환자분이 기억이 난다. 삼중음성 유방암에 걸리셔서 유전상담을 받으러 오셨는데, 가족력을 받아 적다 보니 유방암 가족력은 하나도 없는데, 친가 쪽에 전립선암 가족력이 있었다. 아빠도 비교적 늦은 나이셨지만 (60대 즈음) 전립선암에 걸리셨었고, 삼촌 한 분이 전립선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하셨다. 유전자 검사를 도와드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BRCA1 변이가 발견되었다. 결과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면서, 부모님을 검사해 봐야 확실히 아는 거지만, 가족력을 보았을 때 친가 쪽에서 유전되었을 것 같아 보인다고 말씀을 드렸었다. 그 몇 주 후, 이 환자분의 부모님이 검사를 진행하셨고 환자분의 아버님에게 똑같은 변이가 발견되었다. 

5년간 일을 하면서 이런 케이스들을 더러 보았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참 안타깝게 느낀다. 2018년 BMC cancer지에 발간된 논문에 의하면, 연구에 참여했던 102명의 BRCA1/BRCA2 변이를 가진 남성분 중 33명이 암 병력이 있었지만 그중 본인 개인병력으로 인해 유전검사를 받아보신 분은 4명 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클리닉에서 볼 때도 유방암에 걸리신 환자분들은 검사 기준에 맞지 않으셔도 많은 분이 소개를 받고 찾아오시는데, 전립선암에 걸리신 환자분들은 많은 분들이 검사 기준이 맞는데도 유전 상담 혹은 검사 권유조차도 받지 못하신다. 그도 그럴 것이 유방암은 미디어나 SNS 같은 매개체를 통하여 많은 주목을 받는데, 특히나 2013년도에 안젤리나 졸리가 BRCA1 변이 보인자임을 공개함으로 인하여 BRCA1, BRCA2를 많은 분들이 알게 되었다. 그에 비해 남성 암은 필요한 만큼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그 때문에 유전상담과 유전검사의 수혜를 현저히 덜 받게 된다. 

최근 들어서는 이러한 격차를 줄이기 위한 의학계의 노력이 많이 보이긴 한다. BRCA1, BRCA2 나 다른 암 발병이 관련된 유전자 변이에 관련된 남성 암에 대한 연구도 더 많이 진행되고, 또 전립선암과 같은 남성 암 자체에 대한 연구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나 또한 유전상담사로서 환자 한 분, 한 분께 정확한 지식을 알려드림으로써 대중의 인식에 긍적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게 오늘도 노력해 보려 한다.  

박민선 유전상담사
박민선 유전상담사

박민선 유전상담사는 시카고에 위치한 Northwestern University 대학원의 유전상담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2018년 미국 유전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졸업 후 같은 지역의 Northwestern Memorial Hospital에서 암 유전상담사로 근무하고 있다. 또한 Northwestern University의 faculty로서 유전상담 석사과정 입학 심사위원회에 참여하고 있으며, 유전상담 석사과정 학생들 실습과 논문 지도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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