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혹은 의학에 대한 오해를 가진 환자나 보호자를 만나서 고생한 것이 하루 이틀은 아니고, 의학 자체도 불합리한 경험 덩어리라고 하지만, 이번 신종플루와 관련해 응급실에서 진료하는 것 그 자체가 불합리와의 고단한 싸움입니다.




예를 들면,

첫째는 119 구급대원이었는데 열나는 환자를 이송했으니 무조건 병원 가서 검사받고 괜찮다는 진단서를 받아오라는 상부 지시때문에 응급실에 방문한 경우. 이 경우 실제 이송했던 환자는 호흡기 증상이 전혀 없었고 요로 감염으로 치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 사실을 여러 차례 해당 부서에 확인 시켜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해당 구급대원들이 아무 증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무에서 무조건 진단서를 받아오라고 했다며 응급실에 와서 난감한 표정으로 진단서를 요구하더군요.

둘째는 자녀가 호흡기 증상이 있어 치료 받는데 직장 다니는 부모님들. 어떤 분들은 자녀가 확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직장에서 나오지 말라고 하는데, 회사에서 요구하니 진단서를 써달라고 하십니다. 어떤 분들은 자녀의 증상이 호전되어 다시 직장에 나가려는데 부모인 자신이 아무렇지 않다는 것에 대해 진단서를 써달라고 하십니다. 병이 없는 사람에게 뭘 진단하고 진단서를 쓴단 말인가요...

최근에 신종플루 관련하여 병원 특히 응급실에서 처리하는 서류업무 (직장, 학교, 보험회사 등등에 제출한 진단서 및 소견서)의 양이 정말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쓰는 내용도 대체로 비슷한데 가끔은 진단서나 소견서 자동판매기를 만들고 싶은 심정입니다.

셋째는 타미플루 관련한 오해. 복용법, 부작용, 내성 등 관련된 것들에 대한 정보가 여기저기서 나오면서 환자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진료하는 입장에서 일일이 설명하고 이해시키고, 틀린 것을 바로 잡아 주는 것도 큰 일입니다. 일단 타미플루 복용을 시작한 뒤에서 응급실에 문의전화를 계속합니다. 열이 계속 나는데 어떻게 하느냐, 열이 안나는에 안먹어도 되냐, 애기가 약을 토했는데 또 먹여야 하는냐, 속이 울렁 거리는데 부작용 아니냐, 다른 약하고 같이 먹어도 되느냐 등등....응급실에 있으면 관련 전화 받는 것만으로도 사람이 한 명 더 필요할 지경입니다.  

넷째는 신종플루 자체. 신종플루는 신생 전염병입니다. 일단 이 병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 결과, 증거는 매우 미미합니다. 잠복기, 감염기, 증상 등 대부분의 근거는 일반적인 계절플루에 준한 것입니다. 사실 계절플루와 신종플루가 사촌뻘은 되는 셈이니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사실은 신종플루 자체에 대한 명확한 과학적 근거는 아직까지 완전하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가 모르는 감염 경로가 있을 수도 있고, 잘 모르는 증상이 있을 수도 있고, 다른 치료약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신종플루에 대해 이번 유행을 계기로 여러가지 지식도 새로 얻고, 인류는 한 걸음 더 나아갈지 모르겠습니다. 최소한 국민들이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될 때 좀 더 합리적으로 대응할 수 있겠지요. 지금은 신종플루와 우리 사이에 있는 불합리들을 해소하고 풀어 내는데에 노력해야겠지요. 그래서...신종플루 진료는 때로 임상진료이기보다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위한 과정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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