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세브란스 강윤구 교수, 당원병 환자·보호자 10여명과 수시 연락
“치료제는 없지만 관리만 잘하면 정상인처럼 살아갈 수 있어”
당뇨병처럼 소모품 지원도 못받아…옥수수 전분 섭취 중요

“선생님, 이것 먹어도 되나요?”

가족들과 모처럼 1박2일 나들이에 나섰던 10살 민준(가명)이가 연세원주세브란스병원 강윤구 교수에게 보내온 카카오톡 메시지다. 희귀질환인 당원병을 앓고 있는 민준이는 여행지 식당에서 나온 음식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며 먹어도 되는지 상담했다. 

환자 보랴, 연구하랴, 당직 서랴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는 강윤구 교수지만 강 교수의 핸드폰은 24시간 당원병 환자는 물론 보호자들에게 열려있다. 환자나 보호자들이 보내오는 카톡이 하루 평균 10여통에 달한다.

강 교수는 카카오플러스 채널을 통해 운동부터 식이까지 24시간 환자들이 궁금해 하는 것을 상담해준다. 현재 강윤구 교수 카카오톡 플러스에 친구로 등록돼 있는 당원병 환자와 보호자만 120여명이 넘는다.

당원병은 당질대사와 관계있는 효소 결손으로 생긴다. 섭취된 포도당이 글리코겐의 형태로 간근육신장 등에 축적되는 탄수화물 대사 장애 질환이다. 당뇨병과는 반대로 혈당이 너무 낮아 저혈당 쇼크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당 조절에 실패해 간이 망가지면 간이식은 물론 각종 합병증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10만명당 1명꼴로 생기는 당원병은 아직 치료제가 없다. 혈당을 꾸준히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알맞은 용량의 식사와 정해진 시간에 옥수수 전분(환자용)을 섭취해 적정 혈당을 유지해야 한다.

원주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강윤구 교수 진료실에 그려진 사과나무에 당원병 환자들이 사진이 부착돼 있다.
원주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강윤구 교수 진료실에 그려진 사과나무에 당원병 환자들이 사진이 부착돼 있다.

“당원병, 관리 잘하면 정상적으로 성장 및 발달 가능”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물어볼 데가 없어 난감한 적 많잖아요.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아이를 키우고 있으면 더욱 그렇죠. 그 마음을 알기에 카톡으로 메시지를 주면 일일이 답을 해주고 있어요. 운동부터 옥수수 전분 양과 시간 스케줄도 조절하고, 그 외 식이도 조절해주면 아이들이 신기하게 좋아져서 와요. 처음 병원에 왔을 때 배가 불룩하고 또래보다 키도 작았던 한 아이가 얼마 전 병원에 왔는데 배도 들어가고 키도 엄청 커서 왔더라고요.”

어느 병원이든 진단법은 같지만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환자들의 상태가 달라진다는 게 강 교수의 설명이다. 당원병은 간과 신장의 초음파 검사를 통해 크기 등 이상여부를 판단하고 조직 검사를 통해 글리코겐 축적 여부를 확인한 후 유전자검사를 통해 최종 진단한다.

강 교수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당원병으로 진단되면 대개 옥수수 전분을 먹게 하고, 몇 개월 뒤에도 (혈당)수치가 안좋게 나오면 전분양을 늘려주는데 그러면 아이들은 더 나빠지게 돼 간 이식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면서 “하지만 계속 의료진과 소통하면서 먹는 스케줄과 전분 용량을 조정하면 간이식 하지 않고도 잘 지낼 수 있다”고 했다. 

옥수수 전분 용량이 중요한 까닭에 강 교수는 셰이커 보틀을 제작해 환자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정확한 용량을 섭취할 수 있게 해줄 방법이 없을까 고민에서 나온 강 교수의 아이디어다. 환자들에게 나눠주는 셰이커 보틀에는 환자 개개인에 맞는 용량이 표시돼 있다. 

​강윤구 교수가 센터를 찾는 당원병 환자 및 보호자들에게 식이조절 등의 중요성을 알려주기 위해 제작한 만화.  ​
​강윤구 교수가 센터를 찾는 당원병 환자 및 보호자들에게 식이조절 등의 중요성을 알려주기 위해 제작한 만화. ​

이뿐만이 아니다. 강 교수는 당원병의 기전, 식이조절의 중요성 등을 알려주기 위해 만화를 제작해 센터를 찾는 당원병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원주로 향하는 당원병 환자들

이런 강 교수의 노력이 통했을까. 당원병 환우들도 강 교수 소식을 듣고 원주로 몰리고 있다. 

강 교수가 원주세브란스병원에 온 것은 2019년이다. 당시 원주세브란스병원에는 당원병 환자가 단 한명도 없었다. 하지만 최근 당원병으로 진료받고 있는 환자가 90명을 넘어섰다. 이는 희귀질환자로 등록돼 있는 당원병 소아환자 중 90% 이상이라는 게 원주세브란스병원 희귀질환거점센터의 설명이다.

최근에는 당원병 환자들이 원주세브란스병원에 4,000만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당원병 환우회와 당원병 환자 김상준씨는 지난 1월 원주세브란스병원에서 기부금(당원병 환우회 3,000만원, 김상준씨 1,000만원) 전달식을 가졌다. 기부금을 전달한 당원병 환우회와 김상준씨는 강윤구 교수에게 치료 받는 환자 및 가족이며, 병원은 이 기부금을 전용 외래진료실과 입원실 리모델링에 사용하기로 했다.  

진료실 한쪽 수납장에는 강윤구 교수가 어린이 환자들에게 나눠주고 있는 선물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진료실 한쪽 수납장에는 강윤구 교수가 어린이 환자들에게 나눠주고 있는 선물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당뇨병에 비해 관심 없는 제약사와 정부

하지만 당원병이 10만명에 1명 발생하는 희귀질환이다보니 치료제는 고사하고 환자들이 먹어야 하는 옥수수 전분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병원에서 처방하는 약이 아니라 환자 개인이 구입해 섭취하는 음식이라 제약사도 관심이 없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쿠팡 등을 통해 미국 등에서 직구(직접구매)한다. 그나마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는 직구가 용이했지만 코로나19와 최근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발생해 해외배송이 끊겨 옥수수 전분 수입이 중단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강 교수는 옥수수 전분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현재 국민건강보험에서는 당뇨병 환자들이 가정에서 혈당체크를 할 수 있도록 혈당측정 시 필요한 스트립도 급여를 해주고 있다. 하지만 당원병 환자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다. 당원병 환자들은 개인적으로 일일이 구매해 사용하고 있다.  

강 교수는 “당뇨병이나 당원병 환자들 모두 혈당을 체크하는 게 중요하다. 당뇨병은 혈당이 높아 문제지만 당원병은 저혈당이 오게 될 경우 쇼크로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당원병 환자들은 당뇨병 환자들과 달리 보험혜택이 거의 없다. 1형 당뇨병에 건강보험 되는 연속혈당계도 당원병 환자들은 예외”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일부 질환에서 특수 분유가 급여가 되고 있지만 옥수수 전분 섭취가 필수인 당원병 환자들에게는 급여가 안된다”면서 당원병 환자들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지원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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