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종플루때문에 참 힘듭니다. 환자가 급증한 것을 말 할 것도 없고 병원 내에서 아무도 이 사태에 대한 대응의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으니 응급의학과가 고스란히 일을 떠맡으면서 생색도 안납니다.

그런데 지난 주말 내내 곰곰히 생각해보니.....신종플루는 사실 '감기'에 가깝습니다. 기존의 계절플루보다 전염력은 강하지만 중증이 될 가능성이 낮거나 같다는 것은 방송에도 나왔으니 잘 아실 겁니다. 그런데 평소에 '감기'는 응급실에서 진료하는 병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지금은 응급의학과가 이렇게 신종 플루때문에 힘들어야 하는 것일까요?

이렇게 급작스럽게 환자가 증가하여 의료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요구가 제공할 수 있는 의료서비스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을 '재난(disaster)' 라고 합니다. 미국에서 개발된 National Disaster Life Support(NDLS)에 따르면 재난 대응의 핵심은 재난의 감지(Detection), 통제 혹은 관리 책임 설정(Incident command), 안전 보장(Safety and security), 위험 평가(Assess), 지원(Support), 중증도 분류 및 치료(Treatment and triage), 환자 대피 (Evacuation 이 경우에는 격리가 맞겠지요), 정상 상태로 회복(Recovery)하기 위한 방안 마련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각각의 첫자를 따면 DISASTER가 됩니다. ^^)


8. 정상 상태로 회복(Recovery)


1. 재난의 감지(Detection)

여기에는 현재 상태가 의학적 공급을 넘어서는 재난인지 파악하는 것와 이를 공포하는 것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신종플루는 '심각한 재난'입니다. 전국적으로 외래환자 1000명당 9.26명으로 기존의 인플루엔자 환자의 비율(1.82)명을 훨씬 웃돌고 있습니다(질병관리본부).

게다가 유행의 분포가 이미 전국적인 수준입니다. 그러나 감염 그러나 여러 정치적인 이유들로 재난 단계를 승격시키는 것이 미뤄지다가 내일 결국 정부에서는 현재 상황을 '심각'단계로 격상하고 오늘은 중앙재난대책본부가 발족했다고 합니다. 재난의 감지에는 현재 질병관리본부에서 다양한 경로를 통해 자료를 수집하여 질병의 규모를 파악했던 것이 주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2. 통제 혹은 관리 책임 설정(Incident command)

이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의 질병관리본부(보건복지가족부)는 초기에 좀 혼란스러운 방침을 내리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잘 대응하고 있습니다. 손씻기 홍보나 기침예절 개발, 항바이러스제 처방에 대한 지침 제정 등 적절한 대응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모든 거의 모든 의료기관들이 질병관리본부의 지침을 기본으로 진료하고 있으니 통제 본부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남는 과제는 민간위주의 의료계에 공공의료의 역할을 부여하는 데서 오는 한계입니다. 초기 개원가, 그리고 거점병원들에서 질병관리본부의 정책에 대해 반발하기도 했고, 지금도 질병관리본부에서 개별 병원의 대응 상황에 대해 적극적으로 감시, 통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3. 안전 보장(Safety and security)

다른 사고성 재난에서는 경찰의 치안이나 현장 안전이 해당하는 내용이지만 이 경우에는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관리가 해당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아마 각 개인의 평가가 다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휴교를 안하는 것이 불만이신 분도 있고, 백신을 좀 더 광범위하게 접종하지 않는 것이 불만이신 분도 있을 것이구요. 그러나 손씻기가 이렇게 광범위하게 실천되는 것, 마스크 쓰는 것이 일상화된 것, 백신 접종을 시작하는 등 안전 보장에 관한 부분도 어느 정도 진행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4. 위험 평가(Assess)

개별 환자에 대해서는 확진검사를 위한 검사 시설이 이미 어지간한 거점 병원에 다 설치되었습니다. 그러니 개별 환자의 위험 평가는 잘 되고 있는 편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여전히 개인병원에서는 개별환자 진단이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좀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겠습니다만, 고위험군 파악, 특히 학교 등 집단 감염 위험 대상 파악 및 관리, 계절 변화에 따는 바이러스의 변동 파악, 신종플루 진료로 인해 정상 진료를 받지 못하는 외래 혹은 응급환자의 문제 등 전문적인 실험, 평가가 필요할 것입니다.


5. 지원(Support)

병원에서 신종플루 환자를 보는 입장에서.....정말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습니다. 각 병원마다 현재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부분은 인력입니다. 의사든 간호사든 말이죠. 거점병원의 경우 현재의 환자 방문 수준은 별도의 진료부서를 개설하지 않으면 않되는 상황입니다. 오죽하면 병원 파업의 요구사항이 신종플루 진료실에 인력을 배치해달라는 것이겠습니까? 그러나 이에 대한 지원은 참 야박합니다.

각 병원에서는 언제 필요없어질지 모르는 불안정한 부서를 위해 인력을 뽑을 수도 없고 기존의 인력을 활용하면서 추가 진료에 대한 수당을 지급하지도 않습니다. 국가에서 비용도, 인력도 지원이 없으니까요. '불쌍하게' 동원되는 응급의학과를 비롯한 몇몇과 의사들의 업무 부담과 이에 대한 불만은...거의 임계점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재난 수준이 격상되면 국가에서 공보의나 군의관을 투입해서 이를 해소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향후 이런 유사한 재난이 다시 발생할 경우를 대비에 인력 지원에 대한 대책을 마련했으면 합니다.

반면 치료약이나 백신의 공급에 대해서는 딱히 뭐라 하기는 힘든 상황입니다. 그리고 행정적으로도 진료비 심사 예외조항으로 신설하는 등의 지원이 되고 있습니다. 이도 역시 적절하다 하겠습니다.


6. 중증도 분류 및 치료(Treatment and triage)

이런 전염병에서 중증도 분류는 역학적 특성(여행이나 접촉 여부)에 기반한 구분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역학적 특성이 의미가 없어졌으니 고전적인 환자의 중증도를 평가하면 될 것입니다. 여기에 고위험군에 대한 구분이 필요할 것이구요. 치료는 이미 잘 나온 지침이 있으니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7. 환자 대피 (Evacuation)

음....이미 완벽한 격리를 지침으로 삼기를 어렵지만 자체적으로 격리하는 것 정도가 현재의 환자 대피라고 할 수 있겠지요.


8. 정상 상태로 회복(Recovery)

이 사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끝나겠지요. 그리고 원래 회복을 위한 노력은 재난이 시작하면서 하는 것이라고 했으니 지금도 열심히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해야합니다. 뭘 어떻게 할지....쫌 고민입니다. 우선 이 사태로 인해 바뀐 것이 어떤 것인지 파악하고 유지할 것과 발전시킬 것 등등등을 좀 파악해야 겠습니다.

이렇게 보고 나니 현재 위험평가(access) 와 지원(support) 부분이 다른 분야에 비해 좀 빈약하다는 생각이 들고, 정상상태 회복(recovery)관련해서는 딱히 되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에 비해 감지(detection), 통제, 관리(incident command), 안전보장(safety and security), 중증도 분류 및 치료(triage and treatment)는 비교적 잘 진행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재난이 계속 진행중인 상태이고 이런 요소들이 잘 이루어져야하겠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초기에 이런 요소들이 모두 잘 갖춰진 것은 아니었고, 대책도 원활하게 수립되고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환자는 계속 발생하니 일단 최전방에서 진료하는 거점병원 응급실에 환자가 몰리고 거점병원에 근무하는 응급의학과 의사들(저같은...--;;)의 희생아닌 '희생'으로 버틴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감기같은 신종플루에 응급의학과가 고생하는 이유겠지요. 좀 염치없기는 하지만 이번 '재난' 대응에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수고하고 있음을 국민들이나 정부에서나 좀 더 알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직 남은 기간 동안, 그리고 혹시 앞으로 반복될지 모르는 재난에서 특정과 의사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버티기 보다는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대응을 하기 위한 방안을  정부 당국에서 마련했으면 합니다.

이상....응급환자가 아닌 신종플루 관련환자들의 진료에 지친 응급의학과 의사가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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