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ticsMode 김아랑 대표

미국에 있는 대학병원에는 다학제 클리닉들이 많다. 22q 클리닉, 두개안면(craniofacial) 클리닉, 다운증후군 클리닉, 자폐 클리닉, 발달장애 클리닉, 엘러스 단로스 증후군 클리닉, 말판 증후군 클리닉, 치매 클리닉, 간질 클리닉, 리소좀축적병 클리닉, 대사질환 클리닉 등 이름만 대면 웬만한 클리닉들은 다 있다. 다학제 클리닉은 각 질환 혹은 증상에 따라 필요한 과의 뜻이 맞는 의료진들이 함께 운영해 나간다.

예전에 UCLA에서 일할 때 22q11.2 결실증후군이 있는 환자들을 위한 22q 클리닉을 운영한 적이 있다. 이 클리닉은 유전학 전문의, 유전상담사, 면역학 전문의, 심장의학과 전문의, 정신과 전문의로 구성되어 있다. 22q11.2 결실증후군은 염색체 22번 장완의 q11.2 부분에 약 3Mb 크기(더 작은 사이즈인 경우도 있음)의 미세 결실로 인해 생기는 질환으로, 선천성 심장기형, 구개 이상, 면역결핍, 특이한 얼굴 생김새, 학습장애 등의 증상이 나타나고, 성인기에는 정신질환의 확률도 높아진다. 증상은 사람마다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어떤 사람들은 평생 모르고 살다가 자녀가 진단을 받으면서 알게 되는 사람도 있다. 내가 이 클리닉에서 봤던 10세 남아의 엄마가 그런 케이스였다.

22q 클리닉이 있던 어느 날, 10세 남아와 부모님이 진료실에 앉아 있었다. 첫 인상은 아들과 엄마 모두 22q11.2 결실증후군이 있었고, 아빠는 2:8 가르마에 모든 게 규칙적이고 정갈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상담을 시작하면서 얘기를 들어보니 새로 다니게 된 소아과에서 아이의 과거병력 중 유전질환이 의심되는 소견이 있어 이런저런 검사를 하다가 마이크로어레이 검사(염색체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검사)를 했는데, 거기서 아이가 22q11.2 결실증후군이 있는 것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아이는 태어났을 때 팔로 사징후(Tetralogy of Fallot)와 구개열이 있어 수술을 받고 염색체 검사까지 했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해 그냥 우연히 생긴 선천성 기형이구나 생각하고 살았다고 한다. 소아과에서 부모님 검사도 해야 될 것 같다며 큰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아보라고 해서 우리 클리닉으로 내원하게 되었던 것이다. 더 놀라웠던 것은 가족력 조사에서 환아의 엄마가 태어났을 때 심장수술도 받았었고, ADHD도 있고, 엄마의 아버지께서 심장의학과 전문의이셨지만 그 누구도 22q11.2 결실증후군이 있을 것이라 의심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외형적인 모습만 봤을 때도 엄마는 이 질환이 있는 환자들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얼굴 생김새도 있었는데, 지금까지 40년 넘게 살면서 그 누구도 의심해보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하고 안타까웠다.

부모님의 검사 결과, 예상했던 대로 엄마에게서 22q11.2 결실 양성결과가 나왔다. 환아의 엄마는 긴장되면 ADHD 증상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했는데, 결과를 들으면서도 한 곳을 보고 있지 못하고 계속 불안해 보였고 두서없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환아의 아빠는 자기 와이프가 항상 정신없이 사는 듯 보였는데, 그 이유를 찾은 것 같다며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아침에 아이를 준비시켜 학교에 보내야 하는데, 아침밥을 차리다가도 갑자기 설거지를 하고 그동안 밀렸던 쓰레기를 갖다 버리는 등 우선순위 없이 정신없는 행동을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는 스쿨버스를 놓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함께 일했던 Sulagna Saitta, MD, PhD라는 의학유전학 전문의는 22q11.2 결실증후군이 있는 환자들을 오랜 시간 보고 연구에도 많이 참여했던 분이다. 이 분이 일했던 연구실은 인간게놈프로젝트 때 염색체 22번 지도 그리기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닥터 Saitta에 의하면, 22q11.2 결실증후군이 있는 사람들은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데 있어 특히 취약하다고 한다. 아침에 아이 등교 준비를 할 때, 일어나서 세수하고, 아침식사를 하고, 양치를 하고, 옷을 갈아 입히고, 책가방을 챙겨서 현관을 나서서 스쿨버스를 타러 가는 그 일련의 과정이 머리속에서 뒤죽박죽 엉켜서 그냥 되는대로 혹은 전혀 상관없는 일을 마구잡이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22q11.2 결실증후군이 있는 환자에게는 보이는 곳에 해야 할 일들을 순서대로 크게 적어서 하나씩 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남편에게 하면서 와이프를 어떻게 도와주면 되는지 얘기했더니, 그동안 답답했던 마음이 해소되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같은 ADHD라고 해도 한 사람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성격에 따라, 혹은 ADHD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유전질환의 특성에 따라 증상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배운 케이스였다. 환자를 진료하거나 상담할 때는 정형화된 데이터를 가지고 봐야하기 때문에 각 환자나 질환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을 간과하기가 쉽다. 하지만, 각 질환의 증상들이 갖는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는 것이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환아를 마지막으로 본 날, 환아의 아빠가 같이 계셨는데 그 정갈했던 2:8 가르마도 없어지고 뭔가 사람이 흐트러져 보이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안타깝게도 와이프와 이혼 수순을 밟고 있다고 했다. 부부 사이의 일을 다 알 수는 없지만, 환아의 아빠 입장에서는 하루아침에 두 명의 환자를 케어 해야 되는 사람이 된 것이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전질환으로 또 하나의 가정이 깨진 것을 보며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나름대로 각자 살고자 나아가는 것이기에 그들의 선택을 응원해드렸다.

김아랑 GeneticsMode 대표
김아랑 GeneticsMode 대표

김아랑 GeneticsMode 대표는 University of Cincinnati 대학원의 유전상담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2015년 미국 유전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졸업 후 Genetics Center, UCLA Pediatrics Genetics, Sema4 등 다양한 곳에서 산전진단 및 소아 및 성인 유전상담사로 근무했다. UCLA Pediatrics Genetics에서는 NIH 펀딩을 받는 대사질환 연구 코디네이터로도 일 했다. 현재는 미국에 GeneticsMode라는 온라인 유전상담 및 유전상담 컨설팅 회사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유전상담학을 가르치며 후배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한 사람도, 한 가정도 유전질환으로 외롭게 싸우지 않도록 함께 하는 따뜻한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해 네이버 카페 '유전질환의 모든 것'을 개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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