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병원 소아신경과 강훈철 교수에게 듣는 '결절성 경화증'
부작용 적고 효과 큰 치료제로 결절 크기↓…뇌수술도 주는 추세

몸 여기저기 양성종양 '결절'이 자라는 유전성 희귀난치질환이 있다. 바로 결절성 경화증이다. 뇌·눈·폐·심장·신장·피부·손발톱 등 인체 곳곳에 비정상적인 단백질 증식이 생기는 이 병은 엠토르(mTOR) 단백질 활성을 억제하는 하마틴, 튜베린 단백질 생성과 관련된 유전자 TSC1 또는 TSC2의 문제로 발생한다. 

6,000명~1만명 당 한 명에게 발생하는 결절성 경화증 환자를 국내에서 가장 많이 진료하는 의사는 세브란스병원 소아신경과 강훈철 교수다. 

뇌에 결절이 생긴 결절성 경화증 환자는 뇌전증 증세로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고, 이 때문에 뇌전증 강호 세브란스병원에 환자가 몰리면서 자연스럽게 강 교수가 결절성 경화증 명의가 됐다고. 강훈철 교수에게 결절성 경화증에 대한 모든 것을 들어봤다.

세브란스병원 소아신경과 강훈철 교수. 사진=김경원 기자
세브란스병원 소아신경과 강훈철 교수. 사진=김경원 기자

- 결절성 경화증은 유전자 TSC1 또는 TSC2의 이상으로 발생하는 유전질환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들 유전자에 이상이 없는 결절성 경화증 환자도 있다고 들었다. 

유전자검사를 했을 때, TSC1 유전자와 TSC2 유전자에 돌연변이나 손상이 없는 경우가 10% 이내 있다. 하지만 TSC1 유전자와 TSC2 유전자 이외에 엠토르(mTOR) 경로를 구성하는 유전자들이 몇 십 개 더 있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유전자들도 있다. 유전자 변이가 없는 게 아니다. 없는데 결절성 경화증이 나타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전적 결함을 발견하지 못한 경우에는 증상만으로 이 병을 진단하기도 한다. 

- 결절성 경화증은 다른 희귀난치질환과 같이 '진단 방랑'이 심한 병인가?

희귀난치질환은 진단되기까지 병원을 헤매는 경우가 많은 편이나, 결절성 경화증은 다른 희귀난치질환에 비하면 진단 방랑이 심한 편은 아니다. 

우선 심장에 결절이 생긴 경우, 태아 때 초음파검진 중 발견된다. 또 요즘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레지던트일 때 소아신경과에서 수련하면서 귀가 따갑게 듣는 얘기 중 하나가 ‘피부에 특정한 모양이나 색깔의 점이 있으면 소아신경과로 환자를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한 뒤 외배엽, 중배엽, 내배엽으로 나뉘는데, 피부와 신경은 외배엽에서 기원한다. 피부와 신경은 사촌이기 때문에 신경계에 이상이 있는 아이들은 피부에 뭔가 흔적을 남기는 경우가 많다. 특징적으로 결절성 경화증은 탈색된 듯한 흰색 점이 몸에 3개 이상 보인다. 크기가 아주 작을 수도 있고 클 수도 있고 몸 이곳저곳에 다 생길 수 있는 흰색 점이 있는 아이들을 진료 중 발견하면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큰 병원 소아신경과로 보낸다.

또 뇌에 결절이 생기면 뇌전증, 정신지체, 자폐 등 눈에 보이는 증상들이 나타난다. 때문에 다른 희귀질환에 비해 증상 발생 후 병원에서 진단받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

- 결절성 경화증은 어떤 식으로든 증상이 나타나나?

그렇지 않다. 평생 자신이 이 병이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또 이 병의 원인이 TSC1 또는 TSC2 유전자 이상이라고 해도 모든 환자에게 증세 정도가 다르다. 가령 TSC1이 큰 바구니라고 하면 손잡이 하나가 떨어진 미세한 이상일 때가 있고 바구니 한 면이 완전히 손상될 때가 있을 테니 증상이 똑같을 수 없다. 실제 결절성 경화증은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은 희귀유전질환이다.

흥미로운 점은 어떤 유전자 손상이냐에 따라 증세의 정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똑같은 유전자 손상이어도 TSC1 손상인 경우는 TSC2 손상보다 덜 심각하다. 그 이유는 TSC1 유전자는 자기가 고장난 걸로 끝내는데, TSC2 유전자는 TSC1 유전자를 걸고 물귀신 작전을 편다. 그래서 TSC2 유전자 손상이 더 심각한 증세로 나타난다. 

태아 땐 심장, 태어날 쯤 뇌에…10살쯤 급사 위험↑

- 병원에서 결절성 경화증 진단은 어떻게 하나?

뇌전증 증세로 올 때는 뇌파검사와 뇌 MRI검사를 기본으로 한다. 또 결절성 경화증이 의심되면 유전자검사를 하고, 다른 부위에 결절이 생겼는지 확인하기 위해 안저검사(눈알 속 구조물을 확인할 수 있는 검사)와 피부검사, 심장초음파검사, 신장초음파검사를 한다. 뇌전증 증세가 없을 때는 뇌파검사를 빼고 동일한 검사를 한다.  

- 결절성 경화증은 뇌, 신장, 심장, 눈, 폐 등에 여러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어떤 식으로 치료를 하나?

유전자 이상이 원인인 질환이지만 아직 유전자 지도를 바꾸는 치료는 없다. 현재는 이 병의 경과를 의료진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추가로 나빠지는 부분을 예방하는 치료를 한다. 이 병은 세포가 처한 환경의 차이에 의해 각 신체 부위마다 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시기 별로 보면 태아 때 심장 결절이 생기는데, 태어나 특별한 치료 없이 대부분 점점 작아져서 10살쯤이면 조그만 알 같은 형태로 있으나마나한 존재가 된다. 심장이라는 환경이 그런 것 같다. 

또 태어날 때쯤 되면 뇌에 결절이 잘 생기고 그 다음에 얼굴에, 그 다음에 신장에, 그 다음에 폐에 잘 생긴다. 또 신장에 결절이 생기면 그 다음에 폐에 결절이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절성 경화증으로 급사할 수도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뇌에 뇌실막밑 거대세포 성상세포종(SEGA·세가)이나 신장에 혈관근지방종이 생기는 경우다. 세가나 신장의 혈관근지방종은 10세쯤 됐을 때 확 커지는 경향이 있다. 세가가 확 커지면 뇌압이 갑자기 상승하면서 사망할 수 있다.

또 혈관 덩어리가 모인 신장에 생긴 혈관근지방종은 누가 툭 치거나 해서 터지면 칼에 찔려 죽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을 유발한다.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제거하는 치료를 한다. 약물 치료로 결절 크기를 작게 만들거나, 색전술을 통해 혈관을 막거나, 수술로 제거한다. 과거에는 수술을 많이 했는데, 요즘은 부작용이 적고 효과가 큰 3세대 치료제(에베로리무스)까지 나와 수술이 주는 추세다. 

또 뇌의 결절로 국소뇌전증이나 영아연축이 나타나면 비가바트린이라는 약을 쓰는데, 이 약은 30종의 뇌전증 중 결절성 경화증으로 인한 뇌전증 증세에 특히 효과적이다. 이 병의 치료 목표 IQ 점수는 70으로 하는데, 약을 써도 80으로 만들 방법은 없다. 그건 신의 영역이다. 하지만 치료를 하지 않으면 40이 된다.

요즘엔 에베로리무스를 뇌전증이 있을 때도 쓸 수 있게 하려고 노력 중이다. 이 약이 여러 부위의 결절을 줄이는데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이미 해외에서 임상을 통해 뇌전증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는 데이터가 나와 있다. 다만 에베로리무스는 면역억제제여서 감기도 잘 걸리고 구내염이 잘 생기는 등의 부작용이 있다.

강훈철 교수. 사진=김경원 기자
강훈철 교수. 사진=김경원 기자

- 병원에서 결절성 경화증 진단 뒤 환자는 어떤 방식으로 진료와 검사를 계속 받게 되나?

아동과 성인이 조금 다르다. 이 병은 스무 살이 넘으면 몸 안에서 결절을 그만 만들기 때문이다. 그냥 생길 거 다 생겼고 이제 끝났다고 보면 된다. 다만 성인의 경우 남성과 여성이 다른데,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때문에 여성의 경우는 폐경이 될 때까지 폐에 결절이 생길 수 있다.

특별한 증상이 없는 아동은 1~3년에 한 번 진료와 함께 검사를 하면 된다. 증상이 있을 때는 진료와 검사 간격이 보다 촘촘해진다. 대표적으로 뇌전증이 있고 약을 쓰면 자주 본다. 두세 달에 한 번일 수도 있고, 증상이 잦으면 일주일 만에 볼 수도 있다.

특별한 증상이 없는 성인은 1~3년 간격으로, 아동 때보다 더 간격을 둬 진료하고 검사도 어릴 때와 달리 심장초음파검사와 피부검사는 빼고 진행한다. 다만 여성은 폐 CT검사를 추가로 받아야 한다. 

급격한 두통·콜라색 소변, '응급 사인'

- 결절성 경화증으로 급사할 수 있는 세가와 신장의 혈관근지방종을 빠르게 알아차릴 수 있는 방법이 있나?

세가의 경우에는 뇌압이 상승한다. 때문에 급격한 두통, 구토 등 뇌압이 올라가는 사인이 나타나면 바로 응급실에 가야 한다. 또 신장의 혈관근지방종은 코카콜라 색깔의 혈뇨 증세가 가장 먼저 나타난다. 소변이 갑자기 코카콜라 색으로 나오면 빨리 병원으로 갈 필요가 있다. 

- 집에서 이 질환을 특별 관리해야 할 때가 있나?

뇌전증이 있는 경우 약과 함께 케톤식을 하는데, 케톤이 형성되면 항경련제보다 강한 항경련 효과를 볼 수 있는 데다 인지기능도 좋아질 수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단백질과 탄수화물을 최소화하면서 거의 지방을 먹는 엉터리 식단이 케톤식이기 때문에 부작용이 많다. 

가장 흔한 부작용은 구토와 변비다. 이런 증상들은 케톤식에 적응하면 사라진다. 케톤식의 가장 심각한 부작용은 기름이 식도가 아닌 폐로 흘러 들어가 흡인성 폐렴이 생기고 이것이 패혈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또 케톤식을 6개월 정도 하면 신장에 돌이 잘 생긴다. 오랫동안 이 식단을 하면 성장에도 문제가 생긴다. 때문에 병원에서 잘 관리를 받을 필요가 있고, 세브란스병원은 이런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는 노하우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 결절성 경화증을 앓는 환우와 가족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이 병도 유전자 손상이 심하면 아무리 약을 써도 잘 안 듣는 경우들이 있다. 그래도 뇌전증 약을 써서 12번 발작할 것을 10번으로 줄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결절성 경화증 환우와 가족에게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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