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역에선 나름 규모있는 병원이다보니 이곳 저곳에서 많은 환자들이 전원되어 오기도, 또 때론 연고지나 F/U(추적검사) 등의 이유로 환자를
전원보내기도 한다. 이런 주고 받음의 미학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의사 소견서이다. 이런 소견서에는 환자의 프로필부터,
과거병력, 주소, 의학적 문제 등 여러가지 정보가 담겨있기도 하지만, 때론 진단명만 달랑 하나 써있는 경우도 있다.

 잘 작성된
소견서 한장은 전원된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가 빠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지만, 진단명 하나만 딸랑 적힌 소견서는 원활한 진료를
어렵게 만들며 의사를 당혹스럽게 한다. 일례로 얼마전 요양병원에서 다른 환자와 다투다 발생한 안면부 열상을 주소로 한 50대 남성 환자가
전원되어 왔다. 요양병원에서 보내온 소견서에는 만번대 의사면허 번호와 함께 상악부 골절이 의심된다는 소견만 적혀 있었다.

 내원
당시 환자는 두통 및 둔부통증을 호소했기에 뇌출혈이나 골절 등을 배제하기 위해서 뇌CT 및 단순 방사선 촬영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환자와
동행했던 기사에게 추가로 검사할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그 기사는 CT 촬영을 동의할 수 있지만 단순 방사선 촬영은 요양병원에서 전부 확인했다며
촬영을 거절했다. 소견서에 해당 부위에 대한 환자의 증상 호소 및 이상 소견 등이 적혀있지 않았기에 특별한 문제가 없을거라 생각해서 보호자의
촬영 거절 의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상기 이미지는 내용과 무관 / 출처


 CT 촬영을 마치고 소견서의 문제들을 확인한 뒤, 환자는 신경외과로 입원 결정이 났고,
아침 7시 병동으로 올라갈 때까지 응급실에 누워서 기다렸다. 그렇게 3시간쯤 지났을까 환의를 갈아 입히려는데 환자가 왼쪽 고관절 부위에 동통을
호소했고 왠지 모를 찝찝한 기분에 보호자들에게 사진 촬영을 재차 요구했다. 환자의 컴플레인 탓에 보호자들도 마지못해 사진 촬영을 수락하였고,
몇분뒤 사진 앞에서 나는 온몸을 감싸도는 충격에 휩싸일 수 밖에 없었다.

 사진 촬영 결과 대퇴부 전자간 골절이 의심되었고, 그
즉시 정형외과에 노티하여 병동에 올라가기 전에 진료를 볼 수 있도록 했다. 분명 전원전 단순 방사선 사진을 촬영하고 결과를 확인했으며,
소견서에는 해당 부위의 문제에 대한 언급이 없었기에 나 역시도 큰 문제 없을거라 생각하고 가벼이 여긴 것이 오산이었다. 이후 해당 병원에
전화하여 담당 의사 선생님에게 문의했고, 소견서 상에서 그 문제가 누락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환자상태 및 검사 결과가
정확히 명기되지 않았던 소견서만 믿고 진료를 했던 내 불찰 때문에 환자의 문제를 놓칠 수도 있었던 것이었다. 가끔 가벼이 혹은 단순하게 열거된
소견서 때문에 원활한 진료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초진 환자(내원 기록이 전무한 환자)가 중증 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라면
의사의 세밀한 소견서는 진료하는데 너무나 중요한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암', '*출혈' 등 단순히 진단명만 열거되어 있는 경우 막막할
때가 많다. 만성질환이나 중증환자라면 현재 치료 상황, 수술여부(술식), 진단시기 및 stage, 전이 여부 및 합병증 등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환자 본인들은 모르는 경우가 많기에 자세한 사항이 기록된 소견서가 없다면 진료가 더디어지게 되고 그에 따라 치료가 늦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급성 질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소견서에 딸랑 '뇌출혈'이라고 적혀있는 경우보다 내원 당시 환자의 의식상태,
운동력 및 기타 신경학적인 검사 소견이 모두 적혀있는 소견서를 갖고 전원오는 경우가 환자 치료에 있어 양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훨씬더 나은
퀄러티를 제공할 수 있다. 시간을 아낄 수 있을뿐만 아니라 내원 당시 환자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적합한 치료를 제때 제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도 인천의 한 병원에서 딸랑 '췌장암'이라고만 적혀있는 소견서를 들고 연고지 관계로 전원된 한 할아버지 역시
탐정놀이에 시간을 허비하느라 치료가 전반적으로 더디질 수 밖에 없었다. 소견서가 조금만 더 자세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을 뒤로 남긴채 힘든
탐정놀이 후 검사 결과를 수합하여 추정 진단명을 잡고 준비를 마친 후, 내과 노티까지 남은 새벽의 시간을 커피 한잔의 여유와 함께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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