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대학에 들어가 처음에 폭탄주를 접했을 때엔 심한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맥주를 급하게 먹었을 때의 더부룩함과 양주나 소주의 독함이 어울어져, 술로 사람을 괴롭히기 위해 만든 것이 폭탄주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느때 부터인지 술자리에서 폭탄주 한잔이 빠지면 허전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특히 처음 만나거나 친해져야하는 부서간 회식에서 단체로 마시는 폭탄주는 딱딱한 분위기를 일순간에 깨주는 마법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과음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부정적이란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식자리에 술이 빠지거나 사업이 성사되기 전에 술을 마시는 것은 여전합니다. 그것도 가볍게 마시면 허전하고 '찐하게'한잔 해야 그 자리가 의미 있었던 것처럼 느껴집니다. 왜 그럴까요?



폭탄주를 마실 때에는 조제라는 과정을 거처 대부분 한꺼번에 만들고 다 함께 마시게 됩니다. 사회가 실은 평등하지 않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우리는 사소한 것에 병적으로 평등을 고집하기도 하는데, 폭탄주가 이런 욕구를 채워주는 것 같습니다. 잘못된 평등이겠고 거의 폭력에 가깝겠지만 누구나 '다함께 먹는 의식'에 동참시키는 폭탄주 분배 문화 속에서는 평소 술을 잘 안마시고 회식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들도 빠지기는 어렵고 쩔쩔 매며 마시는 모습에 보는 사람들은 동질감을 느낍니다.

이렇게 한잔 두잔 하다보면 함께한 사람들과 급속도로 친해지는 것 같습니다. 원래는 오랜 시간 함께 고생하면서 친밀함을 느껴야하는데 현대 사회는 그럴 기회가 별로 없다보니 회식을 그 기회로 삼나 봅니다. 사업하는 사람들도 거래처와 친밀함을 다지기 위해 술을 마십니다. 사업하는 분들이 '사업상 술을 마신다'는 변명에는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겠죠. 하지만 이 친밀감은 일시적인 착각에 가깝습니다.

폭탄주가 만들어주는 빠른 취기와 집단 행동 속 동질감, 알콜로 인한 충동억제능력 상실이 함께 한 사람들과 마치 어렸을 때 부터 장난치며 동고동락해온 친구인 것 같은 감정을 일시적으로 만들어주지만 다음 날이 되면 어색함과 숙취만 남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평소 개인적 친밀감을 만들 마음의 여유가 없거나 없던 친밀감을 만들기 위해 폭탄주를 마시나 봅니다. 평등하게 돌아가는 술잔 속에 친밀감을 확인해야할 연말 회식들이 많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젠 폭탄주 대신에 평소 자주 연락하고 지내자고 이야기를 건내보는 것은 어떨까요? 차라리 1년에 한번 만나 폭탄주로 취하는 것이 더 편리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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