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의 과정이나 의대생들의 이미지를 상상해보면 카데바를 대상으로 마스크를 쓴 채 해부에 열심히 임하고 있는 모습을 떠올릴 때가 많다. 이러한 경험은 의학과 연관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쉽게 접할 수 없다는 점에서 궁금증과 신기함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본과에 처음 올라가서 접하게 되는 학문이 바로 해부학 카데바 실습인데, 의학 교육의 관점에서 이는 의료인이 되기 위한 상징적인 통과 의례의 성격을 가진다.

 카데바 실습은 의학 교육의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과정임과 동시에 의학에 입문하려는 학생들에게는 충격적인 경험이다. 화이트 세레머니 후 해부학 실습실에 들어서고 천이 덮인 카데바의 얼굴을 처음 확인하는 순간에는 누구나 숙연해진다. 하지만 그 숙연함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익숙함으로 변해간다. 꿈자리에 나올 것만 같았던 사체의 모습도, 코를 찡그리던 포르말린 냄새도, 끔찍한 땡시의 공포도 모두 눈녹듯 사르르 녹아내린다. 이쯤되면 주저하던 학생들도 모두 실습서를 펴고 메스를 잡고 하나하나씩 카데바의 인체 구조물을 파헤쳐 나간다. 이것 저것 만져보고 느끼며 감각을 익힌다. 머릿 속에서만 떠도는 지식이 아니라 몸으로 직접 체득하여 얻는 지식이다.

 하지만 이는 무척이나 힘든 과정의 연속이다. 10여명이 한 조를 이루어 두 학기 동안 진행되는 해부학실습은 단순 해부가 아닌 미세근육과 신경을 찾아보고 이러한 조직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까지를 공부해 조원끼리 공유하고 발표를 해야 하는 힘든 수업이 두달간 계속된다. 이 과정은 결코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한번 실습실에 들어가면 사체와 싸우며 밤을 꼬박 새우는 날도 더러있다. 특히, 비가 오는 야심한 밤이면 아무리 강심장을 가진 사람도 머리가 주뼛주뼛해질 수 밖에 없다.



[보도된 사진들]


 헌데 금번 보건대학 학생들의 카데바 장난을 포함하여 수많은 보건의료계열 학생들에게 의학 교육에서 이토록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카데바가 단순히 지식을 제공하는 구조물로만 여겨지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 적어도 그들은 해부의 주체자로서 지식을 주체적으로 흡수함과 동시에 카데바에 대해 죽음을 마무리 짓거나 재차 죽음을 부여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카데바를 앞에두고 그 누구보다도 경건하고 엄숙한 자세로 진중하게 해부에 임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처음보는 카데바와 신체 장기들의 모습에 호기심을 느끼고 사진으로라도 남기고 싶은 치기어린 마음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헌데 카데바를 앞에 두고 장난질이라니, 감히 상상조차 못할 개념없는 행동이 아닌가, 이는 사체를 기증한 사람이나 가족들에 대한 명맥한 모욕행위며 예비 보건의료인으로서 자질 부족이다. 현장에서 학생들을 통솔해야 하는 조교나 교수는 도대체 그 시간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할 뿐이다.

이로 인해 각종 포탈의 메인에는 '대학생 카데바 논란 일파만파, '해부실습' 충격'이라는 이름으로 기사가 쏟아지고 있고, 사건 당사자들은 개인 신상을 포함한 사진, 미니홈피 등의 정보가 공개됨은 물론 네티즌들의 수없는 비난의 뭇매를 맞고 있다. 또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죄없는 보건의료계열 종사자들까지 덩달아 비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카데바는 생물학적으로는 죽은 상태지만 적어도 해부 실습실에서 만큼은 살아있는 존재로 여길 필요가 있다. 카데바는 어찌보면 죽음과 삶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보건의료 계통에서 일하게 될 학생들은 실습 전에 카데바를 산 사람과 전혀 연관이 없는 사물이 아니고 한 때는 우리와 동일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녔던 존재로서 ‘산 사람’의 연장선에서 한번쯤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더불어 학생들의 철없는 장난으로 한 생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현장에서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 의료인들을 향한 국민들의 불신이 커지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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