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실 그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은 2008년 11월에 (사)수단어린이장학회 이사로 있는 지인이 병원으로 찾아와서 알게 되었다. 대장암이 간까지 퍼져 수술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 뒤로 그의 쾌유를 비는 기도는 수단어린이장학회 다음 까페 회원뿐만 아니라 귀천 때까지 나의기도 제목이었다. 항암치료를 받으며, 요양을 하다가 돌아가기 얼마 전 상태가 좋지 않다는 연락을 받아 조마조마했었다. 경기도에서 요양 중일 때 지인이 함께 문병 가자고 했으나 도저히 짬이 나질 않았다. 그때 휴가라도 내고 가 볼 걸하고 후회스러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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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이 신부는 남수단의 톤즈(Tonj)라는 도시로 파견되었다. 아프리카 수단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자. 수단은 23년째 내전중이고, 북쪽의 아랍계 정권이 수단의 2/3를 차지하고 있다. 수단의 원주민들은 제 고향에서 쫓겨나 척박한 땅인 남쪽으로 이주해야 했다. 척박한 남쪽 땅에 석유가 매장된 것을 알게 된 것이 비극의 씨앗인지도 모른다. 북수단은 원주민을 남수단에서마저 내쫓으려 하자, 북쪽의 아랍계 정권에 맞서 남쪽 주민들이 대항하게 되었고 그들이 무장을 하여 ‘반군’이 됩니다. 미국은 남수단에 매장돼 있는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 북수단 아랍계 정권을 지원했지만 남수단 반군의 저항이 만만치 않아 지금까지 내전이 장기화된 것이죠. 북수단은 남수단 사람들을 굶어 죽게 하기 위해 남부 지역을 완전히 봉쇄했기 때문에, 남쪽 사람들은 북쪽에서 식품이나 생필품을 하나도 들여올 수 없고, 모든 물자는 남쪽으로 2800km 떨어진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육로로만 들여옵니다. 내전은 장기화되고 세계 여론도 나빠지자, 미국은 최근 남북 수단의 평화회담을 중재하겠다고 나섰지요. 병 주고 약 주는 셈이지요. 내전은 3년째 소강상태이고, 북수단 정권은 평화회담을 하면서도 계속 살육을 저지르고 있지요. 지금까지 3300만의 인구 가운데 200만 여명의 남수단 원주민이 죽었고, 300만 여명이 제 고향에서 쫓겨났고, 20여만 명이 국경을 넘어 유랑민이 된 곳이 바로 남수단입니다.
톤 즈에서 이 신부는 쫄리 신부라 부릅니다. 세례명 요한(John)에 성 이(Lee)씨를 합쳐 그들의 발음으로 부른 애칭입니다. 폐허가 된 학교 건물을 다시 쌓아 학생들을 가르치고, 브라스밴드를 만들어 음악을 통해 전쟁과 가난으로 상처받은 어린이들을 치유해 나갔다. 45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 속에서 원주민들은 잘 해야 하루에 수수 죽 1끼로 끼니를 때운다는 수단에서 사제의 역할보다는 의사로서 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내전으로 불안한 나날 가운데 진료소를 운영하면서 날마다 방문하는 100여명의 환자들과 결핵, 나병 등 장기 입원환자를 돌보고, 지속적인 예방접종 사업과 일주일에 한 번씩 여러 오지마을을 찾아다니며 이동진료를 8년 동안 하다가 몹쓸 병에 걸린 것입니다. 그가 찾아가는 날은 마을의 모든 주민이 모이는 날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픈 사람들만 모이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정이 그리워 모이는 것이지요. 아이들이 가장 많이 모이고, 신부님을 가장 좋아했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신부님이 오시면 ‘쫄리, 쫄리’라고 연호하며 몰려들었습니다.
쫄리 신부가 흙으로 돌아간 날이 1월 14일이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파 송도바닷가를 걸어 다니면서 쫄리 신부의 안식을 기원했습니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자주 다녔던 송도바다를 보며 안타까운 그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남수단 톤즈에 대한 책 두 권을 떠올렸습니다. <아프리카의 햇살은 아직도 슬프다>(이재현, 성바오로, 2005)와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이태석, 생활성서사, 2009)입니다. 의술로, 음악으로 사랑을 나누는 선교사제 쫄리 신부의 아프리카 이야기란 부제가 달린 신부의 책에 보면, 그가 자주 받는 질문은 두 가지였다고 한다.
- 꼭 신부가 아니더라도 의술로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데 왜 꼭 신부가 될 결심을 하셨나요?
- 한국에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일들이 많은데 왜 그 먼 아프리카까지 가실 생각을 하셨습니까?
쫄리 신부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하면서도 아름다운 향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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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잘것없는 형제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해 준 것이다.’는 예수님의 말씀도 그랬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사는 마을로 들어가 의사로서 정신적인 지도자로서 평생을 바친 슈바이처 박사도 그랬다. 그리고 어릴 적 집 근처에 있었던 ‘소년의 집’에서 가난한 고아들을 보살피고 몸과 마음을 씻겨주던 소 알로이시오 신부님과 그곳 마리아수녀님들의 헌신적인 삶의 모습도 그랬으며, 일찍이 홀로 되어 덜렁 남겨진 10남매의 교육과 뒷바라지를 위해 눈물은 뒤로한 채 평생을 희생하신 어머님의 고귀한 삶도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한 아름다운 향기였다.
톤즈에서는 월 5,000원이면 한 아이의 교육비와 학용품비, 간식비까지 해결되고 연간 교육비는 35,000원(초, 중학생)~ 50,000원(고등학생) 정도면 충분하다고 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 1%만 나눌 수 있다면, 남수단의 어린이들이 배고픔을 잊고 미래를 꿈 꿀 수 있는 교육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쫄리 신부는 언제나 나눔을 호소했다.
피부색은 다르지만 아프리카 형제자매들의 삶의 고통을 아쉬워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를 해주며, 작은 것이나마 그들과 나누고 싶어 하는 좋은 사람들, 행복의 원천이 무엇인지 아는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모든 인간을 철저하게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발견하기도 하고, 때로는 새로운 ‘하늘나라 수학’을 배우기도 한다. 가진 것 하나를 열로 나누면 우리가 가진 것이 십 분의 일로 줄어드는 속세의 수학과는 달리 가진 것 하나를 열로 나누었기에 그것이 ‘천’이나 ‘난’으로 부푼다는 하늘나라의 참된 수학, 끊임없는 나눔만이 행복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행복 정석을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배우게 된다.
이천년 전 예수가 병들고 굶주린 사람들을 보고 느꼈던 연민을 톤즈에서 쫄리 신부는 느꼈을 겁니다.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부모들을 보며, 무기력하기 짝이 없었던 십자가 위의 예수를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저들이 왜 저토록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는 건지. 영양 상태만 좋으면 쉽게 이길 수 있는 말라리아나 홍역으로 죽어가고, 배앓이로 죽고, 지뢰를 밟아 죽고, 총 맞아 비명횡사합니다. 아이들이 열병에 걸려 신음하면 부모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마당에 물을 뿌려놓고 열이 내리길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나환자를 돌보며 언제나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겸손한 삶이 우리에게 행복을 준다고 말합니다.
“나환자 병동에 레지나라는 환자가 있습니다. 손가락 발가락이 다 떨어져 나간 말기환자입니다. 가진 거라곤 저주받은 병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항상 행복합니다. 작은 것에 고마워하고, 항상 즐겁게 삽니다. 다른 환자들과 잘 어울리고, 그들을 보살피려 합니다. 레지나에게서 나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배웁니다. 내가 그들에게 해주는 것보다 그들이 내게 돌려주는 행복과 가르침이 더 큽니다.”
유머 감각도 뛰어났던 쫄리 신부. 지난 연말 한미자랑스런의사상 수상 뒤에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딱딱한 분위기가 싫어 우스개 이야기를 하겠다며 ‘윈도우 아빠가 누구냐?’ 하고 물었대요. 넌센스 질문에 답을 생각 못하자, ‘탐색기(탐의 새끼)’라고 말했다고 들었어요. 큰 상금은 톤즈의 아이들을 위해 쓰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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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메일을 열어보니 쫄리 신부의 형님 신부(이태영 신부)가 보낸 메일이 있었다. 메일을 읽으며 또 눈물을 흘렸다.
열여섯 한 소년이 십자가 앞에 꿇어 기도를 드렸습니다 :
"당신은 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들, 총부리 앞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이들을 보고만 계시고, 세상엔 죄인들과 닫힌 감옥이 있어야만 하고 인간은 고통 속에서 번민해야 하느냐고...."
기도 중에 소년은 주님의 뜻을 헤아립니다 :
"사랑, 사랑, 사랑, 오직 서로 사랑하라고"
소년은 다짐을 하였습니다 :
"난 영원히 기도하리라, 세계평화 위해, 난 사랑하리라. 내 모든 것 바쳐"
이 기도를 마음 속 깊이 새겼던 소년은 성인이 되어 의사가 되고, 수도자가 되고, 신부가 되어 수단의 톤즈로 가서 이 기도를 살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이 기도에 동참하기 시작했지요. 전쟁으로 모든 것이 폐허가 된 그 땅에 사랑과 꿈과 웃음과 평화가 조금씩 피어나는 것을 보고 소년은 노래하였습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슈쿠란 바바)"
사랑의 다짐으로부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 소년의 삶은 분명 그 누군가를 닮은 삶이었습니다. 이천년 전 팔레스티나 땅에서 서른셋의 짧은 삶이었지만 자신을 모두 인간과 하느님께 바치는 사랑의 삶을 살아 온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가르쳐 주었던 예수, 그 분의 삶과 닮아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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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 실과 바늘을 들고 나가 한 걸인의 바지를 꿰매주었던 이태석 신부님.
어린 시절부터 신부가 되기를 바랐지만, 성직자와 수도자로 형과 누나를 보내며 어머니가 마음 아파하는 모습이 마음에 걸려 의대에 진학했다던 쫄리 신부님.
암과 투병 중에도 늘 남수단 톤즈의 환자들과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셨을 요한 신부님.
당신이 8년 동안 열정을 쏟아 부어 만든 톤즈의 희망과 사랑과 평화의 씨앗이 열매를 잘 맺도록 남은 우리가 물도 주고 가꿀게요. 당신은 진정의 부활의 삶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가셨습니다. 당신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아무 걱정 마시고 하느님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플라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