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영의 봄날 관련 한의학에 대해 독자 반론(http://www.koreahealthlog.com/1567)에 또 다른 반론이 있어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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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다가 몇 가지 짚고 넘어가고픈 점이 있어 글 남깁니다.

1) 한방이 중세시대보다 훨씬 앞선 의학이었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못하겠군요. 설사 앞서 있었다고 해도 현재에 있어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도 되는 문제지만, 이런 '이미지'가 현실을 바라보는데 오히려 장애물이 될 수도 있으니 짚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중세의 4체액설과 한방의 음양론이 학문적 위상에 있어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요. 학문의 질은 제쳐놓고라도, 실제 환자에게 어떤 치료를 했는지 보면 당시 중세 유럽이나 초원지대, 동아시아를 막론하고 신기하게도 비슷합니다. 사혈 요법은 어디에서나 행해져왔고, 거리 문제가 해결된 약제는 서로 교역도 했어요. 그 시대의 교역 네트워크는 현대인의 생각보다 더 촘촘하고 빨랐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당연히 의료 기술의 전파도 있었을 겁니다. 단지, 그 기술을 바라보는 지역의 문화적 관점 차이에 의해 재해석되면서 쓰임새가 달라지거나 열화되었을 따름이죠. 따라서, 당시 의학 수준의 우열을 따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훨씬' 같은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오히려 설득력을 떨어뜨리는 장식일 뿐이죠.

게다가 중세 의학만 가지고 비교하는 것도 마뜩찮은데, 왜냐하면 이런 비교는 현대 의학을 '서양의학'으로 한정시켜놓고 싶은 한방의 논법 바로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의학은 서양 뿐 아니라 모든 지역의 의학을 집대성하고 통합적으로 발전시킨 것이기 때문에, 중세 시대 서양의 의술을 아무리 언급해봤자 현대의 의학과는 하등 상관 없는 일입니다. 현대 의학의 눈으로 보면, 한방과 마찬가지로 당시 서양 의학 역시 비판의 대상이거든요. 물론 기천년간 기저 사상이 현실에서 패퇴를 거듭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인체에는 들어맞는다고 주장하는 한방의 음양론이 가장 큰 비판의 대상임은 자명하지만요.


2) 현대 의학에서 사용하는 약을 인위적이라고 보는 건 평소 자기가 가진 이미지의 투영일 뿐, 한약에 대한 근본적 차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가공 기계에서 약이 쏟아져나오는 산업화된 양산 시스템이 그다지 좋게 보이지 않을 수는 있어요. 저도 초콜릿이나 아이스크림이 공장에서 쏟아지는 장면을 보면 꼭 나치당 사열식을 보는 기분이니까요.

하지만, 이런 제작 시스템이 한방약제 제작 시스템과 무엇이 얼마나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당장 보건소에 가서 한방 진료를 받아보시면, 한의사가 약을 달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달여진 약이나 빚어진 환약을 그대로 건네주는 경우를 보실 겁니다. 그런 한약들, 한 사람이 앉아서 정성스레 달인 것이 아니라 공장제조를 거친 한약입니다. 충분히 위화감이 들지 않나요? 요는 기초 재료와 제조원리가 어떤 것이냐지, 제조 과정이 인위적이냐, 수익성을 따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제조에 적용되는 과학지식과 공학기술이 인위적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인위적으로 제조되는 독성물질의 위험성을 제약 과정에 덧씌울 이유도 없고, 명분도 없습니다. 인위적이기 때문에 나쁘다는 이야기는 성급한 일반화지요.

덧붙이자면, 한방은 과학의 옷을 입고 싶은 욕망을 숨긴 적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주세요. 그들은 수익성을 따지고 싶지 않아서 따지지 않는 것이 아니고, 인위적이지 않고 싶어서 인위적이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저 그런 방식을 적용할 경우 자기들의 기저 사상과 충돌하기 때문에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또한 투자가 안 되니까 더 이상의 연구를 하지 못하는 것 뿐이구요.

물론 이 쯤에서 '투자가 안 되는 건 주류 의학의 방해때문이다' 같은 반론이 꼭 나오는데, 그건 한방쪽 생각일 뿐이고, 실상은 투자한 만큼 효용을 뽑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한방 약제라고 해도 투자해서 효용이 날 것 같으면 다 투자하고, 실제로 상품화 합니다. 말라리아 약제인 아르테미시닌이나 항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약제인 타미플루가 한방 약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어진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이런 걸 한방에서 주도적으로 못하는 이유가 과연 한국 의사들의 파워가 무지 세서일까요? 글쎄요. 너무 한국 의사들을 과대평가하는 듯 하군요.(=_=)


3) '방법은 하나가 아니야!' 라는 말은 새겨들을 만 합니다. 자기 생각이 틀릴수도 있다는 사고방식은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하죠. 그렇기 때문에 과학, 그리고 그 조카딸인 의학은 회의적 사고를 중시합니다. 그런데 다른 방법을 생각한 결과가 '한방'이라면, 그 회의적 사고에 의해 일단 사고 과정에 오류는 없었는지부터 검사해보겠습니다. 회의적 사고를 적용해볼 때 가장 먼저 걸러지는 것이 바로 한방의 음양론이거든요. 기초 이론부터가 증명을 거부하고 따라서 반증이 불가능한데, 그런 사상을 상대주의적 관점의 수혜자로 만들어줄 수는 없습니다.

물론 의학에는 과학적 요소 뿐만 아니라 환자 개개인을 상대하는 art의 요소가 있기 때문에, 환자가 원한다면 한방 진료를 못받게 할 것도 없습니다. 저도 그렇게 하고 있구요. 하지만, 그런 개입이 환자에게 해가 된다면, 그것을 막아야할 의무가 의사에게는 있다는 것도 이해해주셔야 합니다. 때문에 검증에 엄격하고 냉정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의학이 한방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이런 검증을 통과하지도 않았으면서 새로운 시술을 환자에게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고, 주류 의학에 대해 근거없는 적개심과 의혹을 불러일으키며 질병 치료에 대한 잘못된 조언을 하기 때문입니다. (외국에서는 함부로 의학적 처치나 시술을 그만두고 자기 시술을 받으라고 했을 경우 그 대체요법사는 처벌받습니다. 검증된 치료를 포기시키고 검증되지 않은 치료를 받게한 책임을 무는 것이죠.)

이를 두고 의학이 편협하다 말하는 것은, 탓해야 할 포인트가 좀 어긋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의학이 편협하다고 말하기 전에, 한방에서 먼저 자기들의 성과를 터놓고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하겠지요. 그래야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다른 관점'에 끼일 자격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어떤 현상을 해석하는 주류의학적 방법도 한 두가지가 아니어서 매일 싸우는 판인데, 거기에 또 다른 관점을 끼워넣으려면 이 쪽도 힘들거든요. 이런 상황인데도 편협하다는 단견적 비판은, 의학은 매우 많은 관점을 학문 안에서 동시에 다루고 있는 학문이라는 점을 간과하는 처사입니다.


4) 여러 논쟁을 지켜보고 있으면, 한방은 결과를 보지만 의학은 과정을 보는 것 같습니다. 어떤 개입을 통해 환자에게 이벤트가 발생하면, 한방은 '효과 있네? 그러니까 쓰자'로 끝이지만 의학은 '자, 개입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는지 살펴볼까?' 라는 태클을 걸 준비를 할 수 있고, 실제로 한다는거죠. '수쳔년간의 임상실험'이나 '매일 찾아오는 환자들'에 의해 검증받았다는 이야기는 이런 관점의 차이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환자 개개인에 대한 이벤트를 수천개 모아봤자 학문 발전에 있어서는 도움이 안 되요. 가장 기초적인 변인 통제부터가 안 되어있다면 말이죠. 예로 든 아토피 같은 경우도, 한약 및 침술과 함께 같이 권하는 생활습관 변화 및 회피 요법이 효과가 있는 건지, 한방적 개입 단독으로 효과가 있는 건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한방 요법을 이용한 환자들이 전부 아토피가 낫는 것도 아니고, 의학적 개입을 받은 환자들이 모두 아토피 치료를 실패하는 것도 아닙니다. 한방의 논법을 빌려서 이야기하자면, 효과가 없는 치료였다면 아토피나 알러지성 비염을 치료하는 의사들이 아직까지 진료하고 있겠습니까? 그러니 의학에 대한 비판은 삼가야...하나요?

아니죠. 이런 말은 무의미한 말입니다. 치료 성적은 중요한 이슈지만, 어디까지나 평가의 일부일 뿐이죠. 알러지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낫는 경우도 있고, 나이가 들어 몸이 성숙해지면 사라지기도 합니다. 나아진 것처럼 보이다가 다시 재발하기도 하죠. 이런 질병의 성상과 치료 성적, 변인 통제 등의 요소가 어우러져야 비로소 평가가 가능한 겁니다. 한방에서 주로 다루는 질병들을 잘 살펴보면, 아토피같이 만성적이어서 치료에 어려움이 많고 잘 모르는 질병이 많습니다. 비유하자면 우주에 뭐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니까 신이나 외계인 이야기가 나오는 것처럼, 아직 해결책이 나오지 않은 질병이라 이런 저런 치료법이 난립하고 있는거죠. 그나마 이 분야에서도 한방은 절대적인 대안이 아니라 많은 대안의 한 가지일 뿐입니다. '모른다'는 점을 파고들어 활로를 모색하려는 대체요법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전세계의 전통의학만 꼽아도 열 손가락이 모자랍니다. (인디언 주술의학에서 대표적 항암제인 탁솔이 발견되었으니, 암을 치료한다는 대체의학중에서 인디언 의학이 짱일까요? 설마요.)


5) '한방에 현대의료기기를 허하라'. 꼭 현대의료기기만 가지면 엄청난 치료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처럼 한방은 수십년간 이야기해왔지만, 한방병원에 의사를 고용해서 그림을 보는 식으로 실질적으로 현대의료기기를 이미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방이 발전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최근 경희의료원에 대한 다큐가 EBS에서 있었는데, 거기서 보니 한방 진료 볼 때 다 MRI놓고 보더만요.) 단지, 더 큰 사고를 안 치는 것은 가능해졌죠. 심각한 간경변 환자나 급성으로 입원한 심근경색, 뇌졸중환자를 적절한 의료기관에 보내는 능력은 가질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일선에서 보기에는 아직도 멀었지만요.

백번 양보해서, 쓰게 해주는 것은 좋다 이겁니다. 하지만 그걸로 어떤 효용을 뽑아내냐는 거죠. CT한 번 찍으면 환자는 대략 10만원 내지만, 국가보험에서는 50만원 나갑니다. 그런 막대한 돈을 써서 그림을 얻었으면, 해석을 해야죠. 그 해석은 의학을 배워야만 그나마 정확성을 기할 수 있고 최대한의 효용을 뽑아낼 수 있습니다. 때문에 의사에게 독점권을 준 것이고, 거시적으로 보면 그게 돈낭비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이죠.

물론 개중에는 경험으로 잘 해석할 수 있는 한의사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해석법은 한방이 아니라 의학적 판단이라는 점에서 한방의 의료기기 사용 요구는 이미 명분이 약해지고, 이런 이야기는 제쳐두고서도 '의사보다 더 뛰어난 사람'은 한방 말고도 많은 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30년 CT만 찍은 방사선사가 이제 면허증 딴 인턴보다 더 뛰어날 수도 있는거죠. 그렇다고, 이런 사람들에게 의료기기 사용권을 줘야 할까요? 이런 논리면, 한방은 구당 김남수의 침뜸을 막아서는 안되겠죠. 적어도 임상 경험만 따지면 구당에게 명함 내밀 한의사 많지 않을겁니다.

(혹시나 한방 이론으로 해석하겠다면, 그건 더더욱 안 될 말이죠. 음양론 자체가 임의적 해석이 가능한 증명불가능한 체계인데, 비싼 사진 찍어놓고 검증되지 못한 썰을 풀어내는 걸 왜 제 보험료로 지원해줘야 한답니까?
혹여 한방방사선과학을 만든다면 그 첫 페이지부터 끝 문단까지 철저히 파헤쳐질 겁니다. 동의보감 쉴드와는 달리, 그림을 해석하는 방법은 어디에도 쓰여져있지 않으니 처음부터 해석을 해야하며, 그것은 곧 영상을 해석하는데 사용되는 문구와 설명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지요. )

의료일원화는 조건부로 찬성하지만, 그저 한의사들에게 의료기기 사용권을 넘겨줄 목적의 일원화는 반대합니다.

이쯤해서 꼭 나오는 이야기가, '기계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라는 말입니다. 기계에만 의존하는 의사가 오진할 가능성은 언제나 있고, 기계없이도 환자를 정확하게 진단해내는 한의사도 있다는 거죠. 물론 그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달인 한 두명의 손에 의료를 맡기기엔 환자의 수는 너무나 많고, 개인의 판단이 어떤 상황에서도 신뢰할만 하다는 확증을 받기에는 검증의 칼날이 너무 매섭습니다. 상호비신뢰를 근간으로 쌓아올린 현대문명이 받아들일 수 없는 솔루션이죠. '10번 틀려도 한 번 확실히 맞추는 의사'보다는 '1번 틀려도 10번 맞추는 의료시스템'에 몸을 맡기는 것이 거시적으로도, 미시적으로도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방의 현대의학에 대한 비판은, 굳이 한방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비판입니다. 비판을 통해 한방이 의학과 대등한 위치를 점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알겠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죠. 그나마도 비판 내용을 잘 따져보면, 의학 자체의 한계라고 지적하는 내용들은 기실 정치적, 문화적으로 '한국의사'라는 이미지를 공격하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때문에 그 비판들이 모두 맞다 하더라도, 한방의 존재 이유가 그것을 통해 성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과학적 관점을 아예 폐기하고 상대주의적 관점을 극단적으로 확장시켜도, 한방은 의사가 선택할 수 있는 치료옵션의 최말단에 있을 뿐이죠. 그 근본 이유는 확실한 신용을 얻을 수 있는 체계가 없기 때문이고, 그것이 의학과 한방이 같은 방을 쓸 수 없는 이유입니다. 물론 한방 스스로도 기회만 있으면 벗어나고 싶어하는 굴레이기도 하지요.

디씨인사이드 한의갤에서 본 글 하나 올리며 이 글 마칩니다. 댓글로 쓰기엔 좀 긴 글이었지만, 지면이 이것밖에 없으니 이해해주십시오.

[응급하고 바이탈을 못봐서 한방을 까는게 아니다.]
의학에서도 응급하고 바이탈 보는 과가 의외로 많지 않거든. 오히려 응급하고 바이탈 보는 과가 일이 험해서 바이탈 다루는 과는 인기가 없어.

의사들이 특히 학계에서 종사하고 있는 의사들이 한의사를 까는 가장 커다란 이유는, 한의사들은 과학적인 비판적 사고가 전혀 없다는 거야.

너희들은 논문 볼때 결과만 보지? 의대에서는 정말 획기적인, 즉 과거에 발견되지 않았던 새로운 결과물이 발견되었을 경우 과정을 봐. study design 자체에서 뭔가 bias가 있을 여지가 있는지를 먼저 파악하거든. 모든 연구에는 limitation이 있고 그 limitation을 극복하기 위한 후행 연구들이 잇따르지.

난 사실 한의학은 잘 몰랐는데 여기 오는 한방 관계자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 과학적인 비판을 하면서 의심을 가진 눈초리로 학문을 하는게 아니라 그냥 경험상 그렇다는걸 이래서 그렇겠지 저래서 그렇겠지 하는 식으로 대충 합리화 시키는 것 같더라.

그리고 의사도 그런 줄 알아. 그래서 의사를 과학적인 관점에서 비판을 하는게 아니라 사회적인 관점에서 비판을 해. 한의사들처럼 그런 줄 아니까, 항생제를 오용한다는 둥 저절로 좋아지는 걸 치료한 척을 했다는 둥.

근대 FDA 공인을 받으려면 얼마나 많은 RCT 결과가 replication 되어야 하는지...그러기 위해서 제약회사에서 얼마나 많은 자본적인 투자가 이루어지는지...그렇게 투자를 하는 이유는 그만큼 효과가 있는 의료 시장이 형성되어서라는 정말 당연한 사회과학적인 관점에서의 시선으로 보는게 아니라 그냥 사회적인 관점으로 정치적, 문화적으로 의사를 까대거든. 그게 좀 답답해서 글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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