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5년 전만 해도 국내에서 의사가 되는 과정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에서 고득점을 얻어 의예과에 진학하는 것과 의과대학 편입학뿐이었다. 특히 03년도 이후로는 수능 커트라인이 상위 1% 선상에서 형성될 정도로 학생들에게 의대 신입학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하지만 의학전문대학원 제도의 도입으로 많은 이들에게 기회가 열렸고, 학위가 있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오늘도 의대의 문을 쉴새없이 두드리고 있다.




 일단 모르는 이들을 위해서 커리큘럼을 간단히 비교해보자면, 의대는 학사과정으로 2년간의 의예과 과정과 4년간의 본과 과정으로 총 6년의 교육기간을 거친다. 의예과는 본과 교육 과정에 필요한 예비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설치된 2년 과정의 수업이다. 보통 기초적인 과학과목(생물, 화학 등)과 교양과목 위주의 수업이 진행된다. 의예과를 마치면 본과로 진급을 하게 되는데 본과에서는 의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기초 의학과정과 임상 의학과정련 지식들을 배우게된다. 이에 반면 의전원은 대학원과정으로 의예과가 폐지됨에 따라 입학 후 바로 의대 본과에 해당하는 교육과정을 배우게 된다. 의전원이 기존 의과대학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암기 위주의 교육보다는 스스로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문제중심학습(PBL)의 선진교육과정을 도입하고 실습위주의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기초과학 연구능력을 갖춘 의과학자 양성을 위해 M.D. Ph.D. 복합학위과정을 도입해, 좀 더 다양한 의료전문인력 양성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다양하고 폭넓은 학문적 소양과 자질을 가진 양질의 전문 의료인, 의과학자 및 의학 관련 분야의 지도자를 배출하겠다는 그 도입 취지와 다르게 의전원은 단지 경제적인 여유를 찾는 졸업생들의 돌파구로 변질되어버린지 오래다. 실제로 의전원에 지원하는 학생들은 의학자보다는 개업의사를 지망하고 있기 때문에 의학연구를 해야 하는 의학자 양성은 오히려 의전원 도입전이 더 나았다는 말들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한 대학 강의실에서 교육을 받으면서도 의대생과 의전원생에 따라 학비가 2배 가량 차이가 나고 졸업 후에는 학사와 석사로 차이가 난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이들은 같은 커리큘럼에서 공부하고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의전원 도입으로 말썽도 많다. 기존의 위계서열식 의과대학 혹은 병원 문화에 어쩔 수 없이 적응해왔던 의대생들과는 달리 이미 대학을 한번 졸업하거나 사회 물을 먹어 본 의전원생들은 그 문화에 쉽게 적응키가 어려웠고, 실제로 그에 따른 여러 문제들은 지금도 의대 혹은 의사 커뮤니티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 예로 의대/의전원이 공존하는 한 학교에서는 서로에게 족보집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전부 모아서 불태워버렸다는 소문도 있으며, 병원 인턴/전공의 선발과정에서 의전원 출신들은 '돈만 안다', '개념이 없다'는 이유로 대놓고 받지 않으려 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정말 볼썽 사나운 집안 싸움이 아닌가 싶다.

 나 역시 의대생 과정을 거쳐서 의사면허를 취득한 한사람으로서 의사 교육과정의 의전원 전환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의전원생들의 태도를 문제 삼기도 하는데, 적어도 내가 만났던 수많은 의전원생들 중 그러한 사람은 없었으며 설사 그런다 할지라도 특별히 문제될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의대생들 또한 비슷한 부류의 인간들이 존재하는데다, 언젠가는 바뀌어야 할 쓰레기같은 문화들이며, 다행스럽게도 의대생보다는 조금 더 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의전원생들에 의해서 그런 문제들이 대부분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을 나는 감사하고 있다. 더불어 늦은 나이에 어렵게 입학하여 의대생들보다 더욱 학구열을 불태우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이 땅의 의학이 한걸음 더 발전할 수 있을거라는 희망찬 기대감 역시 갖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의전원 완전 전환을 반대한다. 의전원은 다양한 의료인력 양성이라는 도입 취지도 전혀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을뿐더러 오히려 여러모로 소모적인 낭비만 부추기고 있다. 일단 대학 4년 학사과정에 의전원 4년까지 소요되는 학비는 가히 상상할 수 없을만큼 막대하다.(인턴/레지던트 수련기간 5년까지 더하면 적어도 13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된다)

여기에 의전원 입학을 위해 치루는 MEET나 DEET는 벌써 전문학원까지 생겨날 정도로 사교육비 낭비를 부추기고 있다. 돈이 없으면 의사조차 꿈꿀 수 없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있는 것이다. 더불어 기초과학 기반의 붕괴 위험까지 도사리고 있는데, 한 리서치 결과에 따르면 서울권 대학 생명과학부 재학생의 50% 이상이 의전원 입학을 희망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의전원 입시를 처음부터 염두해두고 진학하는 학생들도 상당수라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생명공학과뿐만 아니라 농생계열, 화학, 물리 등 모든 기초과학 분야에서 전반적으로 일어나고 있는데, 이는 대학의 학부 교육이 의전원 입시를 위한 전초기지로 변질되고 있다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사 하나를 만들어내는데 너무나도 길고 너무나도 많은 비용과 희생이 따르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의사 교육과정 역시 의과대학과 의학전문대학원 형태를 두고 방향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의전원 도입을 주도했던 교과부는 일단 완전 전환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지만 정작 의대생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의대나 의전원에서는 다양한 이유를 들어 의대 복귀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 일각에서는 의사교육체계를 학사와 석사를 통합해 6년 또는 7년으로 운영하는 방안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올해 4월에 열리는 의·치의학 교육제도 개선위원회에서 다루어질 '의전원 전환과 의대 복귀 문제'는 의학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의대/의전원 도입은 정부에서 쥐고 주도할 문제가 아니라 각 대학의 자율에 맡겼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문제의 해결 방향이 어느 쪽으로 진행될지는 더 두고 봐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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