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패션 간지는 이미 강남역 2번 출구를 넘어선지 오래다. (믿거나 말거나) 하지만 난 아직까지 강남에 적응하지 못했다. 행여나 일처리 때문에 강남에라도 가면 많은 인파 때문에 속이 메슥거리고 높은 빌딩때문에 푸른 하늘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어 가슴이 답답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어지럽히는 것은 그곳에 널린 수많은 피부과, 성형외과 전문 병원들이다.(물론 강남구 성형외과 350여 곳 중 비전문의가 운영 중인 병원이 90개 이상이나 된다고 한다.) 다른 분과 병원은 어디로 꼭꼭 숨었는지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오직 그곳에는 소위말하는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만 존재할 뿐이었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젊은 의사들의 3D 기피현상의 결과물이라 말하기도 한다. 허나 이는 비단 최근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미 꽤 오래전부터 이러한 전공의 쏠림 현상은 시작되었고, 대부분의 젊은 의사들은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보장된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을 전공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이는 자연스레 임상 메이저 4과인 내외산소 가운데 내과를 제외한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의 전공 기피 현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러한 현상이 장기적으로 고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균형잡힌 의학발전의 저해 요인이 되고 있으며, 이는 향후 국가적 의료 왜곡현상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전문의로서 미래를 꿈꾸기 힘들다'

 이 공계 기피현상도 아니고 전공의 기피현상이라니, 이는 제 3자가 보기에는 배부른 돼지들의 고민일 뿐이다. 하지만 의료계 내부에서는 심각한 문제로 인식된지 오래다. 그간에 이러한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여러번 있었지만,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소위 말하는 3D 과들은 전공의 선발을 위해서 수많은 당근과 떡밥을 제안했지만 올해도 여전히 미달현상은 지속되었고, 심지어 몇몇 과들은 존폐 위기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난해 정부에서 내놓은 파격적인 수가인상이라는 처방도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물론 인기과만 찾아서 지원하려는 젊은 의사들도 문제다. 피안성 진입을 위해서 재수를 선택하는 의사들도 많다. 하지만 막연히 그들에게 기피과를 지원하라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특정과 전공의 지원 쏠림과 기피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을 이해하지 못한 정부와 수련 담당자들이 아닌가 싶다. 기피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전문의로서 미래를 꿈꾸기 힘들다'는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눈에 보이는 것들만 미봉책으로 가리려고 하니 문제 해결이 요원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전공의를 지원하려는 새내기 의사들의 마음가짐 변화가 중요하다. 봉사정신을 가지고 의학을 지원한 초심으로 돌아가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도전하는 마음이 절실한 때이다. 더불어 의료정책 관계자들은 비정상적인 전공의 지원 행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현재와 같은 의료보험 수가의 현실화와 수술료 적정화 대책을 지속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의사협회는 물론 전공의 수련에 관여하는 병원협회는 직접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조속히 강구해야 한다. 물론 전공의들이 피교육자이지만 노동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들의 근무시간, 당직, 휴가 등에 관한 복리 후생정책이 전공의들에게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개원가는 어렵고 스텝으로 남기는 힘들다면 비록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를지라도 전문의 산아제한 등 특단의 조치도 고려되어야 한다.  

 사회가 발전하고 경제적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미용이나 성형 등을 찾는 사람이 늘고, 그에 따라 피부과나 성형외과의 벌이가 좋아지고 인기를 끄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특히 외과나 흉부외과 등 의학적 필요에 의해서 찾게되는 병원과는 달리 자신을 꾸미고 아름답게 변화시키려는(美) 문화적 소비의 형태를 띄는 피부과나 성형외과의 인기는 어찌보면 거스릴수 없는 대세일지도 모른다. 더불어 이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대대적인 인식의 전환이나 미용관련 수가의 대대적인 조정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그 어떠한 제도나 보상으로도 해결이 어려운 문제일 수도 있다. 그 시류에 아무런 저항도 못한 채 휩쓸려 떠내려가는 내가 이 문제를 두고 왈가왈부 하는 것조차 우스운 일일런지도 모른다. 그래도 해결책을 내어놓으라면? 역시나, 아- 어렵다는 말 밖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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