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근무하던 미즈메디병원은 2003년 7월부터 전자챠트를 쓰고 있습니다. 중소병원에서는 거의 처음으로 전자챠트를 개발하고 쓰기 시작한 병원이지요. 처음에는 여러가지로 걱정도 많고 쓰기도 불편해서 반대도 많았지만 결국 만들어냈고 지금껏 잘 쓰고 있습니다. 쓰다보니 장점도 많이 있습니다. 직접 글씨를 쓰는 게 아니라서 누가 봐도 읽기 쉽고 (사실, 예전에는 악필을 가진 사람이 쓰면 아무도 읽지 못했거든요 - 심지어는 챠트를 쓴 본인도 읽지 못 하는..-_-;;) 챠트를 그 때 그 때 의무기록실에서 찾아서 올려야 하는 불편이 없으니까 효율도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이 전자챠트가 처음에는 의료법 상에서 의무기록으로 인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일이 우습게 된 것입니다. 의사들은 전자챠트를 열심히 쓰는데 이 것이 법적으로 의무기록이 아니라니요? 그럼 다시 종이챠트를 써야하는 건가?...그러다가 2005년인가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법이 개정되어서 전자서명이 들어간 전자챠트는 의무기록으로 인정이 된다...이렇게 된 것입니다. 당연히 저희 병원에서도 전자서명을 만들어서 (물론 비용이 들어가지요.) 챠트에 붙여넣기 시작했고 지금도 그래서 따로 종이챠트를 쓰지 않고 전자챠트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개원을 준비하면서 개원가에서 쓰고 있는 전자챠트 프로그램을 보니..

으잉? 허거걱!! 전자챠트가 전자서명이 되지 않는다는군요?

그럼 어떻게 해야하냐니까 전자챠트는 쓰되 챠트를 그때 그때 종이로 출력을 해서 도장을 찍어놓아야만 인정이 된다는 대답!!!  아이구야! 이게 무슨 전자챠트랍니까? 왜 안되느냐고 했더니 병원 내에서는 전자서명을 해 놓기가 쉽지만 이 프로그램은 전국에 있는 개원의에게 퍼져있고 이게 중앙서버로 모이고 다시 퍼지고...하는 방식이라서 전자서명이 안된다네요? 전자서명을 하는 업체가 불안하다나 어쨌다나...아무튼 알쏭달쏭한 이유로 안된다고 하는데...

도대체 안 되는 근본적인 원인이 뭔지, 이렇게 전자챠트를 쓰면서 또 의무기록을 따로 출력해서 보관해야 (무려 10년을!!) 하는 황당한 일을 언제까지 해야하는 지....이거 누구한테 물어봐야 할 지, 누구한테 하소연해야 할 지 참 난감합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이런 현실을 알고는 있는지...참 궁금도 하구요...쩝.


문제는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의원용 전자챠트를 교육받고 여러가지 약과 검사등을 입력하면서 한숨을 쉬는 일이 매일매일 생기고 있습니다. 많은 의사들의 제각각의 요구를 반영하다보니 그럴 수도 있고 프로그래머들도 제각각이다보니 그럴 수 있지만 챠트와 처방전달시스템이 누더기가 된 듯한...언젠가 탈탈 털어서 시스테마틱하게 정리를 해야 할 듯 하다는 생각이 매일 듭니다.

그건 그렇다치고 제가 적응을 해야할 부분도 많이 있지만...오늘은 좀 더 쇼킹한 걸 발견했습니다.

제가 위내시경, 대장내시경검사를 한다고 하지요. 검사를 끝내면 검사결과를 남겨야 합니다. 그 검사결과라는 것은 간단한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 수면대장내시경검사를 하고 용종절제를 했다고 하면) 수면내시경을 위해 투여한 진정제의 양, 산소흡입여부, 산소포화도와 맥박을 모니터링 했다는 언급, 검사중 환자의 상태, 대장정결 상태, 검사에 걸린 시간, 용종의 갯수, 크기, 위치, 용종제거를 하면서 쓴 기구, 합병증 유무등을 써야 합니다. 그 외에도 다른  소견이 있으면 써야 하지요. 이런 걸 언제 다 쓰느냐구요? 그러니까 대부분의 내용은 템플릿으로 만들어놓고 빈칸을 채워가는 형식이나, 몇가지 경우를 늘어놓고 체크박스를 만들어 놓는 방법으로 "검사결과지"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나! 그런 기능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담당자와 상의한 결과 다른 챠트의 기능을 이용해서 템플릿을 만들어보자고 했지만....만들다 보니 글자수가 제한이 있어 이 것도 실패....ㅠ.ㅠ

결국 방법은 말이지요....내시경검사결과는 챠트에 아주 간단하게 적고 위에서 말한 사항들은 (대한 소화기내시경학회에서 권장하는 방법이고 보건복지부 주관의 암검진 질관리에서도 권장하는 사항이지요.) 종이로 적어야겠습니다. 그 종이로 만든 결과지는 따로 철을 해서 보관해야겠구요.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전자챠트를 만들어놓고 챠트를 따로 종이로 출력을 하지 않나, 검사결과지를 따로 종이로 만들어 보관하지를 않나...암검진 질관리를 추진하는 측에서는 이런 사정은 알고 있기나 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개인의원에서 내시경검사를 하고 오신 환자분들에게 "전에 했던 검사결과지 좀 복사해 오세요..."라고 하면 개인의원에서는 기껏 한두줄의 간단한 병명을 적어주거나 손으로 메모지에 써서 보내주곤 했는데...저는 그 걸 보고 속으로 굉장히 흉을 봤거든요..."아니..내시경검사를 한다고 하면서 결과지를 이것 밖에 못 쓰나..."하고 말이지요. 그런데 그런 이유가 따로 있었습니다. 그동안 저에게 흉을 잡히셨던 개원의 여러분 선생님께 정말 죄송한 말씀 드립니다. 그리고 이런 것이 꼭 그 회사의 잘 못이라고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개원의들이 전자챠트를 쓰든 말든, 중소기업이 힘들게 전자챠트를 개발을 하든 말든...그들의 어려움을 듣고 도와줄 생각은 전혀 않는 보건당국은 책임이 없을런지요. 의료의 질 향상에도 중요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어쩝니까....오늘도 답답한 마음을 하나가득 안고 열악한 전자챠트에 적응하고 새로운 검사결과지를 내 나름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늑대별이 될 수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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