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아침은 일찍 서둘러야했다. 병원에 들러 입원환자를 둘러보고는 가톨릭센터로 갔다. 오늘은 미리암(29)을 고향인 필리핀 세부(Cebu)로 보내는 날이기 때문이다. 미리암의 안타까운 사연을 알게 된 것은 올 1월이었다. 지난해 12월 말에 언양의 모병원에서 분만 중에 의식이 반혼수 상태로 심장마비가 와서 양산부산대병원에서 수술을 했으나 아이만 살리고, 산모는 뇌사상태에 빠졌다는 것이다.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태어나야할 찰스는 엄마 얼굴도 한번 보지도 못하고 인큐베이터로 들어갔다. 남편인 제니(36)가 울산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런 딱한 경우가 있을까.




                                     2010-2-28 가톨릭신문 [사랑은 나눌수록 커집니다]

출산 전에 딱 한번 가톨릭 노동상담소에서 와서 어느 병원에서 출산을 하는 게 좋은지 물어보러 온 적이 있다고 했다. 미리암은 선박에서 페인트공으로 일하다가 제시를 만나 평일에는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는 서로의 사랑을 키워나갔다. 서로 의지하며 타국에서 고달픈 이주노동자 생활을 하던 이들에게 이런 엄청난 고난이 찾아올 줄 누가 알았으랴. 반년 가까이 부산노동사목에서는 미리암 문제로 동분서주했다. 중환자실에서 하루하루 고비를 너기는 동안 쌓여만 가는 병원비하며, 24시간 간병할 사람을 구하는 문제, 뇌사 판정만 내리지 않았다 뿐이지 뇌사상태라 살아날 희망은 없는 상태였고, 더군다나 이주노동자였다.





필리핀 공동체에서 미사 때 모금을 하기도 하고,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가톨릭신문에도 내면서 도움의 손길을 찾았다. 남편 제시는 야간 일을 하면서 하루 4시간 정도의 잠을 자면서도 아내 미리아씨의 간병을 하고 있었다. 사랑은 나눌수록 커지다더니 주위의 도움으로 2,300여만원 모을 수가 있었다. 대학병원에서 요양병원으로 갔다가 울산의 재활병원까지 기관절개를 한 채 코로 암죽을 먹으며 사투를 벌이던 미리암이 눈을 뜨고, 통증에 반응을 보이기도 하게 된 것이다. 제시의 정성과 아내가 깨어나길 간절히 원하던 기도가 하늘에 닿았던 것일까. 이때부터 미리암을 고향 세부로 보내는 일을 구체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필리핀에서 미리암의 어머니가 딸의 간병을 위해 입국을 했고, 지난달 30일에 필리핀으로 찰스와 함께 먼저 고향으로 갔다. 대한항공만 환자를 보낼 수가 있다고 하여 인천공항까지 울산 재활병원에서 앰뷸런스로 갔다. 의사가 동행을 해야 한다고 해서 필리핀 세부까지 따라가게 되었다. 미리암은 생각보다 잘 견디는 것 같았다. 가끔 기도 안에 가래를 빼 주기도 하고, 이마의 땀도 닦아주고, 기저귀를 갈아주기도 하면서 울산에서 인천으로 향했다. 노동사목 담당 이창신 신부도 손수 차를 몰고 같이 했다. 우리 모두는 모두 한 마음이었다. 미리암이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 갈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였다. 경기도에 접어들자 차가 정체되기 시작했다. 앰뷸런스라 갓길을 달리고 차들의 양보를 받으며 제 시간에 인천공항에 먼저 닿았지만, 같이 가기로 한 노동사목 실무자 막달레나를 실은 차가 걱정이었다.



                        앰뷸런스 안의 미리암. 그녀와 함께 한 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제시와 같이 출국수속을 밟고 앰뷸런스에 오니 기사가 산소를 높여주고 있는데도 모니터링 기계에서 자꾸 산소포화도가 떨어져 경보음을 낸다고 했다. 입술이 파래지는 게 비행기도 못 타보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사실 울산에서 인천까지 오는 길에도 조마조마했다. 맥박이 40이하에서 110회까지 들쭉날쭉했고 산소포화도도 자주 떨어졌다. 공항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먼저 계류장으로 앰뷸런스를 타고 들어갔다. 리프트를 이용하여 들 것에 실어 비행기 안으로 들어갔다. 6인의 좌석에 미리암이 누울 수 있게 만들어 놓았고 커튼도 설치되어 있었다. 비행기가 이륙을 하자 미리암은 불안하고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비록은 손발이 오그라들고 말을 할 수 없지만, 분명 약하지만 의식은 있었다. 포터블 셕션기를 60만원을 주고 사서 가지고 갔다. 비행기 안에는 모니터도 없고, 오로지 청진과 육안으로 환자 상태를 보며 판단하는 수밖에 없었다. 호흡도 약하고, 청진을 해도 숨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거의 두 시간을 환자 곁에 서서 있었다. 승무원이 가져다 준 산소를 공급하면서 두 시간 만에 환자의 상태는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 갔다.




좌석에 앉아서도 눈길은 환자에게 두고 기도하는 마음이 되었다. ‘미리암씨는 꼭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의식이 깨어나는 기적이 일어날 거야. 그래서 찰스를 가슴에 안아봐야지.’ ‘엄마도 만나고, 동생들도 만나고. 조그만 더 힘 내.’ 승무원에게 물으니 대만을 지났다고 한다. 조그만 더 힘내는 거야. 곧 세부에 도착할 거야. 알았지? 미리암? 드디어 비행기가 세부공항에 곧 도착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착륙할 때에 충격이 없어야 할텐데. 비행기는 활주로에 내렸고, 순간 미리암의 겁먹은 얼굴 표정이 이내 돌아왔다. 순간 눈물이 나왔다. 나는 미리암의 이마를 쓸어주었다. 그녀가 알아듣는지는 모르겠지만 귀에다 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미리암, 너무 고마워. 고향으로 돌아왔어. 수고했어.’



                                  공항 의사와 필리핀 앰뷸런스 구조사가 기내로 왔다




                                                      앰뷸런스에 실리는 미리암


비행기의 모든 승객이 내리고 나자, 미리암을 인수하기 위한 필리핀 병원의 앰뷸런스가 도착을 해 있었고, 공항의 의사가 올라왔다. 나는 환자의 상태를 설명하고 기지고 갔던 각종 서류를 건네주었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미리암의 어머니와 남동생과 친구들이 나와 있었는데 모두들 경황이 없는 것 같았다. 자정이 벌써 넘어있었다. 세부의 밤 온도가 29도였다. 후끈한 열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미리암 고향보내기’ 미션은 성공리에 마쳤다. 매년 50만 명 이상의 여성들이 임신과 출산의 합병증으로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이는 지금도 이 세상 어디에선가는 1분에 한 명의 여성이 죽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필리핀 병원에서 치료를 잘 받고 꼭 깨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 생명의 탄생에는 이렇게 큰 고통이 따르나보다. 그 날 밤 비행기로 인천공항으로 돌아와 월요일 오후에는 병원에서 환자진료를 했다. 피곤했지만 ‘사람 노릇을 한’ 주말이었다. / 플라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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