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슨 포드가 기획하고 주연을 맡은 영화 <특별조치(Extraordinary Measure)>는 폼페병을 앓고 있는 자녀를 치료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 부모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2003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자인 지타 아난드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여 쓴 베스트셀러 <치료: 한 아버지가 아들을 구하기 위하여 1억불을 모은 방법, “The cure: How a father raised $100 million - And bucked the medical establishment - in a quest to save his children">이라는 긴 제목의 책을 바탕으로 하였다고 합니다.
 
희귀질환에 걸린 자식을 구하기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하여 나름대로의 성공을 얻게 된다는 영화로는 <로렌조 오일; http://blog.joins.com/yang412/4746579>이 있습니다. 부신피질영양증이라는 희귀질환을 앓는 아들을 구하기 위하여 희생하는 부모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닉 놀테와 수잔 서랜든이 감동적으로 전했던 1992년에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로렌조 오일과 특별조치를 비교하는 시각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질병의 특성과 시대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먼저 해봅니다.

의약품은 특히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 사용하기 때문에 효능과 더불어 안전성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임신하였을 때 생기는 입덧을 가라앉히는 목적으로 개발되었던 탈리도마이드라는 약물이 안전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시판되어 단지증(phocomelia; 팔이 없고 손목이 직접 어께에 매달려 바다표범처럼 생긴 심각한 장애)을 가진 신생아가 태어나는 부작용이 크게 문제가 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약물허가단계에서 안전성을 입증하는 실험이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발매가 허가되지 않아 비극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안전성에 관한 조항을 충족하여 시장에 나온 약들도 예기치 않은 부작용이 드러나 철수하는 사태도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의약품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사전시험이 보다 철저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의약품이 시장에 나올 때까지 천문학적인 자금이 들어가고 그 결과 신약의 약값은 가파르게 비싸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수요가 많지 않은 희귀질환을 치료하는 약은 개발이 되더라도 개발비를 보전할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에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희귀질환 치료약 개발에 뛰어들 수 없는 노릇입니다.

역경을 딛고 세계적인 다국적 제약회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의 부사장에까지 이른 존 크롤리(브랜든 프레이즈 扮)에게 어느 날 청천병력과 같은 일이 생깁니다. 간단한 감기로 고생한다 생각했던 둘째와 셋째가 폼페병이라고 하는 희귀질환을 앓고 있다는 통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크롤리는 자료를 찾아보지만 완치시킬 치료제가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게 됩니다.

폼페병은 당원(글리코겐)이 포도당으로 분해되는데 필요한 효소에 문제가 생기는 희귀 유전병입니다. 모든 인종에서 생기는데 4만명에 1명꼴로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부분 상염색체 열성으로 유전되는 당원축적병에는 장애가 되는 효소에 따라서 증상에 차이가 있어 여러 가지가 발견되었습니다. 폼페(Pompe)가 처음 발견한 당원병은 폼페병이라고 불러왔지만, 최근에는 문제가 되는 산성 말타제(acid maltase) 결핍증이라고 부르거나 발견된 순서에 따른 로마수자 표기로 II형 당원축적증이라고 부릅니다.

폼페병은 산성 말타제 유전자에 생기는 돌연변이의 종류에 따라서 영아(infantile)형, 연소(juvenile)형과 성인(adult)형으로 나뉘고 있습니다. 신생아 초기에 증상이 나타나는 영아형이 제일 심한 경과를 보이는데 근긴장이 떨어지고 반사운동이 사라집니다. 일부 환자는 혀와 심장이 커집니다. 이런 증상은 분해되지 않은 당원이 근육과 간조직에 쌓이기 때문인데, 근육, 심장근육, 중추신경계와 간에서 변화가 제일 심하게 나타납니다. 근긴장도가 떨어지고 호흡기 감염이 반복적으로 생기는 특징을 보입니다. 대부분 1세 미만에 사망하는 치명적인 경과를 보이게 됩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임상경과가 느리게 진행되는 비정형적 영아 폼페병도 있습니다. 소년기에 증상이 시작되는 연소형이나 성인기에 증상이 시작하는 성인형은 장기에 당원이 많이 쌓이지 않기 때문에 임상증상이 심하지 않은데, 특히 심장에는 변화가 생기기 않습니다. 크로울리의 두 아이는 반복적으로 호흡기감염이 이루어지고 심장발작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아 영아형 폼페병으로 보입니다만, 증상의 발전이 급속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비정형적 경과를 보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료를 뒤지던 크롤리는 몬태나 시골에 있는 대학에 있는 생명과학자 로버트 스톤힐(해리슨 포드 扮)박사의 이론에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아이가 응급실에 입원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그는 곧바로 몬태나의 시골로 스톤힐박사를 찾아가게 됩니다. 어렵사리 스톤힐박사를 만나게 되지만 연구비가 문제라는 점을 깨닫게 된 그는 박사가 요구하는 50만 달러를 내놓겠다는 제안을 하게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연구비의 일부를 모금하여 연구소를 세우지만 치료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투자자를 끌어들여야 하는 상황이고, 냉정한 투자자들은 스톤힐박사의 연구계획이 치밀하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투자협상이 결렬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여기에서 다국적제약사에 근무한 크롤리의 경험이 빛을 발하게 됩니다. 유사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다른 생명공학회사와 합병을 하면 연구를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제안으로 스톤힐박사를 설득하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독특한 성격의 스톤힐박사는 합병된 회사의 연구팀에서 갈등을 빚지만 폼페병 치료제의 개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고, 또 크롤리의 아이들이 임상시험에 포함될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됩니다.

새로 합병한 회사에서 크롤리와 대립하는 웨버(야레드 해리스 扮)박사가 개발완료된 치료제를 크롤리의 아이들에게 제공할 수는 없다고 선을 긋는 것을 우리 정서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겠다.하지만 신약을 개발회사에 근무한다는 특권을 치료제를 선점하는데 이용했다는 윤리적 문제를 피할 수 없다는 점이 고려되었고, 결국은 크롤리가 회사를 그만두는 조건으로 임상시험에 포함되는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습니다. 그 점에서는 안면에 약한 우리네 사회와는 철저하게 구별되는 점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밖에도 치료제 개발과정에서도 지나치게 감정에 의존하는 판단을 하지 말라고 제동을 거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아이들의 생명이 경각에 달렸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회사의 운명을 걸어야 하는 신약개발과정의 판단을 냉정하게 할 수 있겠느냐는 견해 때문이었다는 점을 고려하고 볼 일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새로 개발된 폼페병 치료제를 맞게 된 메간(메러디스 드로저 扮)과 패트릭(디에고 벨라스케스 扮)는 치료제 투입이 끝나면서 유쾌한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심장과 간에 쌓여서 기능을 떨어트리고 있던 글리코겐이 포도당으로 분해되어 혈중으로 나오면서 기분이 들뜨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미국 FDA는 2006년 재조합 인간 알파-글루코시다아제가 폼페병 치료제로 승인을 받아 치료제로 널리 사용되고 있어 과거 보존적 치료에 의존할 때와 비교하면 획기적으로 생존기간을 연장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치료제가 개발되어 있기 때문에 조기에 진단하는 것이 중요한데 의심되는 환자에서 산 알파-글루코시다제 효소검사와 근육조직검사를 통하여 조기에 확진하고, 치료제를 투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사족입니다만, 원제 ‘Extraordinary Measure’를 특별조치로 번역한 것도 좋습니다만, ‘아주 특별한 선택’이라고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아이들을 치료하기 위하여 잘 나가는 다국적제약회사를 떠나 벤처회사의 CEO로 변신하는 것도 그렇고, 괴짜 생명공학자인 스톤힐박사에게 연구비를 제공하는 것도 그렇고, 마지막 완성된 치료제의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것도 특별한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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