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앞둔 사람의 심리적 변화
에 덧붙여서.


진료과에 따라서, 자신의 경험에 따라서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를 수 있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매일 죽음을 앞둔 환자를 보는 진료과도 아니고 그렇다고 죽음과 완전히 무관한 과도 아니다. 매일같이 죽음을 앞둔 환자를 본다는 것은 내 그릇에는 견디기 힘든 괴로움이였을 것 같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심리적 변화에 대해 Elizabeth Kubler-Ross는 5단계로 설명하였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때 처음에는 부정하고 분노하다가 신이나 종교등과 타협을 하려하고 좌절과 우울에 하다가 결국 죽음을 수용한다는 심리적 분석이다. 모든 사람이 이런 단계를 거치지는 않지만, 보편적인 반응이라고 이해해도 큰 무리가 없다. 실제 경험도 그렇고..


이 글을 보고 인간의 죽음이 5가지의 단계로 표현되는 감정 반응으로 허무하게 마감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두려웠다. 아마 많은 사람이 읽지는 않았지만 댓글에 '참 비참하군요'란 글이 있는 것으로 보아 걱정했던 대로 그렇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죽음이 비참한 것이라면 우리는 비참한 목적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고, 죽음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 곁에 있다는 것이 비참한 일일 것이다. 종교인들이나 의사 또는 가족들이 죽어가는 사람을 비참하게 바라본다고 상상해보라. 굳이 죽어가는 사람이 나라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런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견디기 어렵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이벤트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다가오는 죽음을 상대로 투병중인 가족이나 친척을 방문하는 일이 가끔 생기게 된다. 더러는 '안타까움'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찾아오지 않고 피하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곁에서 함께하는 가족과 의사들은 어떤 감정을 느낄까?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는 환자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환자와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일때도 이와 같은 반응은 일어날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가족이 치료가 어려운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괴로워 하는 장면을 쉽게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의사들은 어떤 감정을 느낄까? 오랬동안 외래에서 함께했던 환자라면 인간적인 감정을 표현하지 않을 뿐이지 괴롭지 않을 수는 없다. 특히 환자와 보호자보다 검사 결과를 먼저 알고 알려줘야하는 입장에 서면 그 괴로움은 배가 된다. 언제 어떻게 누구를 통해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인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음을 대할 때 일어나는 심리변화 중 충격과 부정의 단계에 머물러 죽음을 맞이한다면 어떻겠는가? 보내는 가족과 의료진 모두 마음의 짐을 벗기 힘들다. 충격과 부정을 지나 받아들이고 아름답게 주변 가족과 친구들과 인사하며 떠날 수 있다면 가장 아름답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답다는 기준은 남겨진 사람들의 판단이고 실제 떠나는 분이 그런지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젊은 나이에 말기암이라니 무슨 소리요. 억울해서 눈감지 못하오!' 이런 상황은 대학병원에서 아주 드문 상황이 아니다. 환자의 심리 상태와 극복할 수 있는 시간의 여유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므로 할 수만 있다면 좋은 때를 택해서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야기 해야한다. 하지만 병원에 내원 했을 때 환자의 남은 시간이 항상  여유롭지는 않다.


죽음을 앞둔 환자나 보호자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감정을 정리할 시간이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최대한 많은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의료진들은 노력한다. 또한 때로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음에 보호자 보다 더 초조해 하고 불안해 하기도 한다. '부정과 분노' 상태로 환자를 떠나보내고 싶은 의사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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